교수의 성추행, 누구에겐 '덮어줘야 할 허물'이었다

교수의 성추행, 누구에겐 '덮어줘야 할 허물'이었다

  • 박소영 기자 syp8038@daum.net
  • 승인 2017.01.03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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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일, 기억나지 않는다"던 전공의들 돌변, 거짓진술서에 가장 힘들어
가해자는 멀쩡, 피해자는 얼굴·몸매평가부터 "처신 잘 한거 맞아?" 비난도

"정신과전문의가 되겠다는 꿈을 안고 들어간 병원이었다. 지도교수는 화려한 경력과 대외활동을 자랑하는 원내 '간판교수'였다. 한 달간의 정신과 인턴근무를 마치던 날 회식자리에서, 그 교수는 나를 강제 추행했다. 어떤 사과도 없었다."

병원 스타교수와 일개 인턴. 미래를 틀어쥔 교수 앞에서 인턴은 무력했다.

A씨는 인제대학교 서울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에서 한 달간의 인턴근무를 마치던 2013년 3월 말, 정신과 의국 회식자리에서 지도전담의 B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 A씨는 이 충격으로 석달 만에 병원을 그만뒀다. 정신과전문의가 되겠다는 꿈도 접었다.

2015년 말 A씨는 B교수가 다른 직원들 역시 성추행했다는 제보를 듣고 묻어뒀던 이 일을 꺼내기로 했다. B교수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진행한 것이다.

서울동부지방법원은 지난해 22일, B교수에게 1500만원의 벌금형을 구형하는 1심 판결을 내렸다. 법원은 B교수가 성추행을 전혀 반성하거나 뉘우치는 모습이 없는 점, 다른 전공의들에게 거짓진술서를 쓰도록 강요한 점, 진술이 오락가락해 신빙성이 없는 점을 구형의 주요 사유로 들었다.

B교수는 현재 파면됐으며, 인제대학교 교원소청위원회에 이의를 제기한 상태다. 

A씨는 지난해 29일 본지와 이메일 인터뷰에서 그간의 소송과정과 소회를 털어놨다. 다음은 A씨와의 일문일답.

공식적인 문제제기도 못한 채 석달 후 병원을 그만뒀다
나는 당시 일개 인턴에 불과했다. B교수는 내가 지원하려는 정신과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했다. TV에 출연하고 책을 쓰는, 병원의 '간판교수'였다. 충분한 증거 없이 공론화시키면 묵살당할 것 같았다. B교수에게 가벼운 징계만 내려질 시 내게 돌아올 보복도 두려웠다.

당시 B교수가 원내 혹은 의료계에 미치는 영향력은 얼마나 됐나
B교수는 다른 병원들과의 친분을 과시하며 "나한테 잘보여야 다른 병원 정신과에도 지원할 수 있을 것"이라 말하곤 했다. 인턴이던 날 포함해 전공의들에게 사적인 일을 시키기도 했다. 자신이 출연한 라디오 프로그램의 녹음파일을 주며 타이핑을 해오라고 했고, 저술하는 책의 자료를 정리하라고 시켰다. 다른 전공의들도 "B교수는 막말을 일삼았고, 무리한 요구를 자주 했다"고 말할 만큼 B교수는 강하고 부적절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병원을 나온 직후에도 소송을 바로 제기하지 못한 이유는? 
법조계에 종사하는 친구에게 고소 진행을 상담했다. 친구는 "녹음 등의 물증이 없으며, 추행 당시 목격자가 없어 전공의들 중 누군가가 성추행 장면을 봤다 해도 진술해주지 않을 것으로 보여 승소 가능성이 낮다"고 했다. 회식에 동석했던 전공의들도 믿을 수 없었다. 1차 때 굳이 강권하며 술을 마시게 한 게 그들이기 때문이다.

진로 고민도 컸다. 전공의 선발과정에서 교수 영향력이 크다는 것쯤은 의대생 시절 익히 들어왔다. B교수는 이미 여러 차례 타 병원 교수들과의 친분을 과시했다. 더 이상 B교수와 마주치거나 연락을 받고 싶지 않아 퇴사했지만, 다른 병원의 지원 가능성을 망치고 싶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사건을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매우 충격적이고 실망스러웠던 그 일을 여러 사람 앞에서 복기하기 싫었다.

이후 소송을 진행하겠다고 용기를 낸 동기는 무엇인가
또 다른 피해자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2015년 이맘 때쯤 병원 어느 교수님로부터 연락이 왔다. 교수님은 "B교수가 정신과 부속 심리실 학생을 건드렸다"며 "B교수의 횡포로 정신과 의국이 B교수에 대한 파업을 결성하려던 차 추가적인 인턴 성희롱이 발견됐고, 내가 퇴사한 것도 B교수 때문이라는 제보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내가 피해를 당했던 2013년 당시 정신과에는 '남자 전공의만 뽑겠다'는 방침이 있었다. 그래서 심리실 직원들이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못했다. 내가 문제제기를 하지 못해 다른 사람이 더 큰 피해를 본 게 아닌가란 생각에 괴로웠다. 심리실 직원은 나보다 나서기 더 어려운 위치였고, 실제로 윤리위원회에서 증언하지도 못했다. 당시 연락주셨던 교수님은 "그 피해자는 다른 병원으로 이직했다. 이직한 곳 역시 B교수와 친분 있는 교수가 과장으로 있어 심리적 위축감을 느꼈을 것이다. 다른 외압의 의혹도 있다"고 하셨다.

소송에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다른 피해자들 역시 스스로를 추스릴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했다. 내가 당한 일이 수면 위로 다시 떠올랐으니 여력이 되는 내가 소송을 제기해 다른 피해자들의 법적 정의구현을 쉽게 만들고 싶었다.

소송을 진행하며 힘든 점은 무엇이었나?
B교수가 내게 저지른 일은 일부 전공의들 사이에서는 "덮어줘야 할 스승의 허물"로 이야기됐다. 가장 당혹스럽고 힘들었던 때가, 회식 자리에 동석했던 일부 전공의들이 쓴 거짓진술서 및 탄원서를 봤을 때다. 처음 학교 측에는 "기억나지 않는다"로 일관했던 분들이 3년이나 지난 일을 두고 B교수와 입을 짜맞췄다. 자료를 살짝만 들춰봐도 들통날 거짓들과 나에 대한 흑색선전으로 가득했다. 추행 당시만 해도 그들이 공범자 혹은 방관자라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으나, 2차 가해를 실제로 마주하는 것은 곤혹스러웠다.

이렇게까지 왜곡된 것은 병원의 폐쇄적인 문화에 기인하나
병원 내 교수의 위치는 생각보다 더 절대적이다. 의국을 졸업한 후에도 그렇다. 자신이 아니라고 생각해도 교수가 지시하면 깊게 생각하지 않고 진행한다. 최근 서울대병원 외인사 논란도 그 비슷한 일로 생각한다. 수직적, 권위적 문화가 만연하게 침투해 있다. "내가 인턴이나 전공의 때 윗사람이 말도 안 되는 일을 시켰는데, 어떻게 해냈다 혹은 해내지 못해 된통 까였다"는 이야기들이 군대 영웅담처럼 의사들 사이에서 회자된다. 대부분은 수직 사슬의 정점에 있는 교수를 지적할 수 없다, 혹여 성추행을 저질렀더라도.

때문에 의대 혹은 병원에서 성추행이 벌어져도 피해자들은 입을 열기 어려운 건가
잘못한 건 가해자임에도 현실에서는 피해자들만 손해를 본다. 처신이 적절했는지부터 얼굴과 몸매가 어땠는지, 이전 남자관계와 성적, 성격과 선후배 관계, 심지어는 추행의 정도가 어땠는지까지 끊임없이 평가받고 비난당한다. 이런 비난과 평가들은 복제·재생산돼 낙인으로 찍힌다. 향후 지원하는 과에서도 논해진다. 반면 가해자들은 별다른 피해를 입지 않는다.

긴 과정 속에서 승소를 이끌어냈다. 향후 계획이 있다면?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았다. 소송 시작을 가능하게 한 서울백병원 수련부장님께 감사드린다. B교수에게 성희롱을 당한 인턴이 당황해 동료 인턴에게 하소연한 것을 캐치하시고 정신과 직원들을 전수 조사해 또 다른 성추행 케이스를, 그리고 나를 찾아내셨다. 내게 맨 처음 전화 주신 교수님께도 감사 드린다. B교수의 만행을 같이 고발하고, 다른 전공의들의 거짓탄원서 작성을 제보해주신 전공의 선생님, 내가 성추행당한 경험을 공유했을 때 나를 지지해줬고, 나를 위해 진술서를 써 준 두 분 동기 인턴 선생님들께도 감사드린다.

이번 일을 언론에서 다뤄준 모든 분들께 감사하며, 더 많은 피해자들이 용기를 내길 바란다. 물심양면으로 나서주신 대한전공의협의회에도 감사드린다. 대전협은 내 케이스를 시범삼아 원내 성추행·성희롱 대책 가이드라인 및 핫라인 마련에 힘쓴다고 들었다.

B교수가 항소한다면, 나는 반박할 것이다. 병원 내 만연한 성희롱과 성추행을 그저 감내해야만 했던 시기는 저물고 있다. 우리는 서로의 용기가 돼 앞으로 더 나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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