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종 상태 개두술 하면 소뇌 조직 부풀어...종양 제거 불가능
서울고등법원 "수술 안 했다고 의료과실 아니다" 기각 판결
서울고등법원 제17민사부는 A환자의 가족이 B대학병원 재단을 상대로 낸 2억 7762만 원대 손해배상 청구소송 항소심(2015나2051843)에서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A씨는 좌측 귀의 청력 저하·이명·어지럼증 등을 치료하기 위해 2012년 7월 13일 B대학병원 이비인후과에 내원, 진료를 받기 시작했다. 8월 3일 자기공명영상 검사 결과, 좌측 소뇌교각부에 2.7cm의 종양이 발견됐으며, 청신경초종 진단을 받았다.
8월 7일 A씨를 진료한 신경외과 의사는 2cm 크기의 뇌수막종 또는 청신경초종으로, 안면마비 증상에 대해서는 '벨 마비(Bell's Palsy)'로 진단한 뒤 2주 동안 증상을 관찰한 후 감마나이프 수술을 시행키로 했다. 8월 9일에는 안과 진료를 받았다.
8월 21일 신경외과 의료진은 안면마비 증상에 변화가 없다며 감마나이프 수술은 안면마비 증상이 회복될 때까지 기다리기로 하고, 4주 후에 경과를 관찰키로 했다.
8월 28일 밤 12시 30분경 A씨는 갑자기 극심한 두통·메스꺼움·구토 증상이 발생, B대학병원 응급실에 내원했다. 밤 1시 1분경 CT 검사 결과, 좌측 소뇌교각부에 있던 종양 주변과 기타 지주막하 부위에 출혈이 발견됐으며, 뇌부종·뇌간부 경색·뇌압 상승 등이 나타난 상태였다.
01시 29분경 뇌압을 낮추기 위한 약물 투여를, 03시 10분부터 04시 19분까지 뇌압 감소를 위한 뇌실외배액술을 시행했다.
04시 54분경 두부혈관검사 결과, 좌측 소뇌교각부 종양 파열로 지주막하 출혈과 뇌부종이 증가한 소견을 보였다.
A씨는 8월 28일 오전 11시경 의식 저하와 반혼수 상태에서 동공이 풀리면서 대광반사가 소실되고, 12시 29분경 갑작스런 호흡저하와 함께 혼수상태에 빠졌다. CT검사 결과, 뇌부종·뇌간경색 소견을 보였다.
A씨는 8월 28일 오후 7시 40분경 뇌간반사가 소실되고, 호흡 마비로 인공호흡기에 의존하는 뇌사 의심 상태에 빠졌으며, 이후 뇌사 상태에 있다가 2013년 4월 7일 사망했다.
A씨의 가족은 B대학병원 의료진이 진료상 주의의무와 설명의무를 위반했다며 사용자인 병원측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안면마비의 원인과 종양 크기를 오진해 뇌종양 수술을 지연했다는 원고측 주장에 대해 "안면마비는 뇌종양뿐 아니라 감염이나 외상 등 여러가지 원인에 의해 발생할 수 있고, 뇌종양이 있는 경우라도 언제나 안면마비가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면서 청신경초종의 경과 중에 안면마비가 발생하는 빈도가 낮은 점, 뇌종양의 크기가 2.7cm로 작아 안면마비가 뇌종양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고 볼 가능성이 있는 점, 뇌종양이나 뇌졸중·외상·근무력증 등 다른 유발 원인이 없다고 판단되는 경우 벨 마비로 진단하는 것이 일반적인 점, 종양의 크기에 따라 치료방법이 달라진다고 볼 수 없는 점 등을 들어 "진단 및 처치가 합리적인 재량 범위를 벗어나 적시에 치료받을 기회를 상실하게 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또 "종양의 크기가 3cm 미만인 경우 청력 보존에 유리하고 안면마비 부작용 위험이 적은 감마나이프 수술을 고려한 결정을 잘못된 판단이라고 할 수 없다"면서 "감마나이프 시술을 예정한 채 경과 관찰을 한 것이 의사에게 부여된 합리적 재량범위를 벗어난 의료상 과실에 해당한다고 평가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뇌실외 배액술 시행을 지연하고, 뇌종양 및 혈종 제거수술을 시행하지 않았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후두개와에 종양과 출혈병소로 뇌의 부종이 심하고, 후두개와 공간이 밀접돼 급격한 뇌압상승과 임상증상이 악화되고 있었으므로 이러한 상태에서 후두개와 개두술을 시행하면 소뇌 조직이 부펼려져 튀어나와 뇌종양 제거 수술의 시행 자체가 불가능했을 가능성이 높아 우선적으로 뇌압을 낮추는 것이 필요하다"며 "설령 뇌종양 제거술을 시행할 수 있었다 하더라도 후두개와 뇌공간의 깊은 부위로 접근하기 어렵고, 부종으로 인한 소뇌 조직과 뇌종양 조직이 혼재해 분리 제거가 쉽지 않으며, 출혈성 종양조직에 묻혀 있는 뇌혈관의 보존이 용이하지 않아 혈관 파열 위험도 극히 높아 수술이 성공하더라도 합병증이 발병하거나 사망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개두술을 시행하지 않은 채 뇌압 감소를 위한 수술을 시행한 것이 부적절했다고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증상이 악화되면 즉각 병언에 와서 진료를 받아야 한다는 내용을 설명하지 않았으므로 설명의무를 위반했다는 원고측 주장에 대해 "질병에 관해 진료를 받고 있는 환자에게는 상식적인 내용으로 특별한 의학지식에 속하는 사항이 아니어서 의사의 구체적인 설명의무 대상이 된다고 보기 어렵다"면서 "갑자기 악화될 예외적 가능성까지 고려해 환자의 상태가 갑자기 악화될 수 있다거나 그에 대비한 추가검사를 받을 것인지 설명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의사가 설명의무를 위반해 환자의 치료기회를 상실시켰다거나 자기결정권을 침해했다고 할 수 없다"고 밝혔다.
비급여와 성과 중시 경영 관행으로 일방적으로 감마나이프 시술을 하도록 유도했다거나 각 진료과 간의 유기적인 협업체계가 미흡하고, 대리수술을 허용하는 운영시스템이 존재하고 있으며, 주치의 수술 참여 등에 관한 환자 관리 메뉴얼이 부존재 하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감마나이프 시술 권유는 의학적으로 적절했다"며 "유기적 협업체계에 관한 운영이 미흡했다고 볼 증거가 없고, 환자 메뉴얼의 부존재와 사망이라는 악결과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1심(서울동부지방법원 2012가합19237) 역시 의료진의 판단에 문제가 없다며 원고측 청구를 기각했다.
항소심 판결에 불복한 A씨 가족은 대법원에 상고(2017다206939), 최종심을 받아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