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헌 순천향의대 교수(순천향대 서울병원 비뇨기과)
긴 시간의 의대교육과 수련의와 전공의를 마치는 과정 속에서 물론 예외도 많지만 대부분의 남자 의사들은 미혼인 경우가 많다. 전공의를 마치고 어느덧 결혼 적령기가 되면 세속적인 말로 아직까지도 의사는 선호하는 신랑감임에는 분명하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데 개인 선호도에 따라서 다양한 이성을 선택하게 됨은 당연한 결과이고 그 선택을 다른 사람이 왈가불가 할 일은 분명히 아니다. 하지만 의사, 물론 의사에 국한된 얘기는 아니지만 과거부터 '의사의 배우자'라 함은 소위 말해 잘나가는 집안의 여성을 선택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다. 많은 고생을 해서 얻은 '의사'라는 지위이고 그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그에 합당하는 잘나가는 집안의 여성이 선택되어지는 것은 당연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의사도 한 사람 한 사람의 개인이고 또한 그 개인이 본인에 해당하는 사회 명예와 의무를 다하는 데에 있어 배우자의 선택이 너무 천편일률적이라는 현상은 썩 보기 좋지는 않다.
잘나가는 집안에 뛰어난 미모, 고상한 취미 그리고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세련미 등등 만이 연애도 모르며 긴긴 시간을 배움과 의료행위를 하는데 보낸 젊은 의사들에게 맞는 훌륭한 배우자가 되는 것일까? 물론 그럴 수도 있지만 너무 보편적으로 팽배하는 사고란 생각이 든다.
다른 젊은 남녀들처럼 소설 속의 주인공 같이 낭만적인 사랑으로 시작돼 추억을 더해가며 굳어진 그런 결혼이 아니라도 좋다. 그런 낭만적인 사랑을 못했다 하더라도 사랑에 대한 그들의 선택 앞에 '보상'을 없애야 한다. 긴 시간 동안의 노력에 대한 '보상', 그런 것을 바라기에는 의사란 직업은 훨씬 더 큰 사회적 책임, 도덕적 의무와 세상에 대한 연민이 강조되는 직업이다.
'보상'에 무게를 둔 남성은 아마도 사랑이 목적과 종착이 아닌 수단에 지나지 않게 된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보통 남녀 간의 사랑이라는 것이 긴 세월의 추억이 있어 세월의 무게만큼 단단하게 굳어졌다 하더라도 어느 순간 부서져 깨져버리는 유리컵 같은 것이기에 그런 남녀 간의 사랑이 수단이 됐을 때는 떨어뜨리기도 전에 깨지는 유리컵이 될 것이다.
그럼 의사들은 어떤 여성을 만나야 하는 것일까? 참으로 웃긴 질문이다. 물론 가장 좋은 것은 자연스럽게 연애를 하며 만나는 것이 가장 좋은 만남이라는 데는 불문이다.
하지만 대부분 남자 의사들이 그렇듯이 공부와 일에 시간을 뺏기어 연애 한번 못해보고 결혼을 전제로 만나게 된다면 앞에서 말한 세속적인 사항들 보다 한번은 더 생각해볼 사항이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런 세속적인 사항들이 나쁘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하지만 의사로서 앞으로도 우리가 이 사회에서 지위를 유지하려면 그에 따른 책임과 의무 또한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므로 장기간 세상과 떨어져 자기만의 세계를 산 의사들에게는 이런 사실을 수시로 깨우쳐줄 지성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지성'이라고 하면 많은 의사들은 코웃음을 칠지도 모른다. 아는 수준으로만 따지면 의사가 부족한 점이 무엇이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지성'이란 지식의 수준을 넘어서 살아있는 지식을 말한다. 힘들게 배워서 자신이라는 울타리 안에 갇혀있는 지식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면서 빛나는 지식 그리고 지식들끼리의 상호작용으로 본인이 속한 사회에 플러스 되는 행동을 잉태하는 살아있는 지식을 '지성'이라 말하고 싶다.
이런 애매하고도 모호한 '지성'이란 단어를 갖고 있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그 기준을 어디에 둬야 하나? '지성'을 갖춘 여성이란 어떤 사람이며 어떻게 찾아야 하는가? 아무도 자신있게 이런 물음들에 대해 답을 하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굉장히 주관적인 요소가 많이 매개할 수 있는 물음들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 그런 여성을 찾기는 분명 어려운 일임에는 틀림없다. 획일적으로 부와 명예를 추구하는 남성들과 마찬가지로 여성들도 비슷한 가치관들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에서 어느 정도의 지위가 있다는 것은 분명 획일적이라는 단어와는 상반되는 말이다.
획일적인 통념을 갖고 있던 사람들도 지위라는 것을 가지면 그에 합당한 행동과 책임을 보여주는 것이 현대사회에서의 지성인의 역할 아닌가? 소위 말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라고 하는 것이 지위에 합당하는 행동과 책임으로 봐도 다를 바 없을 것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표상이라고 하면 너무나도 잘 아는 영국 왕실을 떠올릴 것이다. 엘리자베스 여왕부터 그의 아들 그리고 손자들, 모두 영국의 국운이 걸려있는 전쟁에 포병과 운전병으로 참전해 그에 합당하는 책임과 의무를 보여줬다.
영국 국민에게 인정받고 선망의 대상이 되며 또한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정통왕실가로서 그 명맥을 유지하는 것은 영국 왕실의 책임 있고 모범적인 지성에서 비롯됨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선진국을 향해 달려가는 우리 사회에서 흔들리는 의사의 지위를 보며 안타까움을 금치 않을 수 없다.
어느 때부터인가 의사는 '돈벌레', 환자를 돈으로 아는 집단으로 매도되고 있다.
사회의 전반전인 인식이 의사에 대한 편견이 팽배함에도 우리 의사들은 언제까지 '여전히 나만 잘 살면 되지'하면서 지성에 등 돌린 채 부만 추구할 것인가? 아니면 한 번 쯤은 되돌아보며 성스러웠던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기억할 것인가? 어느 때부터인가 우리 사회에서 의사의 '지성'은 사라지고 움직이지 않는 지식과 욕심만이 팽배하다.
이런 분위기에서 젊은 날을 보낸 미혼의 의사들이 자신의 부귀영화 밖에는 관심 없는 세속적인 여성들과 결혼하게 되면 그야말로 천생연분 일지도 모르나 위태로운 우리 사회의 의사의 지위를 한 번쯤은 생각해 본다면 우리의 획일적인 배우자 선택에는 분명히 문제가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