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훈 이사 "특별법 제정 법치 국가서 부당한 차별과 특혜 부여하는 것"
간호법 제정 전 '사회적 합의' 우선 이뤄져야 강조하기도
법률 및 실무 충돌·용어 해석문제 등 법안 내용 문제 지적도 이어져
국회에서 계류 중인 간호법과 관련해 의료계에 이어 법조계에서도 간호법은 '통상적인 입법 추진'이 아니라는 지적이 이어졌다. 특히 법조계에서는 간호법안을 특별법으로 제정하게 되면 법치 국가에서 일부에게 부당한 차별과 특혜를 부여하는 것과 가깝다고 밝혔다.
전성훈 대한의사협회 법제이사(변호사, 법무법인 한별)는 2월 17일 대한의사협회 KMA TV를 통해 현재 국회 계류 중인 간호법안의 법리적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었다.
우선 의료 소송이나 의료 정책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변호사 중에서도 이번 간호법안 제정과 관련해 우려를 표하는 목소리가 상당하다고 법조계 분위기를 전한 전성훈 이사는 "간호법 제정은 통상적인 입법이 아니다. 간호법안 제정은 의료법 위에 상위법을 제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전성훈 이사는 "이번 간호법안들은 공통으로 '간호법은 다른 법률에 우선 적용되는 특별법이고, 간호법에 규정이 없는 것만 의료법 등을 적용한다'고 밝히고 있다"라며 "특별법을 제정하면 특별법을 적용받는 대상들은 기존 일반법을 적용받는 전체 대상에서 구분해내는 결과를 낳는다. 이는 법치 국가에서 부당한 차별과 특혜를 부여하는 것과 가깝다"라고 지적했다.
이에 전성훈 이사는 특별법이 되는 간호법안 제정에 앞서 사회적 합의가 필수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성훈 이사는 "간호법안은 기존 의료법 적용 대상인 의사들뿐만 아니라 특별법이 될 간호법안의 적용 대상인 간호조무사 단체, 요양보호사 단체, 응급구조사 단체가 입을 모아 반대하고 있는 것으로 볼 때 간호법안과 관련해서는 사회적 동의 절차가 전혀 이뤄지지 않은 것 같다"라며 "전 국민에게 적용되는 의료법에서 간호사들을 분리해 이들에게만 적용되는 특별법 지위를 갖는 간호법을 제정하려면 국민과, 그리고 적어도 의료계를 대표하는 단체들과는 콘클라베(열쇠로 잠근 방)를 가져야 한다"라고 말했다.
전성훈 이사는 간호법안 내용에 포함된 간호사의 업무 범위와 관련해 법적인 문제점을 짚으며 '다른 법률 및 실무와 충돌한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간호법안은 기존 의료법에 규정된 간호사의 업무 범위 조항 4개를 그대로 베껴 온듯하면서 '의사 등의 지도하에 시행하는 진료의 보조'라는 기존 의료법 조항을 '의사 등의 지도 또는 처방하에 시행하는 환자 진료에 필요한 업무'로 바꿨다는 것.
전성훈 이사는 "기존 의료법상 '지도하에...'를 간호법안이 '지도 또는 처방 하에...'로 변경한 것은 실무상 쓰이는 처방이라는 용어와 법률상 처방이라는 용어의 개념 차이를 간과하고 있다"라며 "실무상 쓰이는 처방은 흔히 오더(Order)로 의사 외 간호사 등에 대한 '의료적 지시'를 총칭해서 말하지만, 법률상 쓰이는 처방은 의사 등의 의약품 투여에 관한 지시만을 좁게 국한해서 일컫는다. 국회에서 법률을 제정하면서 기존 법률과 충동하는 용어를 신설할 이유는 전혀 없다"라고 말했다.
이어 "의료법상 '진료의 보조'를 '환자 진료에 필요한 업무'로 변경은 법률가 누가 보더라도 의도가 명확하게 보이는 것"이라며 "법원이 각 분야에서의 실무적 필요성 인정에 관대하고 해석도 융통성을 드는 점을 이용해 보조의 족쇄를 탈피하려는 의도가 아닌가 싶다. '필요성'이라는 개념은 해석에 따라 무한히 확장될 수 있어 사실상 간호 업무에 대한 법적인 제한을 없애 버리는 것"이라고 문제점을 짚었다.
이외에도 '간호사가 아니면 누구든지 간호 업무를 할 수 없다'라고 규정한 간호법안에 대해서도 "의사가 간호행위를 하더라도 무면허 간호행위로 인정되어 처벌될 가능성이 남아있다"라며 "실무상 크지는 않겠지만, 법적으로 그럴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건 아예 없는 것과 다른 이야기다"라고 언급했다.
전성훈 이사는 간호사 단체가 간호법 입법을 위해 국민에게 입법안을 홍보하는 과정에서 발췌된 진실만을 외치고 있어 아쉽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전성훈 이사는 "간호사 단체는 지난 2006년 국회 공청회에서 OECD 가입국 중에서 간호법 내지 간호사법이 없는 나라는 우리나라 말고는 찾아보기 힘들다고 발언하고 작년 11월에 있었던 대규모 집회에서 세계 90개국에 있는 간호법이 우리나라에만 없다고 발언하고 있다"라며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사회적 합의를 이루는 과정에서 과장되거나 옳지 않은 부분이 있다면 수정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에 따르면, OECD 38개국 중에서 간호사 관련 법이 간호단독법 형태로 존재하는 나라는 11개국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간호법이 존재하지 않는 나라 27개국 중에서 영국·프랑스 등 13개국은 의료법 단일체계로 이뤄져 있고, 미국·호주 등 14개국은 의료 관련 내용은 의료법, 보건의료인의 면허·자격·교육 관련 내용은 보건 전문 직업 법에 나눠 규정되어 있다.
단독법 형태로 입법된 11개국 중에서도 단독법은 간호사 교육, 면허 , 환자 불만 접수, 징계 등을 주된 내용으로 하고 동시에 다른 의료 인력들도 독립된 단독법을 갖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전성훈 이사는 "나라마다 역사나 입법 영역이 달라 한마디로 말하기 어렵지만, 단독법이 있는 11개국의 공통점은 각 보건의료 인력 단체들이 각기 독립적으로 면허 관리를 하는 나라다"라며 "독립적인 면허 관리제도가 없고 국가가 통일적으로 면허를 관리하는 우리나라는 단독법이 있을 이유가 없다"라고 밝혔다.
끝으로 전성훈 이사는 "거시적으로 의료법에서 독립된 특별법으로 간호법 제정이라는 큰 구조 변화를 지금 시도해야 할 만큼 보건의료 현실이 크게 변한 것인지 의문이다"라며 "지금 제정된 의료법과 보건의료인력지원법 등을 개정해 간호사 요구 내용을 흡수해 대응하면 충분할 것으로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미시적으로 접근했을 때도 간호법 제정은 크게는 특별법의 지위를 획득해 의료법을 누르기 위한 것으로 보이고 작게는 의사의 보조 인력이라는 지위에서 탈피하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라며 "의료서비스는 한명 한명이 독립해서 할 수 있는게 아니고 전체가 오케스트라처럼 협업할 때 가장 효율적이다. 국민의 생명과 건강에 미치는 직접적이고 막대한 영향을 고려할 때 사회적 합의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한편, 의료계에서도 16일 KMA TV를 통해 다시 한 번 간호법 제정에 따른 의료계의 우려점을 ▲면허범위 확장 ▲타 보건의료 직역 간 분란 초래 ▲환자·국민의 의료질 저하 ▲통합적이고 유기적인 의료의 중요성 등으로 정리해 밝히기도 했다.
박수현 의협 대변인은 "간호단독법 제정은 간호사 면허 범위를 확장해 처방 의사 1명에 많은 간호사가 단독으로 업무를 수행할 수 있어 환자의 의료질 저하와 혹시 간호사 단독으로 수행한 처치가 잘못됐을 때 법적 책임도 피하지 못하게 된다"라며 "더불어 의료는 다양한 직역이 서로 협력하고 자기 일을 해내므로 이뤄지는 통합적이고 유기적인 과정이다. 간호법은 기존의 간호조무사, 요양보호사 등이 할 수 있는 업무범위를 줄이고 간호사의 지위만 향상시켜 타 보건의료 직역들 간의 분란을 초래할 수도 있다"라고 우려했다.
이어 "간호협회에서 이야기하는 간호법에 있는 종합계획 수립, 실태조사, 근무환경 개선, 인권침해 행위 관련, 인력지원센터는 이미 보건의료인력지원법에 포함된 상황"이라며 "의료진 처우개선은 단순히 단독법을 만든다고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 낮은 수가 인상, 환경 개선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