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수의료' 정의·사회적 합의 선결해야…
의료자원 효율적이고 공정한 배분에 초점 맞춰야
갑자기 '필수의료'라는 말이 보건의료의 키워드가 됐다. 국내 최대 규모의 병원에서 간호사가 근무중 뇌출혈로 쓰러졌는데, 당시 개두술이 가능한 의사가 없었던 사건이 발생하면서다.
이를 계기로 그간의 오랜 이슈들이 다시 '필수의료'라는 화두에 연결되어 논의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필수 의료' 인력이 전반적으로 부족한 것이 문제라고 주장하고, 그 해결책 중 하나로 의대 증원과 공공의대의 설립을 주장한다.
다른 이들은 중증 질환에 대한 수가가 낮아서 수익을 낼 수 없는 구조적인 문제가 원인이며 이러한 부문에 대한 수가를 충분히 인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전공의들의 쏠림 지원 현상도 필수의료 인력이 부족하다는 식으로 '필수의료'의 프레임에 같이 얹혀져서 논의가 되고 있다.
이에 보건복지부는 '필수의료 확대'를 업무 추진 방향으로 설정해, 뇌동맥류 개두술 등 기피 분야, 분만 등 수요감소 분야, 고위험·고난도 수술, 야간·휴일 응급수술을 중심으로 정책가산 수가 인상 등을 통한 적정 보상을 강화하겠다고 했다.
작년부터 구성된 필수의료협의체에는 2022년 현재 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흉부외과·비뇨의학과의 6개의 과가 참여하고 있다.
그런데, 잠깐 기본부터 생각해보자. '필수의료'란 무엇인가? 이에 대한 국제적으로 확립된 학문적 정의가 있는가? 있다면 이에 해당하는 영어 단어가 있는가? 구글에 Essential medical care 나 essential health service를 검색하면 어떤 내용이 나올까?
참고로, 2022년 10월 현재 Essential medical care를 구글에서 검색하면 미국에 있는 일차의료기관이 상단에 나온다. 검색 결과를 몇 페이지 정도 넘겨보아도 우리나라에서 논의되는 중증분야, 기피분야와 같은 식의 '필수의료'라는 내용은 나오지 않는다.
Essential health services를 검색해보면 UN에서 지속가능한 개발 목표 (Sustainable Development Goal, SDG)의 하나로 설정해 놓은 내용이 나오는데, 이것은 일반 인구집단과 취약계층 모두에게 생식·모성·신생아·소아·감염성·비감염성질환에 대한 진료가 제공돼야 하고 서비스 제공 능력과 접근성이 보장돼야 한다는 공중보건학적인 의미를 주로 담고 있다. ▶관련자료
지표 항목들 중에서는, 우리나라에서 이야기하는 중증 질환이 아닌 고혈압·당뇨 관리나 예방접종·금연같은 내용이 담겨 있다.
학문적으로 검색해보면, 1991년에 미국 의사협회지 <JAMA>에는 <What care is essential? What services are basic?> 이라는 제목의 논문이 실렸는데, Essential care라든가 basic services같은 말은 그 개념은 호소력이 있지만, 이것을 실제 적용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고 했다.
가장 큰 문제는 서로 다른 의료 행위가 서로 다른 가치를 가진다는 점이며, 각 의료행위의 이득, 위해, 비용을 결정하고 사회가 그 행위에 대해서 어느 정도의 지불의사를 가질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합의하는 과정이 어렵다는 것이다. ▶관련자료
이는 우리나라 맥락에서는 건강보험이 어디까지 보장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에 해당한다. 실제 대한의사협회에서 2021년 간행한 <필수의료 중심의 건강보험 적용방안>을 보면 '필수의료'를 '진료가 지연될 경우 환자의 생명과 건강에 큰 영향을 미치는 영역으로, 지역과 시간에 관계없이 형평성 있게 제공돼야 하며, 사회보장체계인 건강보험에서 우선적으로 보장해야 할 분야' 라고 정의하면서, 건강보험 적용 우선순위의 원칙과 사례를 제시한 바 있다.
그런데 그 보고서에서 대표적으로 급여화나 급여기준 개선이 필요한 내용으로 나와있는 예시로는, 치매 조기 진단을 위한 아밀로이드 뇌 양전자단층 촬영, 여러 부위가 아파도 한 부위 밖에 받을 수 없는 물리치료, 골 결손 발생시 사용가능한 골 대체제, 고도 난청 치료를 위한 인공와우 이식술 같은 것이 들어있는데, 이는 지금 논의되는 '필수의료'와는 전혀 맥락이 다르다.
필자가 보기에는 '필수의료'라는 용어는 듣기에는 그럴 듯 해보이지만, 정의도 불분명하고 사회적으로 합의가 되어있지 않은 용어이다. 전세계적으로 전무후무하고, 대응하는 영어 표현도 없는 '공공의료'라는 말처럼. ▶관련기사
그러다보니 '필수의료'는 각 이해 관계자에게 아전인수격으로 해석이 되고, 전공의 충원이 안되면 필수과라는 식의 엉뚱한 해석들이 난무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필수의료'여부를 전문과목으로 정하려는 시도이다. 정부가 '필수의료'에 지원을 하겠다고 하자 각 전문과는 '필수의료' 리스트에 들어가려고 한다.
최근 신경외과 신임 이사장은 필수 의료에 신경외과가 포함되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전술한 간호사 뇌출혈 사건은 신경외과 관련이다. 최근에는 중증·응급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가정의학회에서는 '일차의료도 필수의료'라고 했는데, 전술한 구글 검색 결과나 UN의 SDG원칙, 그리고 JAMA논문의 내용은 오히려 일차의료가 필수의료라는 주장과 맞닿아 있다.
전통적으로 인기과인 이비인후과에서는 두경부외과 세부전공은 고사위기라는 이유로 '필수의료'에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현재 '필수의료'에 당연한 듯 들어가 있는 소아청소년과의 경우 사실 2019년까지만 해도 오히려 전공의 충원율이 100%가 넘는 과였다. '필수의료'라는 용어의 개념이 불분명하다 보니 생기는 일이다.
그러면 과연 '필수의료'란 무엇인가? 뇌출혈, 대동맥 박리에 대한 응급 수술 같은 생명과 직결된 의료 행위들이 필수적임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기계에 절단된 노동자의 손가락을 붙여주는 것은 필수적인 의료가 아닌가? 안면 기형에 대한 성형 수술은 필수적인 의료가 아닌가? 우울증이나 조현병 환자에 대한 약물 치료는 필수적인 의료가 아닌가? 뇌졸중이 생겨서 중재나 수술을 하는 것은 필수적인 의료이고, 뇌졸중을 예방하기 위한 만성질환 관리나 금연치료는 필수적인 의료가 아닌가? 중증·응급 질환을 직접 치료하는 행위는 필수적인 의료이고, Red flag에 해당하는 증상을 감별해서 상급 병원으로 보내는 행위는 필수적인 의료가 아닌가?
특정 전문과를 '필수의료'로 지정해서 지원하는 것이 정당한지도 생각해봐야 한다. '필수의료'가 현재의 전공의 지원율이나 전공의 이후의 기대 보상 수준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개념적으로 맞는가? 갑상선암 수술을 외과가 하면 가산을 받고, 이비인후과가 하면 가산을 못 받는 것은 합리적인가? 비뇨기과 수련 후 음경확대·조루 수술을 할 사람과, 가정의학과 수련 후 지역사회의 일차의료에 종사할 사람 가운데 수련 중인 전공의 때 지원받아야 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사회적 이슈는 보건의료에서 정책의 창이 열리는 좋은 기회가 된다. 그렇지만, 의료 정책은 의료 자원을 효율적이고 공정하게 배분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현재는 정부가 개념 정의조차 불분명한 '필수의료'라는 화두를 던지니, 이해관계자들이 각자의 이해를 반영하려는 방식으로 논의가 진행되는 것 같아서 매우 우려된다.
최소한, 특정한 진료과목별이 아니라, 특정한 의료행위별로 어떤 부분이 좀 더 많은 보상과 지원이 이뤄져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방향으로 논의가 흘러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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