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양육 지원 없는 '낙태가 유리한 사회'

출산·양육 지원 없는 '낙태가 유리한 사회'

  • 송성철 기자 good@doctorsnews.co.kr
  • 승인 2018.05.2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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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사회 전폭적 지원 확대하고, 미혼부 양육 책임 법제화
한국의료윤리학회 18일 학술대회 '인공임신중절의 윤리' 조명

최안나 국립중앙의료원 산부인과 난임센터장이 18일 고려의대에서 열린 한국의료윤리학회 춘계학술대회에서 '인공임실중절의 실태와 의료적 문제'에 관해 발표하고 있다. ⓒ의협신문
최안나 국립중앙의료원 산부인과 난임센터장이 18일 고려의대에서 열린 한국의료윤리학회 춘계학술대회에서 '인공임실중절의 실태와 의료적 문제'에 관해 발표하고 있다. ⓒ의협신문

'인공임신중절(낙태)' 대신 '출산'과 '양육'을 하는 것이 도움이 되도록 제도와 사회적 지원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조언이 나왔다.

최안나 국립중앙의료원 산부인과 난임센터장은 18일 고려의대에서 열린 한국의료윤리학회 춘계학술대회에서 '인공임실중절의 실태와 의료적 문제' 주제발표를 통해 "출산 과 양육을 하기 보다 임신하지 않거나 원치 않은 임신을 한 경우 낙태를 하는 게 더 유리한 사회"라면서 "출산하고, 양육하는 게 개인과 가정에 더 도움이 되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도와 사회적 지원이 없는 상황에서 낙태를 선택하도록 하는 것은 여성의 권리를 보호하는 게 아니라 사회적 강요"라고 지적한 최 센터장은 "어떤 임신이라도 차별받지 않고, 존중하는 사회를 만들면 저출산과 낙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대안으로 미혼부의 양육 책임을 법제화 할 것을 주문했다.

"남성이 부양 책임을 지지 않는 구조를 바꾸지 않은 채 낙태 허용 범위를 넓히는 것은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높이는 게 아니라 위험으로 내몰게 된다"면서 "여성에게만 책임을 묻는 사기"라고 단언했다.

최 센터장은 "낙태율이 낮은 선진국에서는 미혼부가 양육책임을 회피할 경우 월급과 재산을 압류하거나 운전면허와 여권을 정지하고, 벌금을 매기고 구속까지 한다"면서 "미혼부가 양육비 지급 능력이 없으면 국가가 미혼모에게 선지급하고 미혼부에게 구상권을 청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낙태에 관한 합리적 절차와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는 점도 주문했다.

최 센터장은 "시술자가 아닌 의료인으로부터 낙태에 대한 객관적인 정보를 자세히 듣고, 낙태하지 않는 경우 할 수 있는 선택과 받게 되는 지원에 대해 충분한 설명을 들어 숙고절차를 거친 뒤 여성 자신이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면서 "정부는 낙태보다 출산을 선택하는 것이 개인이나 가정에 더 득이 되도록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보조생식술로 인한 다태 임신과 선택 유산을 방지하기 위한 방안으로 자연주기 인공수정과 단일 배아 이식 체외 수정에 대한 지원 횟수 확대를 제안한 최 센터장은 난임의료기관에 대한 평가는 임신 성공률보다 안전성을 우선해야 한다는 점도 짚었다.

의료인에게 낙태를 거부할 권리를 보장하고, 모든 시술 정보를 정부가 파악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최 센터장은 "진료를 거부할 수 있는 정당한 사유에 의료인의 낙태 거부권리를 담아야 한다"면서 "낙태 시술 역시 국공립병원이나 지자체에서 허가한 병의원으로 한정해 실효성 있는 상담과 숙고 절차는 물론 보고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국가생명윤리정책원이 후원한 이번 학술대회에서는 권복규 이화의대 교수가 사회를 맡은 가운데 ▲인공임신중절의 실태와 의료적 문제(발제 최안나·국립중앙의료원 산부인과/토론 최규진·인하의대) ▲인공임신중절의 법적 문제(발제 이근우·가천대 법과대학/토론 김은애 이화여대 이화사회과학원) ▲인공임신중절에 대한 여성학적 시각(발제 백영경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문화교양학과/토론 이일학·연세의대) ▲인공임신중절에 대한 윤리학적 접근(발제 김상득·전북대 철학과/토론 오연재 한림대 간호학부) 등의 발표와 토론이 이어졌다.

한국의료윤리학회는 18일 '인공임신중절의 윤리'를 주제로 춘계학술대회를 열었다. 학술대회에 참석한 발제자와 토론자들이 '인공임신중절'의 문제점과 개선 방안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있다. ⓒ의협신문
한국의료윤리학회는 18일 '인공임신중절의 윤리'를 주제로 춘계학술대회를 열었다. 학술대회에 참석한 발제자와 토론자들이 '인공임신중절'의 문제점과 개선 방안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있다. ⓒ의협신문

이근우 가천대 교수(법과대학)는 '임공임신중절의 법적 문제'를 통해 "형법상 낙태좌 조문체계를 보면 지금은 폐지된 약종상이 열거돼 있는 반면에 간호사는 누락돼 있고, 의사가 강간 또는 준강간에 대한 사실관계를 판단할 수 없어 법원의 확정판결로 판단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이미 낙태 허용시기를 쉽게 넘기는 문제가 있다"면서 현실에 맞게 법조문의 손질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 교수 역시 "임신·출산·양육에 대해 국가나 사회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어야 함에도 낙태만을 금지함으로써 임부나 부모에게 전적인 부담을 지우는 것은 좋은 윤리적 동기에도 불법·탈법적 낙태를 압박할 따름"이라며 정책적·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점에 무게를 실었다.

'인공임신중절에 대한 윤리학적 접근'에 대해 발표한 김상득 전북대 교수(철학과)는 "태아는 사람으로 발달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로 인위적 창조력과 자연적 창조력이 결합된 신성한 존재"라면서 "인간생명의 신성성을 모독하지 않도록 법적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태아가 생존가능성을 지니는 시점이후에는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임신중절을 허용해선 안될 것"이라면서 "윤리적 합의가 이뤄어지 않는 분야에서는 어떤 정책이나 법률이 절차적 공정성이 확보된 가운데 제정됐다면 이를 수용하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조언했다.

한편, 헌법재판소는 인공임신중절(낙태)을 했을 때 형법에 따라 임신부를 처벌하는 형법 제269조 1항(부녀가 약물 기타 방법으로 낙태한 때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과 의료인을 처벌하는 제270조 1항(의사·한의사·조산사·약제사 또는 약종상이 부녀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어 낙태하게 한 때에는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등에 관한 위헌소원(2017헌바127) 사건에 관한 판단을 앞두고 5월 25일 오후 2시 공개변론을 열기로 했다.

헌법재판소 9인 재판관 가운데 김이수·이진성·김창종·안창호·강일원 재판관이 9월 19일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있어 9월 이전에 위헌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하다.

헌재 결정이 임박한 가운데 낙태죄 폐지를 요구하는 여성노동계는 성적 자기결정권과 임신 및 출산에 관한 자기결정권을 제대로 보장할 수 있는 사회적 조건을 만들고, 출생의 조건과 관계없이 제대로 삶을 보장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요구를 하고 있다. 아울러 보다 안전한 시술을 위한 의료진 교육과 함께 태아의 성장을 중지시키고, 자궁을 수축시켜 임신 산물을 배출토록 하는 낙태 약물인 '미프진'의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의료계는 '미프진'을 임신 10주 이상에서 복용할 경우 심각한 출혈 위험이 있고, 임신 7주 이내 복용하더라도 구토·설사·두통·현기증·요통은 물론 심한 복통과 하혈을 경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빈혈·혈액응고장애·심혈관질환 등 내과적 질환이 있는 경우 과다 출혈을 유발할 위험도 있다.

이 같은 부작용 우려에 따라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부작용 및 경과 확인을 위해 미프진 복용 3일차와 14일차에 반드시 산부인과를 방문하도록 명시했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 피임생리연구회는 "복용 후 복통과 출혈이 있음에도 유산이 되지 않을 수 있고, 불완전 유산이 되면 인공임신중절 수술을 하는 것보다 출혈·염증·자궁손상 등을 비롯한 부작용 위험성이 커져 심하면 자궁 적출수술을 해야 한다"고 우려했다.

산부인과의사회는 "원하지 않는 임신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산부인과나 여성의원 등을 방문해 마이보라와 같은 경구피임약, 피하 이식형 피임시스템, 루프나 미레나 등 자궁내 피임시스템, 3개월간 효과가 지속하는 피임주사 등 다양한 피임방법 중 자신에게 맞는 피임방법을 선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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