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수의료와 의대정원(3)

필수의료와 의대정원(3)

  • 우봉식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장 admin@doctorsnews.co.kr
  • 승인 2023.11.27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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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정원 시리즈 : 의대정원의 본질은 포퓰리즘?>
[1] 들어가며 : 뜬금포 같은 의대정원 확대 뉴스
[2] 'OECD 의사 수 평균'이라는 가스라이팅
[3] 필수의료와 의대정원
[4] 지역의료와 의대정원
[5] 공공의료와 의대정원
[6] 의사 소득과 의대정원
[7] 초고령사회와 의대정원
[8] 의사 수와 건보재정
[9] 나가며 : 의대정원, 포퓰리즘은 안된다

ⓒ의협신문
우봉식 의협 의료정책연구원장

[3] 필수의료와 의대정원

지난해 지주막하출혈로 서울아산병원 간호사가 사망한 사건 이후 필수의료 분야의 인력 부족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사건 이후 각종 토론회 등에서 제시된 필수의료 살리기 해법으로는 의사 수 확대, 공공의대 설립, 해외의사 수입, 필수의료 수가 인상, 필수의료 과목 전문의 고용을 위한 재정 지원, 의료기관 운영비용 보상, 불가항력 무과실 의료사고 면책 적용, 필수의료 담당 부서 설립, 필수의료 특별법 제정 등 다양한 의견들이 제시됐다.

이처럼 필수의료에 대해 다양한 이야기들을 하지만 실제 필수의료의 학문적 정의는 뚜렷하지 않다.

세계보건기구(WHO)는 1978년 알마타에서 개최된 '일차의료에 관한 국제회의'에서 '1차 의료란 지역사회와 국가가 모든 단계에서 유지할 수 있는 비용으로 완전한 참여를 통해 지역사회의 개인과 가족이 보편적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실용적이고 과학적으로 건전하며 사회적으로 수용 가능한 방법과 기술에 기반한 필수의료(essential health care)'라고 정의한 바가 있다.

이는 1차 의료가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속적으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기 때문에 1차 의료를 필수 의료로 정의한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필수의료 기술(essential health technology)'이나 '필수 의약품(essential medicine)'의 개념을 세계보건기구(WHO)에서 소개하는 정도가 전부로 필수의료에 대해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표준적인 정의는 없다.

우리나라에서 '필수의료'라는 용어가 부각되기 이전에는 주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가 주된 관심을 끌어왔다.

이 용어는 참여정부 시절인 2005년 '보장성 강화대책'을 정책 과제로 발표한 이후 선거 때마다 단골 공약으로 등장했다.

18대 대선에서는 문재인 후보가 '비급여 포함해서 100만원 이상의 의료비 전액 무료'를 공약으로 내세우자 박근혜 후보 측에서 '4대 중증질환 진료비 전액 국가부담'을 공약으로 내세우기도 했다.

그러나 2011년 아덴만 여명 작전 이후 전국 5대 권역에 16개 권역외상센터가 설립되고, 2017년 말 판문점 귀순 북한병사 총격 사건과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집단사망 사건이 잇따라 터지면서 중증외상센터와 중환자실 실태를 중심으로 한 '필수의료' 문제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시작됐다.

최근 필수의료의 위기에 대해 정부도 사안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나름 노력하고 있으며, 국회에서도 필수의료를 육성·지원하기 위한 법률안을 여야가 동시에 발의하는 등 해결을 위한 노력은 하고 있으나 실제 피부로 느낄만한 성과가 나타나지는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의사들이 필수의료를 기피하는 원인에 대한 과학적이고 합리적 분석과 해법은 외면한 채 자꾸 표를 의식한 정치적 해법만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의협신문
ⓒ의협신문

지난해 말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의 의사 대상 설문조사에서 나타난 의사들이 필수의료를 하지 않는 이유는 필수의료 분야의 저수가와 더불어 의사의 형사처벌 경향 때문으로 나타났다.

필수의료 분야의 저수가 문제는 더 말할 것도 없고 의사 의료행위의 형벌화 경향에 대한 의료정책연구원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11년부터 2015년까지 5년 동안 한국과 일본의 의사 기소 건수를 보면 한국은 의사 13만 536명 중 337명이 업무상 과실치사상으로 기소되어 활동 의사 1000명당 평균 기소건수가 2.58건로 나타난 반면, 같은 기간 일본은 의사 41만 462명 중 검찰에 기소된 의사 수가 4건으로 의사 1000명당 0.01건에 불과하다. 의사 1인당 기소 건수는 한국이 일본의 약 250배에 달한다.

실제 형사재판 판결에 있어서도 우리나라의 의사 1만 명당 연평균 유죄 판결 건수(1.55건)는 일본(0.2건)에 비해 7.7배, 영국(0.03건)에 비해 50배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일본에 비해 기소 건수 250배, 유죄 판결 건수 7.7배라는 것은 검찰이 기소한 30건 중 29건은 무죄 판결을 받았다는 뜻으로 우리나라 검찰이 무조건 기소부터 하고 본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다.

소아청소년과의 경우 저출산의 영향도 있지만 지난 2017년 이대목동병원 신생아중환자실의 신생아 집단 사망사건으로 담당 주치의를 포함한 3명이 구속된 사건이 전공의 지원율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 사건은 5년 동안 법정 공방 끝에 2022년 12월 15일 대법원에서 최종 무죄가 확정됐다. 하지만 그 사건 이후 전공의 지원이 급감하게 되면서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충원율은 2018년 206명 정원에 208명(101%)의 전공의를 확보했으나 이후 2019년 206명 정원에 194명(94.2%), 2020년 205명 정원에 152명(74.1%), 2021년 204명 정원에 78명(38.2%), 2022년 203명 정원에 57명(28.1%), 2023년 203명 정원에 33명(16.3%)으로 급락하게 됐다.

ⓒ의협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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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의사들이 필수의료를 하지 않는 이유가 분명한데도 이를 외면한 채 필수의료 문제 해결을 위해 의대정원을 대폭 늘려서 의사가 넘쳐나면 자연스레 필수의료 분야에 의사가 유입될 것이라는 소위 '낙수효과'를 주장하는 것은 무책임한 발상이자 다분히 내년 총선 표를 의식한 정치적 발상이다.

세상 어떤 직업이 악의나 불법이 없이 자기 일을 열심히 하다가 결과가 안 좋다고 감옥에 가는 직업이 있겠나? 그런데도 의사 숫자를 충분히 늘리면 일부가 피부·미용으로 가더라도 나머지 일부는 감옥 갈지도 모를 필수의료 분야로 가지 않겠냐는 주장은 기가 막히고 개탄스러운 일이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야 할 국가라면 의사들이 국민의 생명을 살리는 필수의료 분야에 의욕을 갖고 서로 지원할 수 있도록 해 줘야지 피부·미용 분야 못 가고 떠밀려 간 의사들에게 그 분야를 맡긴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설령 그들이 떠밀려서 필수의료 분야로 간다고 한들 얼마나 열정을 갖고 그 일에 종사하겠나. 만일 그들이 감옥 안가려고 방어진료와 회피로 일관하다 살릴 수 있는 환자의 생명을 놓쳤을 때 그 환자가 내 가족이라면 어떻게 하나?

이런 식이니 요즘 필수의료 분야에 종사하는 의사들 사이에 'I AM 낙수과에요'라는 자조 섞인 밈(Meme)이 유행하고 있는 것이다. 필수의료 분야는 국민의 생명과 밀접한 분야다. 선진국들은 필수분야 의사들이 자긍심을 가지고 진료할 수 있도록 법적 보호와 재정적 보상을 충분히 해준다. 그 결과 미국에서는 흉부외과가 가장 인기가 높고, 일본도 내과가 가장 인기가 높은 것이다.

ⓒ의협신문
ⓒ의협신문

외과계 전공의 수련 업무에 대한 어려움이 예견되고 의사와 환자의 불신만 오히려 가중시킬 수 있다는 현장의 하소연에도 CCTV 감시왕국 중국도 하지 않는 전 세계 유일의 수술실 CCTV를 설치하도록 하는 법을 만들고, 사법부는 사법부대로 악의나 불법적 행위가 아니라 최선을 다했음에도 오진을 했거나 치료의 결과가 나쁘다고 의사들을 구속하고 처벌하는 풍토에서는 필수의료의 회생은 절대 기대할 수 없다.

최근 언론에서 의사 수입이 세계 1위인 것처럼 부풀린 가짜뉴스를 쏟아놓자 온 사회가 의사들에 대해 마치 중국 문화혁명시절 죽창을 들었던 홍위병처럼 공공연히 적개심과 공격적 행태를 보이고 있다.

이런 식이면 그동안 그나마 의사들의 희생과 헌신으로 버텨왔던 필수의료 분야가 이제는 더 이상 버텨낼 힘도 동기도 완전히 사그라진다. 의사들이 리스크가 적고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분야로 간다고 의사를 마녀사냥하고 윤리적 비난을 한다고 이 사태가 해결될 수 없다.

만일 정부와 국회가 진정 필수의료 붕괴를 막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필수의료 분야에 대한 수가 정상화와 함께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위원회에 계류돼 있는 '필수의료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안)'들 부터 즉시 통과시켜야 할 것이다. 이것도 안 하면서 의대정원만 늘리려고 한다면 이는 내년 총선의 표만 의식한 것이다.

지금도 국민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밤을 새워 환자 곁을 지키고 있는 필수의료 분야 의사들의 심장에 대못이나 박는 일은 그만하고, 그들이 자부심을 갖고 환자의 생명을 지키는 일에 종사할 수 있도록 정부와 국회는 제도를 개선해야 할 책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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