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수도권·소청과' 전공의, 개인 SNS 통해 사직서 공개
"4년전 국시거부도 경험…영리한 대응방식 이어갈 것"
비수도권 수련병원에서 근무 중인 K전공의는 지난 13일 사직서를 작성한 뒤 개인 페이스북(SNS)에 이를 공개했다. 사유는 정부가 금지한 '단체 행동'이 아닌 '일신상의 이유'.
정부가 의대 정원 확대를 통해 '살려야 한다'던 비수도권, 소아청소년과의 당사자다. 2020년에 같은 '의대 증원' 이슈로 국가고시를 거부했던 '파란만장'한 기수기도 하다.
전공의들은 즉각적인 '집단 행동'이 아닌 전략적인 대응을 보이고 있다. 2월 말 '계약 종료일'에 맞춘 재계약 거부를 통해 절차적인 정당성을 추구하면서, 당장 사직을 하는 대신 1년의 수련연차를 챙기기도 한다.
과거 경험을 바탕으로, 보다 더 '영리하고 똑똑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K전공의가 공개한 사직서를 보면 '한 달 전 통보'까지 철저히 지켰다.
[의협신문]은 K전공의와의 인터뷰를 통해 사직서를 작성하게 된 계기와 함께 최근 극도로 말을 아끼고 있는 전공의들의 전반적 분위기를 물었다.
K전공의는 "2020년도 의사총파업 당시와 분위기가 상당히 비슷하다고 느낀다"며 "전공의 모두 같은 마음일 거다. 누군가가 공개를 하면, 혼자가 아니라는 걸 확인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후배·동료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을 묻자 "보이지 않고 드러나지 않을 뿐이지 나 혼자인것 같아 불안한 마음 잘 알고 있다. 서로를 믿고 한마음으로 뭉칠수록 우리는 서로를 보호할 수 있다"고 당부했다.
[일문일답]
Q. 전공과와 연차 소개 부탁드린다.
소아청소년과다. 늦게 공부한 편이라 나이가 좀 있는데, 레지던트 2년차다. 3월 1일부터 3년차가 된다. 시기가 참 묘하다고 느끼는데 2020년도 의사총파업 당시 국가고시를 거부했던 기수다.
Q. 전공의 중 가장 먼저 사직서를 공개한 걸로 안다. 특별한 계기가 있다면?
전공의 모두 같은 마음일 거다. 누군가가 공개를 하면, 혼자가 아니라는 걸 확인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정부에서 너무도 강경한 입장을 취하다보니 상황적으로 공개를 쉬쉬하고 있는 것 같다. 투쟁 동력이 상실되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도 있었다.
Q. 사직서에 대한 주변 반응이 궁금하다.
말씀드렸듯 (의과대학)공부를 늦게 한 편이다. 사직서를 제출했더니 과장님께서 신중히 생각해보라고 말씀하셨다. 나이가 있으니 수련을 빨리 끝내는 게 좋지 않겠냐면서 걱정해주시더라. 그래도 응원해주시는 분위기다. 4년 전 전공의 파업 당시에도 당직을 커버해주시면서 우호적인 분위기를 형성해주셨다고 하더라. 이해해주셔서 감사드리고 있다.
사직서를 작성하는 날 우연찮게 병원장님의 격려 연락이 오기도 했다. 당직을 하느라 고생이 많다는 내용이었다. 죄송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Q. 개인적으로 걱정되는 부분은 없나?
자체적으로 수련이 몇 개월 안 남았다. 나이가 있다보니, 솔직히 아까운 부분도 있다. 집단적인 행동은 아니지만 한 명의 사직이라도 도화선이 될 순 있을거라 생각한다. 한 두사람이면 더 큰 처벌이 될거라는 걸 예상하고 있기 때문에 사직에 함께하는 것이 다른 동료를 보호하는 길이라는 생각을 할거라고 본다.
Q. 같은 병원 내 전공의들도 사직 의사를 밝혔나?
병원 내에 내과, 소청과, 이비인후과가 있다. 지침은 없지만 90%이상이 참여할 예정이다. 물론 자발적인 참여다.
Q. 13일 유튜브를 통해 공개 사직을 선언한 H전공의도 큰 화제가 됐는데, 어떻게 봤나?
좋은 과로 불리는 OS(정형외과)에 합격한 분이더라. 관심있게 봤다. 힘들게 붙으셨을 텐데…같은 입장에서 안타까운 마음이 있다.
Q. 2020년도와 비교해보면, 외부 공개를 최소한으로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전공의 내부적 분위기는 어떤가?
전공의 논의내용은 모두 철저히 비공개로 이뤄지고 있다. 의사 인증을 통해 가입하는 자체 커뮤니티를 보면 딱 그때(2020년도 의사총파업)와 상당히 비슷한 분위기라고 느낀다.
Q. 전보다 정부의 대응이 강경해졌다는 느낌도 든다. 압박으로 느껴질 수도 있고, 오히려 감정적으로 분노를 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어떤가?
-정부는 마치 의사 집단을 악인것 처럼 몰아가고 있다. 특히 기피과로 불리는 필수과 전공의들이 크게 분노하고 있다. 사실 필수과는 수련이 끝났다고 해서 엄청난 장미빛 미래가 있는게 아니다. 거창하게 사명감까지는 아니더라도 밥도 제대로 못먹고, 잠도 제대로 못자면서 일하고 있다. 저 역시 아이가 좋아서 택한 곳이 소청과였다.
Q. 2020년도 전공의들과는 다른 행보를 보이는 것 같다. 최근 기자가 기사에도 다뤘었는데(관련기사: 2024 전공의 'F보단 T 성향?' 달라진 단체행동…왜?), MBTI로 따지자면 F가 아니라 T 성향인 것으로 보인다.
대전협 임시총회에서 즉각적인 단체행동을 하지 않는 데 대한 불만 목소리도 있었다. 감정적으로는 다 그럴거다. 하지만 말씀드렸던 국시 거부 등으로 참여했던 2020년도 의사총파업에서 배운 것들이 있다. 안심되는 지침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지금은 그런 것이 없다. 스스로, 이성적으로 결정해야 한다.
Q. 공개한 사직서를 보니, '한 달 전 통보'까지 철저히 지킨것 같다
말씀하신대로 이성적인 판단이 중요한 시기다. 2월 말까지 기간을 더 두면 수련 연차도 하나 더 챙기면서 영리하게 진행할 수 있을거라고 봤다. 추후에 상급년차에 지원하는 방법도 고려하고 있다. 바이탈 과는 특히 더 수월할거라 생각한다.
Q. 공개는 페이스북을 통해 진행했는데, 이유가 있다면?
페이스북친구에 선배 의사 선생님들이 많다. 최근 대한전공의협의회 총회가 있었는데, 비공개다보니 많이들 궁금해하셨다. 전공의 행보에 대해 관심이 크신 것 같아 스스로 선택한 방식을 보여드렸다.
Q. 정부나 동료, 후배들에 하고싶은 말이 있다면?
정부는 어차피 하고싶은 대로 밀어붙일거라는 생각에 당장은 할 말이 없다. 동료와 후배, 의대생들에 한마디 하고 싶다. 보이지 않고 드러나지 않을 뿐이지 나 혼자인것 같아 불안한 마음 잘 알고 있다. 서로를 믿고 한마음으로 뭉칠수록 우리는 서로를 보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