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명한 선택'...덜 낭비적·더 나은 의료를 위한 전략?

'현명한 선택'...덜 낭비적·더 나은 의료를 위한 전략?

  • 김영숙 기자 kimys@doctorsnews.co.kr
  • 승인 2021.03.23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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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의학한림원 주도, 미국 내과의사재단 'Choosing Wisely 캠페인' 소개
5개 학회 '권장 사항' 개발...의료행위 '족쇄' 우려 속에서도 학회 자발적 참여

ⓒ의협신문
미국 Choosing Wisely 홈페이지. 2012년 시작된 이 운동은 미국을 넘어 캐나다, 호주 등으로 확산됐고 한국에서는 2016년을 전후 의학한림원 주도로 국내에 소개됐다. ⓒ의협신문

의사와 환자가 의사소통을 통해 적정의료를 행하자는 '현명한 선택'이 국내에 소개된 지 5여년 가까운 가운데 2021년 확산의 변곡점을 맞을 것으로 기대된다.

미국의 'Choosing Wisely 캠페인'이 국내 의학계에 회자된 것은 2016년을 전후해서다. 대한민국의학한림원이 '진료서비스의 적정화를 위한 현명한 선택 도입방안'을 주제로 2016년 10월 포럼을 개최하면서 그 개념과 의미가 알려지기 시작한 것이다.

2012년 미국 내과의사재단, Choosing Wisely 캠페인 시작...캐나다·호주·영국 등 확산

'Choosing Wisely'는 미국에서 발생하는 의료비 중 약 30%가 불필요하거나 중복되는 검사나 치료 때문에 발생한다는 문제 인식에서 출발했다. 2012년 미국내과의사재단(ABIMF)이 컨슈머리포트와 손잡고, 9개 의학 전문학회가 발표한 최우선 5개 항목 리스트를 기반으로 공식 출범했다. 이 운동의 목표는 의사와 환자의 자발적 참여를 통해 불필요한 진단이나 검사, 치료 등을 배제함으로써 의료자원의 낭비를 줄이고, 의료서비스의 질을 향상하자는 것.

'의사가 환자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것'을 기본원칙으로,  환자에게 필요한 처지가 무엇인지를 결정하기 위해 진료나 검사를 결정하기 전 질문해봐야 할 다섯 가지 리스트를 만들었다. 환자가 받을 처지나 검사가 ▲근거중심인지 ▲반복되지 않는지 ▲환자에게 해를 주지는 않는지 ▲정말로 필요한 것인지를 의사와 환자가 충분히 의사소통한 후 결정하자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현재 30개 이상의 학회가 참여해 '불필요한 검사 또는 치료' 리스트를 선정, 공개하고 있다. 지금까지 550개 이상의 권고안을  발표했으며, 110개 이상의 환자 교육 자료를 개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캠페인은 미국에 이어 캐나다·호주·영국·이탈리아·일본 등 20여나라에 전파됐다.

한국에선 의학한림원 주도...2020년 5개 학회 참여해 권장 사항 마련

국내에서는 의학한림원이 주도해 2016년 첫 포럼 이후 2017년 한국보건의료연구원(NECA)과 손잡고 '적정진료를 위한 Choosing Wisely 리스트 개발 검토 원탁회의'를 열어 한국형 Choosing Wisely 리스트를 발표하면서 논의의 출발점을 열었다.

이어 의학한림원은 2020년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연구과제로 '공급자 주도 가입자의 합리적 의료이용 지원 방안 과제'를 수행하면서 '현명한 선택'을 진일보시켰다. 흉부외과·내과·비뇨의학과·영상의학과·진단검사의학과 등 국내 5개 전문학회와 함께 국내 실정에 맞는 '현명한 선택' 리스트를 개발했다. 5개 전문학회는 환자 개인의 상황에 맞는 가장 적절한 치료에 관한 결정을 내리는 데 도움이 되도록 환자나 의사가 한 번 더 생각해봐야할  다섯 가지 항목의 의료 행위와 그 목적을 제시했으며, 지침·근거·전문가의 의견을 기반으로 한 권장사항을 만들었다.

ⓒ의협신문
출처: 의학한림원 2021년 1월  뉴스레터 ⓒ의협신문

의료행위 족쇄 될라 우려 불구 전문학회 참여 확산

하지만 '현명한 선택'에 대한 우려가 없는 것은 아니다. 2017년 열린 원탁회에서도 '현명한 선택' 리스트를 접한 연관 학회들은 임상 현실을 반영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거셌다. 

예를 들어 리스트에 포함된 '경한 발목 염좌의 경우 발목 X선 검사를 시행하지 않는다'는 내용은 정형외과의 반발을 샀다. 영상검사 자료가 진료와 치료 판단의 기초 자료가 되는데 검사를 하지 말라는 것은 위험한 접근법이란 비판이 나온 것이다. '현명한 선택' 리스트는 결국 환자에게 하지 말아야 할 검사나 처치를 정하고, '과잉진료를 하지 말라'는 것이다. 과잉진료에 대한 시각과 입장이 다를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의사의 의료행위에 족쇄를 채울 수 있다는 우려는 넘어야 할 산이다.

안형식 의학한림원 정책개발위원장(고려의대) 역시 "의사들의 우려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며 "가장 먼저 의사들이 '현명한 선택'의 취지를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대를 넓히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꼽았다. 

안 위원장은 "과잉진료를 하지 말자는 리스트가 진료비 심사에 이용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스스로 자발적으로 하는 것이며, 강제사항이 아니다. (의학한림원은) 국민건강보험공단이나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도 이를 이용해 진료비 심사를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현명한 선택은 의사들이 환자를 위해 객관적으로 의료행위를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밝힌 안 위원장은 "의사가 전문적 판단으로 환자에게 필요한 진료를 해 의료자원의 낭비를 막는다는 취지에서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자발적 운동' 강조...올해 참여 학회 확대·홍보 계획

의학한림원은 올해를 '현명한 선택' 운동을 의료계에 확산시키는데 주력한다는 방침이다. 지난해 5개 전문학회가 참여해 '현명한 선택' 리스트를 만들었지만 코로나19 상황 때문에 학회 간 모임이나 토론의 장이 열리지 못하면서 그 존재를 알리는데 한계가 있었다. 올해 춘계학술대회에서 각 학회가 만든 '현명한 선택'이 인증 절차를 거치면 의학한림원과 해당 학회들은 본격적인 홍보에 나설 계획이다.

더욱이 '현명한 선택'에 가장 적극적인 내과학회는 올해 9개 세부학회가 참여할 계획이다. 리스트 선정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의학한림원은 이와 함께 국내 적합도 여부를 파악하기 위해 회원 학회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추진하고 있다. 조만간 24개 임상 전문학회들과 만나 '현명한 선택'의 과정과 외국 사례 등을 설명하는 등 참여도를 더욱 높일 계획이다.

경제개발협력기구(OECD)는 2017년 <낭비적 의료비용 지출에 대한 문제해결> 보고서에서 "'현명한 선택' 캠페인은 덜 낭비적이고 더 나은 선택이자 의사와 환자를 위한 전략"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은 OECD 국가 중 의사의 진료 횟수가 가장 많은 나라에 속한다. 서구 국가들에 비해 아직 의료비 지출은 적지만 증가속도는 매우 빠른 편이다. 특히 만성질환의 증가 및 고령화 사회로의 가속화는 의료비용의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 의료자원의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 과제인 한국에서도 '현명한 선택'이 '덜 낭비적이고 더 나은 선택'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지 2021년은 중요한 한 해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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