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협 "의사 부족은 필수의료 기피로 인한 '착시 현상'" 강조
복지부, OECD 통계·의사수급추계 연구자료 등 의대증원 근거 제시
의대정원 증원을 주제로 의료계와 정부가 각론을 펼쳤지만, 서로 입장 차이만 재확인하며 평행선을 달렸다.
의료계는 의사 부족은 필수의료 기피 현상으로 인한 '착시 현상'이라는 입장을 보였지만, 정부는 OECD 통계와 의사 수급 추계 연구 등을 의대정원 증원이 필요한 근거 자료로 제시했다.
대한의사협회와 보건복지부는 6일 의료현안협의체 제20차 회의를 개최했다. 비공개로 진행된 회의는 불가항력적으로 발생한 의료사고에서 의료진의 부담 완화를 위한 방안과 더불어 의대정원 증원을 주요 아젠다로 논의한 것으로 알려진다.
특히 의대정원 증원과 관련해 보건복지부는 ▲의대정원이 필요하다는 OECD 관련 통계 ▲의사들의 장기간 근로 행태 ▲고령 인구 증가에 따른 의료 수요 증가 ▲보사연, KDI 등에서 발표한 의료인력 수급 추계 연구 등을 자료로 제시하며 의대정원 증원 당위성을 설명한 것으로 전해진다.
임강섭 보건복지부 간호정책과장은 회의 직후 백브리핑에서 "의대정원 증원에서 정부 원칙을 제시했다"며 "OECD 사례와 비교해 임상 의사 수나 의대 졸업자 수, 그리고 주요 OECD 국가가 고령화 대응으로 의사 인력 증원을 적극적으로 확대했기 때문에 의대 정원 증원이 필요하다는 논거를 제시했다"고 설명했다.
의협은 이같은 보건복지부 주장에 '착시현상' 이라고 일축했다.
서정성 의협 총무이사는 백브리핑에서 "예전에 없었던 필수의료 기피 현상이 지금 나타나 의사 수가 부족하게 보이는 착시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며 "결국 필수의료로 의사들이 유입될 수 있도록 해야한다. 그 중 하나가 필수 의료에 대한 법적 부담 완화 등 필수의료지원법 제정임을 정부에서 설명했다"고 말했다.
의협과 보건복지부는 의대정원 증원으로 비공개 회의에서도 평행선을 달리자 논의를 이어가기로 결정했다.
임강섭 과장은 "다음 회의에서 의대정원 증원을 재논의하며 보건복지부에서 생각하는 의대정원 증원의 원칙과 객관적 근거를 다시 정리하고, 의협에서도 의협이 생각하는 원칙과 의협이 분석한 데이터를 다 펼쳐놓고 심층적으로 논의하기로 했다"며 "이외에도 전공의 근무 환경 개선 등 인력 시스템에 대한 논의를 이어나갈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의대증원 국민 염원?…"국민 여론 세금 줄이자면 줄일꺼냐?"
의대정원 증원에 대한 의료계와 정부의 입장 차이는 회의 시작 전부터 극명하게 갈렸다.
양동호 의협 협상단 단장은 "정부는 의대 정원 증가의 이유 중 하나로 국민의 대다수가 의사 정원을 원한다고 이야기했다"며 "그러나 교육이나 의료 등 국가의 미래를 결정하는 중요한 정책을 만들 땐 국민의 여론으로 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국민 모두에게 세금을 줄여줄 것인지 여론조사를 해 모두 다 줄여주라고 하면 나라가 망하든 말든 세금을 줄여줄 것이냐? 아니지 않나?"라며 "의료는 국민 전체의 건강과 국가의 미래가 달려있는 중요한 사안이다. 의료에 대한 정책을 결정할 땐 선진국의 사례나 전문가의 의견을 물어 결정해야한다"고 덧붙였다.
의협이 지난 3일 의대증원 저지 비상대책위원회 첫 회의에서 '대한민국 의료붕괴 저지를 위한 범의료계대책특별위원회(이하 범대위)'를 구성한 점도 언급했다.
양 단장은 "의사가 공권력에 맞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방법은 많지 않다"며 "의사들이 본연의 자리에서 국민과 국가를 위해 자신들의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다시 한번 정부의 협조를 부탁한다"고 밝혔다.
보건복지부 역시 의대정원 증원에 물러설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정 정책관은 "충분한 의료 인력이 필수의료, 지역의료로 유입되고 국민이 자신이 거주하는 지역에서 완결성 있고 수준 높은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종합적인 방안을 모색하겠다"면서도 "이런 정책 패키지와 함께 꼭 논의해야 할 중요한 이슈가 의사 인력 확대"라고 말했다.
"아무리 좋은 수단과 제도가 있다하더라도 이를 수행할 '사람'이 없다면 무용지물"이라고 설명한 정경실 정책관은 "중장기적으로 얼마나 많은 의사가 필요할지, 그리고 어느 분야 어느 지역에 인력이 부족한지 등을 오늘부터 의료현안협의체에서 과학적 근거와 통계에 기반해 논의하겠다. 정부와 의협이 지역과 필수의료 혁신을 위한 의사정원 확대와 정책 패키지 마련에 접점을 찾을 수 있길 기대한다"고 전했다.
의료계 총파업 투표 경계한 정부, 의료계 '빌런' 만드나?
의료계가 오는 11일부터 의대정원 증원을 반대하는 총파업 여부를 놓고 투표를 진행할 것이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정부가 이를 경계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면서 의료계와의 협의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정부의 모습과 대조해 의료계가 협의 결렬을 준비하고 있다고 비판, 추후 협상 결렬이 발생하더라도 그 책임을 의료계에 떠넘기는 듯한 모양새를 보였다.
정경실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관은 회의 모두발언에서 총파업 투표를 앞두고 있는 대한의사협회를 비판했다.
"의대정원 증원과 정책 패키지에 대해 의료현안협의체에서 본격적으로 논의하고 있는 도중에 의협이 전체회원을 대상으로 총파업 투표를 진행한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밝힌 정 정책관은 "결렬을 전제하고 협의에 임하는 것은 아닌지 협의의 한쪽 당사자로서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지금 필요한 것은 언제든 뜻이 다르면 협의를 결렬시키겠다는 준비가 아니라 어떻게든 합의점을 찾겠다는 의지와 각오"라며 "정부는 그 어떤 경우에도 진정성과 인내심을 가지고 협의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유감을 표명했다.
한편, 보건복지부는 이날 의대정원 증원의 정책 목표가 의사를 늘려 필수지역의료로 의사가 유입되게 하겠다는 일명 '낙수 효과'를 노리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