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정원 시리즈 : 의대정원의 본질은 포퓰리즘?>
[1] 들어가며 : 뜬금포 같은 의대정원 확대 뉴스
[2] 'OECD 의사 수 평균'이라는 가스라이팅
[3] 필수의료와 의대정원
[4] 지역의료와 의대정원
[5] 공공의료와 의대정원
[6] 의사 소득과 의대정원
[7] 초고령사회와 의대정원
[8] 의사 수와 건보재정
[9] 나가며 : 의대정원, 포퓰리즘은 안 된다
[8] 의사 수와 건보재정
정책이란 현상의 단편적 해결만이 아니라 그 정책이 가져올 파급효과나 부작용은 없는지 살펴보고 결정하는 것이 맞다. 정부는 고령화를 대비하여 병상과 의사 수를 지속적으로 늘려야 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다수의 전문가들은 의사 수가 늘어나면 의료비가 늘어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정부 주장대로 의사 수를 대폭 늘려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인지를 살펴본다.
의사 수가 늘어나면 의료비가 늘어나게 된다는 가설로는 '보건의료 서비스 시장에서 정보의 비대칭성에 의해 의료 서비스 공급자가 서비스 제공을 늘려 이익을 증가시킨다'는 '유인수요가설(induced demand effect)'과 '의료공급의 증가로 의료이용의 대기시간, 이동시간 등의 기회비용이 낮아지면서 환자의 선택권이 높아지고 수요가 증가한다'는 '가용성 효과(availability effect)'를 꼽는다. 두 가지 가설 모두 논쟁은 있지만 결과적으로 의사 수가 늘어나면 의료비가 늘어나는 것은 맞다.
1990년 이후 우리나라의 GDP 대비 경상의료비 추이를 살펴보면 1990년 3.6%에서 2022년 9.7%로 OECD 평균치인 9.25%를 넘어서게 되었다. 1990년에서 2022년 사이 OECD 38개 국가의 경상의료비 평균은 약 1.4배 증가한 반면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2.7배의 증가율을 보였다.<표 1>
OECD 국가들 가운데 의료제도, 지불보상 체계, 문화와 환경, 고령화율과 의료비 추이 등 모든 면에서 우리나라와 가장 유사하면서 우리보다 먼저 고령화를 겪은 일본과 우리나라를 비교해 보기로 한다.
우리나라와 일본의 인구 고령화율이 비슷한 시점의 1인당 의료비, GDP 대비 경상의료비의 증가 추이를 비교해 보면 다음과 같다. 65세 이상 노인인구 비율(이하 '고령화율')이 7.2% 시점에 한국(2000년)은 1인당 의료비 717 US$, GDP 대비 경상의료비 3.9%, 일본(1971년)은 1인당 의료비 164 US$, GDP 대비 경상의료비 4.3%였다. 고령화율 10.5% 시점에 한국(2009년)은 1인당 의료비 1,648 US$, 경상의료비 5.7%, 일본(1986년, 고령화율 10.6%)은 1인당 의료비 860 US$, GDP 대비 경상의료비 6.1%였다.
고령화율 13.2%인 시점에 한국(2016년)은 1인당 의료비 2,646 US$, GDP 대비 경상의료비 6.9%, 일본(1992년, 고령화율 13.1%)은 1인당 의료비 1,253 US$, GDP 대비 경상의료비 5.7%였으며, 고령화율 17.5%인 시점에 한국(2022년)은 1인당 의료비 4,570 US$. GDP 대비 경상의료비 9.7%, 일본(2000년, 고령화율 17.4%)은 1인당 의료비 1,848 US$, GDP 대비 경상의료비 6.0%였다. 일본에 비해 우리나라의 1인당 의료비 지출이 고령화가 진행될수록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다.<표 2>
고령화율 7.2%에서 17.5%에 이르는 동안 고령화율 동일 시점에 한일간 의사 수와 의료비 추이를 비교해 보면 우리나라가 둘 다 일본보다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그림 1>
의사 수 이외에 병상수 증가도 문제다. '뢰머의 법칙(A hospital bed built is, a hospital bed filled)'이 말해주듯 병상수의 증가는 결국 의료비의 증가로 귀결된다. 병상이 늘어나면 의료비 지출이 늘어나기 때문에 OECD 국가들이 지난 50년간 지속적으로 병상 수를 줄여 온 반면 우리나라는 오히려 병상 수가 지속적으로 늘어났다. 그 결과 우리나라는 2020년 기준 인구 노인인구 17.5%에 천명당 병상수가 12.7개로 OECD 평균(4.3개)의 약 3배로 노인인구가 30%가 넘는 일본의 12.6병상 보다 더 많은 병상을 보유하여 OECD 국가 1위가 되었다.<표 3>
그런 가운데 최근 보건복지부는 2035년 전체 인구의 입원일 총합이 2억 50만일로 2022년 전체 인구의 입원일(1억 3,800만일)과 비교하면 45.3%나 늘어나게 된다고 말하며 이 환자들을 치료할 적정 의사 수를 확보하기 위해 의대정원 증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부의 주장대로 2035년에 2억 50만 입원일을 수용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 총병상수가 약 105만 7,700병상이 필요하게 되는데, 2035년의 중위 추계 인구 기준(약5,082만명) 인구 천 명당 병상수가 20.8병상이 필요하게 되는 셈이다.
2011년 이후 우리나라 병상수 증가 추이의 특징은 주로 상급종합병원, 종합병원 중심으로 병상수가 증가했다는 점이다. 상급종합병원은 2011년 42,270병상에서 2022년 48,057병상으로 연평균 1.3%의 병상 증가율을 보여왔고, 종합병원은 2011년 95,122병상에서 2022년 111,005병상으로 연평균 1.6% 증가된 반면 (중소)병원은 2011년 191,255병상에서 2011년 132,262병상으로 오히려 3.6% 감소했다.
그 결과 최근 10년간(2012~2022) 요양급여비 총액은 2012년 47조8,392억원에서 2022년 105조8,586억원으로 약 221% 증가했는데, 상급종합병원은 255%, 종합병원 253%, 병원 192%, 요양병원 217% 등으로 상급종합병원과 종합병원의 요양급여비가 급증한 것으로 나타난다.<표 4>
초고령사회로 인해 의료 수요가 늘어난다고 병상 수와 의사 수를 늘리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의사 수 증가와 직접적으로 연관된 의료비를 감당할 수 있는지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의사와 함께 대표적 전문직인 변호사의 경우를 봐도 알 수 있다. 우리나라는 로스쿨 제도 도입 후 변호사 수와 법률 시장규모가 모두 증가했다. 2013년 변호사 수는 15,905명에서 2023년 34,182명으로 2.15배 증가했는데 법률 시장규모는 2012년 3.6조원(1인당 2.3억)에서 2022년 8.2조원(1인당 2.4억)으로 2.3배 증가했다.
하지만 법조계 일각에서는 법률 사각지대는 줄었지만 불필요한 법적 분쟁이 많아지고, 변호사 질도 저하되었다고 말한다. 전액 본인 부담으로 진행하는 법률소송에 비해 의료는 건강보험에 의해 의료비 본인부담금 할인이 적용되고, 게다가 건강보험의료비 본인부담 총액 상한제가 적용되어 연간 800만원이 초과되는 의료비 본인부담금은 건보공단에서 부담하는 상황에서 의료과소비가 일어날 개연성은 매우 높다.
의사 수와 의료비에 관한 국민건강보험공단의 'OECD 국가들의 국민의료비 결정요인에 관한 연구보고서(고민창. 「국민의료비 지출구조 및 결정요인에 대한 국제비교」. 건보공단 2007-18)'에 따르면 인구 천명당 의사 수가 1명 늘어날 경우 1인당 의료비는 159.2달러 증가하고(구매력평가모형), 이를 로그함수를 이용한 명목환율모형에 의해 분석하면 인구 천명당 의사수 1명이 증가시 1인당 의료비 지출은 약 22%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표 5>
건보공단의 또 다른 연구보고서(현경래. 「건강보험 진료비 변동요인 분석」. 건보공단 2012-15)에서는 진료비에 가장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의사 수와 고령화를 꼽고 있다. 의사 수는 탄력도가 1.770(의사 수가 1% 증가시 전체인구의 총 진료비는 1.770% 증가)로 나타났는데 특히 종합전문병원과 의원에서 상대적으로 크게 나타났다. 다시 말해 상급종합병원과 의원급의 경우 의사 수 증가가 곧바로 진료비 증가로 이어진다는 소리다.
한편 2023년 10월 국회 예산정책처의 <2023~2032년 건보 재정전망>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건보재정은 현행 보험료율 인상 수준이 유지될 경우 건보 수입액은 2023년 93.3조원에서 2032년 175.2조원 연평균 7.2% 증가하지만 건보 지출액이 2023년 92.0조원에서 2032년 195.1조원으로 연평균 8.9%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어서 건강보험 재정수지가 2024년에 적자로 전환되고 2028년에는 누적 준비금이 소진되며 2032년 누적 적자액은 61.8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표 6>
국회의 건강보험 재정전망치를 토대로 2032년 이후 건강보험 지출액을 추산해 보면 2035년에는 의사 수 3.49명에 의료비는 약 251조원, 2040년에는 의사 수 3.85명에 약 386조원에 달한다. 그런데 이는 의대정원이 현 상태(3058명)로 유지된 채 신규의사가 배출될 때의 의료비 증가를 말한다.
만일 의대정원을 매년 2000명씩 증원하게 되면 2031년에는 인구 천명당 의사 수가 3.26명, 2035년에는 의사 수 3.69명, 2040년에는 4.25명으로 늘어나게 된다. 이렇게 늘어난 의사 수를 고민창의 연구보고서의 결과(인구 천명당 의사수 1명 증가시 의료비 22% 증가)에 적용했을 때 2035년 261.7조원, 2040년 의료비는 413.9조원으로 늘어난다. 의사수 증가로 늘어나게 되는 의료비가 약 33.5조원이다. 국민 1인당 매월 약 5.6만원의 의료비 부담이 늘어난다는 뜻이다.<그림 2>
그런데 여기에 현경래의 연구보고서를 적용할 경우 의사수가 늘어나면 상급종합병원과 의원급에서의 의료비는 더욱 급격하게 증가될 수 있다.
고령화가 진행될수록 의료의 수요와 의료비가 늘어나게 되기 때문에 우리보다 먼저 고령화를 겪은 일본의 경우 고령화에 대비하여 보건의료 자원의 효율적 이용을 통한 의료비 증가 억제를 위한 다양한 노력들을 전개해 왔다.
초고령사회를 대비하여 병상 공급을 더 늘리고 의사 수를 늘려야 된다는 우리나라와는 반대로 일본은 의사 수가 워낙 적었던 2006년 '新 의사 확보 종합 대책'에 의해 의사 부족이 심각한 도도부현(광역시도에 해당) 지역에 대해 의대 정원을 늘리는 정책을 펼치기는 했지만 고령화에도 불구하고 지난 30년간 꾸준히 병상 수를 줄여왔다.
특히 의료개혁의 핵심으로 의료기관 병상을 기능에 따라 '고도급성기-급성기-회복기-만성기'로 구분하여 명시하고 의료비가 많이 발생되는 급성기 병상을 점진적으로 줄이는 정책을 펼쳐왔다. 그 결과 지난 2022년 하시모토 등은 <란셋 공중보건학술지>에 일본은 2034년을 기점으로 더 이상 의료비가 늘어나지 않고 의료돌봄비용도 향후 감소하게 된다는 내용의 논문을 기고한 바가 있다.<그림 3>
동네 분식집 하나를 오픈할 때도 초기 투자 비용, 인건비, 관리 운영비, 예상 매출 등 손익을 따져보는 것이 상식이다. 하물며 국가 정책은 더 철저히 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우리나라는 병상총량을 관리할 정책도 세우지 않고 대학병원 수도권 분원을 무한정 증설하게 하면서, 그 병상을 운영하기 위해 의사와 간호사를 근거도 없이 대폭 늘리겠다고 하고 있다.
의사 수 증가가 의료비와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은 상식이다. 일본은 고령화를 대비하여 의료비 절감을 위한 종합적 분석과 연구에 근거하여 의사 수와 병상 수를 조절해 온 결과 고령화를 극복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이러한 분석을 할 역량을 가진 학자가 단 한 명도 없다는 것이 비극이다. 제대로 된 연구조차 없이 의대정원을 대폭 증원한 후 향후 의료비 증가로 미래 세대에게 건강보험료 폭탄으로 돌아오게 될 경우 누가 책임질 것인가.
게다가 정부는 의대정원 2000명 증원 근거도 공개하지 못한다고 말하며, 의사 수와 의료비의 상관관계에 대한 건강보험공단의 두 편의 연구보고서도 공단 홈페이지에서 공개하지 않고 있다. 자유를 존중하는 정부라고 말하면서 합당한 근거도 제시하지 못한 채 전문가 의견을 힘으로 억누르려고만 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