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능성화장품과 화장품법
2019년 12월, 식품의약품안전처는 기능성 화장품의 범위에서 '아토피 피부염 완화 기능' 표현을 제외하는 화장품법 시행규칙 일부 개정령을 입법 예고했다. 기존의 시행규칙에 따르면, 기능성화장품의 정의에 '아토피성 피부의 건조함 등의 완화에 도움을 주는 기능성 화장품'이 들어 있었고, 이러한 정의는 마치 화장품을 아토피를 완화시켜주는 의약품으로 오인할 소지가 있었다. 이에 개정안에서는 해당 내용에서 '아토피'가 빠지고, '손상된 피부 장벽을 회복함으로써 가려움 개선에 도움을 주는 기능성 화장품'으로 변경되었다.
누군가는 시행규칙 하나가 바뀌었을 뿐이라고 생각할지 모르나, 그 뒤에는 의료계와 윤일규 의원실의 지난한 '투쟁'이 있었다.
식약처는 2017년 5월 30일 기능성 화장품의 종류를 큰 폭으로 확대하는 내용의 개정 화장품법과 시행령·시행규칙, 개정 기능성 화장품 심사 규정 등을 시행했다. 기능성 화장품에 미백, 주름 개선, 자외선 차단에 이어 탈모 완화, 여드름성 피부 완화, 아토피성 피부 보습 등을 추가하는 내용이 담겼다. 시행 이후 학계와 환자 단체, 특히 피부과학회와 의사회에서 마치 화장품이 해당 질병에 의학적 효과가 있을 것으로 오인하게 하거나 화장품에 의존해 조기 진단을 막아 오히려 증상을 악화시킬 수 있다며 크게 반발했다.
그러나 화장품법 시행규칙을 개정하는 것은 식약처의 권한이며, 의료계의 반대에도 식약처는 수년 간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처음 학회로부터 의원실로 민원이 들어왔을 때, 어떻게 하면 정부기관을 움직이게 할 수 있을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시행규칙을 바꿀 수 없다면, 법으로 바꾸면 된다.'
발상의 전환은 생각 외로 간단했다. 입법 권한은 국회의원에게 있으며, 시행령이나 시행규칙 개정 권한은 총리나 정부부처에 있다면, 국회의원에게 있는 권한을 적극 활용하자. 이에 2019년 5월, 윤일규 의원실에서 기능성 화장품에 대한 세부 품목을 총리령으로 위임하는 규정을 아예 삭제하고, 화장품법으로 기능성 화장품의 정의를 끌어올려 질병 명을 넣지 못하도록 하는 개정안을 발의했다. 시행령에서 '아토피'라는 단어가 들어있는 기능성화장품의 정의가 있어도, 상위 체계인 법에서 기능성화장품의 정의에 '아토피'를 쓸 수 없다고 못 박은 것이다.
개정안이 발의되자 비로소 식약처가 움직였다. 신기할 정도로 빠르게. 이후에는 의원실에서 직접 나서서 식약처와 화장품업계, 의료계, 환자 단체 사이 대화의 자리를 주선했다. 협상이 결코 순조롭진 않았으나 결과는 위에 적었듯이, 식약처가 기능성화장품의 정의에서 '아토피'를 삭제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의료계의 숙원 사업이 이뤄진 것이다. 사실 당연한 것이다. 아토피는 화장품으로 좋아질 수 없으니까.
이미 지난 이야기지만, 이 일화가 시행령이나 시행규칙을 바꾸고 싶은 누군가에게 하나의 힌트가 되었으면 한다. 찾아보면 어느 쪽이든 길이 있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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