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준익 변호사(의사·법무법인 LK파트너스) [13]
의료소송을 주로 하는 변호사에게 가장 어려운 사건이 발생하는 임상과목은 바로 산부인과이다.
특히 분만 관련 분쟁이 발생하는 경우, 최초 임신 진단 시점부터 진행한 다양한 산전진단과 출산에 임박해서 시행한 태아 건강평가 결과, 진통이 시작된 이후 산모에게 관찰된 다양한 징후들과 이를 근거로 한 분만 방법 선택, 분만 과정에서 발생한 여러 가지 이벤트와 분만 직후 신생아와 산모 관리에 이르기까지 매우 긴 시간동안 이루어진 모든 의료행위에 대해 환자 측은 이의를 제기한다.
그러나 산부인과 영역에서 시행하는 여러 가지 검사를 비의료인이 이해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아 분쟁이 장기화 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는 산부인과 전공의 감소는 이런 분쟁 노출 위험도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그런데 산부인과 의사들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는 무엇이 있을까.
다른 임상과도 마찬가지지만, 현재 국내 법률체계에서 분만사고가 발생한 경우 의사를 보호하는 제도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생명 탄생 최전선에 선 전문직이 비의료인의 판단에 의해 파산하거나 범법자가 될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는 것이다. 물론 분만관련 사고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을 줄이고자 하는 노력이 없던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이런 노력의 결과물은 오로지 환자 측에 유리하도록 편중된 보상제도 뿐이다.
의료분쟁조정법에서는 불가항력 의료사고 보상에 대한 조항을 마련하고 있으나 이 제도의 적용을 받는 범위는 오로지 분만과 관련해 발생한 신생아의 뇌성마비, 산모나 태아 및 신생아의 사망 뿐이다.
보상재원은 국가가 70%만 분담하고 나머지는 분만을 시행하는 의료기관이 분만건수에 따라 차등해 책임진다. 불가항력적 의료사고에 대해 책임이 전혀 없는 의사가 오로지 환자를 위해 보험료를 납부하는 기이한 구조가 운영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보상재원을 분담하는 산부인과 의사에게 보상제도는 어떤 이익이 있을까?
의사로부터 재원을 분담케해 환자에게 보상을 해 주는 제도를 시행하려면 당연히 의사에게도 재원 분담에 상응하는 혜택이 주어져야 하는 것이 정상이다. 그런데 의료분쟁조정법에는 의료인의 분담금 납부에 대해 어떤 제도도 규정돼 있지 않은 모순이 존재한다. 이는 반드시 수정될 필요가 있다.
예컨대 분만관련 사고가 발생한 경우 의료기관에게 신고의무를 부과하고 보상제도를 운영하는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 등을 통해 경위를 파악해 보상금을 미리 지급하는 방식으로 무분별한 소송 제기를 차단하는 방법, 중과실이 아닌 한 형사책임을 면책해 주는 방법, 과실이 있는 의료인에 대한 국민건강보험공단의 구상청구 금지 등이 거론될 수 있을 것이다.
또 현재의 보상제도는 보상금이 너무 적어 환자 측에게도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보상금 상한액은 겨우 3000만원으로 뇌성마비가 발생한 신생아의 양육비용에는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 지급되는 것이다.
분만 자체에 위험이 따르고, 실제 사고가 발생한 경우 의료비 이외에도 다양한 명목의 양육비용이 정상 신생아에 비해 발생할 것이 분명한데도 이런 비용 부담은 오로지 민간에 맡겨져 있는 구조가 과연 출산율 저하에 아무런 영향이 없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왕 의사로부터 분담금을 징수한다면, 해마다 분만관련 사건으로 인해 발생하는 분쟁해결 비용을 합산해 이를 모두 감당할 수 있는 재원을 마련하고, 이를 위해 분담금을 획기적으로 인상하되 대신 모든 사건에 대해 중재원이 우선적으로 보상을 시행하거나, 환자로 하여금 소송과 달리 불복이 가능하지 않은 중재를 신청하도록 강제하는 제도 역시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중요한 것은 의사와 환자 모두가 수긍할 수 있는 방향으로 분만사고에 대한 비용부담 위험을 제거하고, 소모적인 갈등을 예방하는 제도가 반드시 정착돼야 한다는 점이다.
의사/법무법인 LK파트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