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 "학생 물론 교사 정신건강까지…심리지원체계 필요"
부모에게 '교사 근로자 권리' 당부 "구성원 모두 서로 보듬고 비극 이겨내야"
서울 서초구의 한 초등학교 교사(24세)가 임용된 지 1년 4개월 만인 지난 7월 18일 새벽 교실에서 극단적 선택을 한 사실이 알려지며 파문이 일자, 의료계에서 교사의 정신건강을 지키기 위한 제언이 나왔다.
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는 7월 21일 성명을 내고 "놀라움과 슬픔을 느끼며, 깊은 애도를 표한다"며 "이번 사건 이전에도 일부 학부모나 학생의 신체적·정신적 폭력이 늘고 있어 교사들은 본연의 임무를 넘어선 감정노동에 시달려 왔다"고 운을 뗐다.
해당 교사의 구체적 사망 경위를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 대해서도 "우리 모두는 사회와 상호작용하는 존재로, 자살이라는 비극적 사안은 개인적 요소와 사회적 환경이 복합되어 일어날 수 있다. 기존에 정신겅강 이력이 있으면 개인 책임, 없으면 사회 책임으로 이분법적으로 판단할 수는 없다"며 "모든 것을 사회의 탓으로 돌릴 수는 없지만 기존에 어려움을 겪어왔던 사람이라 해서 젊은 생명의 안타까운 비극에 사회의 책임이 없다고 볼 수 없다"고 목소리를 냈다.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나 문제가 발생했을 때 신속히 도움을 줄 수 있는 시스템이 중요하며, 도움을 받을 수 없다는 느낌(helplessness)이 자살 위험과 큰 관련이 있다는 설명이다.
또 "학생들을 위한 교내 상담센터와 학교폭력 고충 해결 시스템 등은 수년간 많이 개선됐으나, 교사들의 정신건강에 대한 관심과 돌봄은 부족했다. 교사의 정신건강은 개인건강을 넘어 학생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진단한 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살펴야 할 부분이 많이 남아있음을 통감한다"고 전했다.
교사들의 정신건강을 지키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으로 ▲특수 상황 고충상담·심리지원 체계 구축 ▲근무시간 외 업무에서 자유로울 권리 보장 ▲피해 교사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 등 구조적 개선을 제시했다.
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는 "소중한 아이들을 다루는 일은 물론 보람되지만, 학생과 학부모를 대하며 행정 업무까지 도맡는 상황 속에서 교사의 정신건강 관리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선생님이 행복해야 아이들이 행복한 것은 분명하며, 한쪽에게 과도한 희생을 강요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교사와 학생 모두에게 상처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고 짚었다.
"교사도 근로자처럼 노동과 휴식이 분리돼 근무 외 시간에는 자유로울 권리가 필요하다. 소중한 내 아이와 관련된 일이라 해도 아무 때나 연락하고 응답받아야 한다는 일부 학부모 인식에 개선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어 "수년간 급격히 바뀐 학교문화로 인해 오히려 교사들이 피해자가 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는데도 제도적 장치가 없다"며 "학생 인권에 비해 교사의 권리를 경시, 의무만 지우는 행태가 지속된다면 교육 자체가 붕괴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부모들을 향해서는 "부모도 교사도 완벽할 수 없다. 자녀 양육의 불완전함에서 불쑥 찾아오는 불안을 이해하나, 교사에게 전가하지 않아야 한다"며 "가정에서도 실천하기 어려운 이상적인 사랑과 교육을 교사에게 강요하는 것은 결국 자녀의 무절제와 방종을 낳고, 이기적이고 정신적으로 미숙하게 자란 자녀들은 결국 부모에게 족쇄로 돌아올 수 있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도 "대한민국 학부모들이 문제라는 식으로 확대해석하는 것은 2차 가해"라며 "젊은 생명을 앗아간 원인을 파악하는 것은 고인과 유가족뿐 아니라 우리의 미래를 위한 것이다. 누군가를 탓하고 비난하며 상처를 준다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밝혔다.
"특정 집단 전체를 피해자 또는 가해자로 일반화하는 것은 더 큰 상처를 낳을 수 있다. 아이들의 건강한 교육과 발달이라는 목표를 이루려면 희생양을 찾고 공격하기보다는, 우리 구성원 모두가 서로를 보듬고 비극을 이겨내는 것이 모두가 안전하고 건강해지는 길"이라고 덧붙였다.
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는 "학교 내 정신건강은 미래를 위해서도 중요한 일이기에, 정신건강 문제를 발견하고 진료받는 시스템 등의 대책 마련을 위해 모든 방법을 고민하겠다. 학생과 교사가 상호 성장하며 모두의 정신건강을 지킬 수 있는 교육현장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