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준익 변호사(의사·법무법인 LK파트너스) [18]
대규모 인명피해가 발생한 화재사고가 또 다시 발생했다.
화재 원인이나 해당 병원의 화재예방 조치·시설 등이 적절했는지는 자세한 수사 결과가 나와봐야 알겠지만, 건물 무단 증축이나 응급실 구조변경, 미흡한 소방안전 및 전기시설 검사 등이 화재 발생이나 피해 확대 원인으로 속속 밝혀지고 있는 상황이다. 만약 이와 같은 법률 위반 사항으로 인해 화재 진압과 대피 등이 지연됐다면, 당연히 책임이 있는 사람에게 과실에 상응하는 처벌이 이뤄져야함은 물론이다.
의료기관 운영의 어려움에 대한 안타까움을 공감하는 분들도 많이 있을 것이나, 이런 감정이 무조건적인 옹호로 연결되는 상황을 경계해야 하는 것도 당연하다.
그런데 언론보도에 따른 수사 방향을 살펴보면 다른 대형 사고가 발생한 경우와 마찬가지로 묘한 기분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지금 수사기관이 화재 발생 의료기관에 대해 취하고 있는 입장은 업무상 과실치사나 소방 또는 건축 등 화재와 관련된 법률 위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투망식으로 병원 운영과 관련된 모든 부분을 훑어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병원 운영 의료법인에 대한 압수수색 대상에 세무·회계자료나 통장 등이 포함돼 있는데, 화재 발생과 위 자료의 연관성이 도대체 무엇인지 추측조차 하기 어렵다. 압수수색 대상물은 범죄 혐의와 관련이 있을 것이 요구되고, 설사 그 과정에서 다른 혐의에 대한 의심 자료가 발견된 경우에도 원칙적으로 이는 증거로 사용할 수 없음을 수사기관이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게다가 화재 발생 병원은 보건복지부 허가를 받아 설립된 의료법인이 경남도지사 허가를 거쳐 개설해 운영한 것인데 수사기관은 사무장 병원, 즉 비의료인이 의료인의 명의를 빌려 의료기관을 개설한 것인지 여부를 규명하겠다고 나선다.
이 사건 수사를 담당한 기관이 의료기관 개설에 대한 의료법 규정에 얼마나 무지한지 드러나는 대목이다.
또 다른 보도에 따르면 의료법인이 영리 목적으로 운영된 것인지, 자금 횡령 여부 등에 대한 수사도 이뤄지고 있다고 한다. 의료법인 운영 과정에서 횡령 또는 배임 등 행위가 있었다면 이는 당연히 처벌해야 하는 범죄이나, 배당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는 의료법인이 영리 목적으로 운영되는지를 수사하겠다는 것은 넌센스에 가까운 언론 보도용 입장에 불과하다.
이외에도 환자 결박·다인실의 병상 수와 같이 의료기관의 잘못이라고 볼 수 없는 지엽적인 쟁점에 대한 편향적인 보도 역시 수사가 적절하게 이뤄지고 있는 것인지를 의심케 하는 대목이다. 이런 무리한 수사는 과거 재난이 발생했을 때 책임자들에 대한 여론과 처벌 수위가 어떠했는지를 생각해보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적법절차 원칙을 준수해야 하는 수사기관이 화재 발생 의료기관의 모든 범죄사실을 낱낱이 파헤쳐 처벌하겠다는 태도로 달려드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안타까운 희생이 수반된 재난이 발생하는 경우 후속조치는 그 원인에 대한 철저한 규명을 통해 상응하는 처벌을 가하고 우리 사회 제도 보완의 기틀을 마련하는 것이며, 처벌 자체가 목표가 되는 상황이 결코 발생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의사/법무법인 LK파트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