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준익 변호사(의사·법무법인 LK파트너스) [15]
설명의무법이 시행되면서 많은 의료기관이 동의서 양식을 법 규정에 맞게 바꾸고 있고, 수술 전후 환자가 준수할 사항을 구체적으로 표시하는 등 긍정적인 변화가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대형병원에 비해 설명 절차가 취약했던 중소규모 병원에서 규격화된 동의서를 구비해 수술 전 적절한 설명을 이행하는 것은 분쟁 예방에 분명한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런데 반대로 생각해 보자.
과연 진료계약 체결에 있어 환자의 의무는 없는 것일까. 자신의 상태와 과거력을 정확히 의료진에게 알릴 고지의무 말이다.
우리 법원 하급심 판결은 환자에게 자기의 질병·증세·병력·체질 등 당해 진료에 필요한 사항을 숨김없이 사실대로 알려야 하는 고지의무를 인정하고 있고, 이를 위반해 질병의 치료라는 목적이 달성되지 않은 경우 의료인이 진료의무를 태만히 했다거나 환자에 대한 진료과정상의 부주의로 인한 과실이 인정되지 않는 이상 의료인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본다.
실제 분쟁이 발생하여 소송을 진행하다 보면 환자 과거력 고지 여부가 문제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성형외과 진료의 경우 동일 부위 수술 이력이나 이전 수술 후 합병증 발생 여부, 수술 부위 질병 유무로 인해 수술 후 환자 상태가 크게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환자로부터 해당 정보를 얻어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문제는 환자가 의도적이든 아니든 자신의 정보를 말하지 않는 경우가 발생하는 경우이다.
이런 상황에서 분쟁이 발생하는 경우 의사의 진료가 적절했는지 여부는 진료기록부를 보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환자의 과거력이 기재되어 있지 않는 경우 환자가 고지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의사가 과거력에 대한 구체적인 질문 자체를 하지 않았다고 해석될 위험성이 존재한다.
예컨대 토안(兎眼)으로 인해 안구건조증 등이 발생해 안과 진료를 받은 이력이 있던 환자가 이를 의도적으로 고지하지 않고 눈 수술을 받은 후, 수술로 인해 토안이 발생했다고 주장하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환자의 과거력을 알지 못하는 한 토안이 수술 전에 있었음을 입증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고, 토안이 있다는 환자의 상태에만 주목해 법원은 수술과 토안 사이 인과관계를 인정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나아가 진료기록부에 과거력에 대한 질의 여부가 적혀있지 않거나, 과거력 항목 자체가 없는 경우라면 고지의무 위반 보다는 과거력에 대한 문진을 하지 않았다는 의심을 받게 될 것이다.
이런 상황을 악의적으로 이용해 분쟁을 유발하고 배상을 받는 극소수의 환자가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결국 환자 고지의무 불이행 역시 의료인이 입증해야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진료기록부에 반드시 과거력에 대한 항목을 구체적으로 만들어 두어야 한다.
나아가 수술 동의서에 아예 환자가 직접 과거력에 대한 사항을 작성하도록 하고, 고지하지 않은 과거력으로 인해 발생한 합병증은 오로지 환자 책임이라는 내용도 필히 기재하는 것이 안전하다.
진료기록부의 증명력은 절대적이며, 적절한 의료행위 시행의 가장 강력한 근거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