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정원 시리즈 : 의대정원의 본질은 포퓰리즘?>
[1] 들어가며 : 뜬금포 같은 의대정원 확대 뉴스
[2] 'OECD 의사 수 평균'이라는 가스라이팅
[3] 필수의료와 의대정원
[4] 지역의료와 의대정원
[5] 공공의료와 의대정원
[6] 의사 소득과 의대정원
[7] 초고령사회와 의대정원
[8] 의사 수와 건보재정
[9] 나가며 : 의대정원, 포퓰리즘은 안 된다
[9] 나가며 : 의대정원, 포퓰리즘은 안 된다
■ 정치는 어떻게 포퓰리즘의 늪에 빠지나
포퓰리즘은 '대중', '민중'을 뜻하는 라틴어 '포풀루스'(populus)에서 유래한 단어로 원래 소수 엘리트의 지배에 맞서 대중의 직접적인 정치 참여를 강조하는 의미의 용어다. 포퓰리즘에 대해 독일 태생으로 프린스턴대 정치학과 교수인 얀 베르너 뮐러는 그의 저서 <누가 포퓰리스트인가>에서 '포퓰리스트란 반엘리트이면서 반다원주의를 지향하며 자기들만이 국민을 대표한다고 주장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근래에는 대중의 인기만을 추구하여 선심성 정책을 내세우는 정치행태를 가리키는 부정적 개념으로 포퓰리즘이 많이 쓰이고 있다. 사실 정치 자체가 포퓰리즘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 더 많은 사람의 지지를 얻기 위해 소수에 속한 사람들 특히 기득권이나 부유층을 공격하는 전략들이 대부분은 잘 들어맞는다. 하지만 그 대가로 치르게 되는 비용이 상당하다.
지금 의대증원을 둘러싼 우리나라 모습이 이와 닮아있다. 의사가 30대 중반에 4억을 번다는 터무니 없는 소리로 '사돈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픈' 국민감정을 자극하는 요제프 괴벨스도 울고 갈 현란한 세 치 혀로 의사를 악마화하는 어느 포퓰리스트 학자의 궤변을 동력으로 추진해 온 '의대증원 2000명'이라는 폭탄을 총선을 앞두고 던졌다.
증원 추진 과정에 보건복지부 장관은 '의사의 기대 소득을 낮춰서 이공계로 인재들이 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의대 정원 증원을 해야 된다'고 '끌어내려서 하향평준화'를 이루는 공산주의 사고방식의 발언을 거침없이 하면서, PA 간호사가 의사를 대신하여 심폐소생술과 응급약물 투여까지 하도록 하겠다고 한다. 자신들의 정책에 반대한다고 국민의 생명과 건강에 심각한 영향을 끼칠 의사 고유의 업무조차 간호사에게 넘기겠다면서 힘으로 밀어붙이는 모습은 마치 중국 문화혁명 시절 단기 과정으로 대거 양산한 '맨발의 의사(bare foot doctor)'를 연상케 한다.
옥스퍼드 대학교 교수 벤 앤셀(Ben Ansell)은 자신의 저서 「정치는 왜 실패하는가」에서 정치가 실패하는 이유 중 하나로 절차와 공정한 대우를 넘어 기회와 결과로 확장된 '평등'의 개념을 꼽는다. 그는 평등한 권리와 평등한 결과는 서로를 약화시키는 평등의 덫에 빠지기 쉬운데, 평등한 권리로 인해 생긴 불평등한 결과를 해소하기 위해 강압적 방식을 동원하여 억압하는 시도들은 결국 자코뱅당이나 볼셰비즘 식으로 끝나게 된다고 지적한다.
■ 대한민국 의료를 덮은 포퓰리즘의 그림자
대한민국은 OECD 최저 수준인 인구 천명당 임상 의사 수(2.5명)에도 불구하고 적은 비용으로 모든 국민이 언제라도 자유롭게 전문의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세계 최고 수준의 보편적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나라다. OECD의 각종 보건의료 지표도 대부분 최상위의 성적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대한민국 의료를 두고 '경이롭고 믿기 힘든(Marvelous & Incredible)' 시스템이라고 찬사를 보낸다. 그러나 전세계가 부러워하는 그 찬사의 이면에는 포퓰리즘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로 유명한 영국은 1942년 출간된 베버리지 보고서를 근거로 '보편적 복지'를 실현하기 위해 1946년 국민보험법(National Insurance Act)과 국민건강서비스법(NHS Act) 등을 제정하고 민간 소유의 병원과 사회복지 시설을 국가가 인수하여 운영하면서 의료와 복지를 국가가 직접 책임지게 되었다. 그러나 점차 국가의 재정 부담이 커지면서 1970년대 이후 '복지 다원주의(welfare pluralism)'를 채택하여 사회복지는 민간이 서비스를 공급하게 되었고, 의료만 국가가 세금으로 운영하는 NHS(National Health Service) 제도를 유지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 의료보험 제도는 처음부터 포퓰리즘에 기반하여 시작했다. 우리나라는 국민소득이 1000불 남짓하던 1977년 북한의 무상의료 선전에 대응하기 위해 정치적 결정으로 의료보험을 서둘러 도입하게 되었다. 영국이 2차 대전 후 '보편적 사회복지'에 대한 사회적 요구를 수용하여 오랜 준비와 논의를 거쳐 NHS를 출범시킨 것에 비해 우리나라는 준비도 없이 단지 남북간 체제경쟁을 위한 정치적 결정으로 의료보험을 도입한 셈이다.
역대 의과대학 신설은 모두 다 보수정권에서 이루어졌다. 이승만 정권 8곳, 박정희 정권 11곳, 전두환 정권 9곳, 노태우 정권 4곳, 김영삼 정권 9곳 등 총 41곳이 신설되었는데 김영삼 정부는 지역 안배 차원의 정치적 결정으로 정원 50명 미만의 미니의대를 대거 허가함으로써 지금까지도 의학교육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김영삼 정부에서 신설된 9곳 중 1곳은 문재인 정부에서 폐교하여 현재는 40곳이다. 우리나라는 인구 약120만 명당 의과대학 1곳으로 미국(167만 명당 1곳), 일본(158만 명당 1곳)에 비해 인구 대비 의과대학 수가 이미 많은 셈이다.
지난 1989년 7월 노태우 정부에서 전국민의료보험을 실시하면서 수도권 대형 의료기관으로 환자쏠림을 우려하여 1·2·3차 진료권 개념과 함께 의료전달체계가 도입했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이후인 1998년 지역 간 공급 불균형에 따른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규제 개혁 차원에서 진료권 제도와 의료전달체계가 폐지되었다. 그 이후 환자들은 너도나도 수도권 대형병원으로 발걸음을 향하게 되었다. 자원의 효율성에 대한 고려 없이 불평등 해소라는 포퓰리즘만 작동한 셈이다.
김대중 정부는 또 1999년에 모든 의료기관이 반드시 건강보험진료를 하도록 강제화하는 요양기관 당연지정제를 도입했다. 이미 1989년 3월 국회를 통과한 요양기관 당연지정제에 대해 노태우 대통령이 한 차례 거부권을 행사한 바가 있었으나 김대중 정부에서 다시 요양기관 당연지정제를 도입하게 되자 헌법소원을 제기했지만 헌법재판소는 2002년 10월 당연지정제가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결정했다. 당연지정제와 의료전달체계 부재의 결과 우리나라는 한 사람이 연간 3000번 넘게 외래 진료가 가능한 나라가 되었다.
김대중 정부의 의료 포퓰리즘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2000년 7월 의료보험 통합 또한 대표적 포퓰리즘 정책이다. 당시 직장과 지역으로 나뉜 의료보험을 국민건강보험으로 통합하게 되었는데 이는 결국 수도권 대형병원 진료비로 많이 쓰는 사람이 더 이득을 보는 구조인 '공유지의 비극(The Tragedy of the Commons)'으로 귀결되고 말았다. 우리나라와 달리 아직 직장과 지역으로 보험이 분리된 일본이 도도부현 단위로 지역 가산 수가를 적용하여 지역 의료기관이 도산하지 않도록 하고, 재정적으로 취약할 수 밖에 없는 지역의료보험의 안정성을 제고하기 위해 정부가 보험재정의 50% 정도를 지원하는 등 다양한 노력을 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김대중 정부의 의약분업 정책도 마찬가지였다. 2000년 의약분업 추진 당시 "저는 대학교수로서 애써서 가르친 제자들이 도둑질하는 의사가 되는 것을 이제 더 이상 보고 있을 수가 없습니다."라고 쓴 모 교수의 정의로운 기고문을 동력으로 정부는 의사를 리베이트나 받아먹는 도둑으로 몰면서 '의약분업 하면 약사가 의사의 처방을 검토해서 의료의 질이 더 높아진다.', '의약분업 하면 불필요한 약제 처방이 줄어서 비용이 줄어든다'고 홍보하면서 밀어붙였다. 그 결과 세계에서 유일하게 의사의 조제권이 완전박탈된 형태의 의약분업을 하는 나라가 되었다. 하지만 의사가 진료하고 약도 주는 원스톱 서비스가 의사는 진료하고 약사가 조제하는 투스톱 서비스가 되면서 약제비는 크게 늘어났다.
김대중 정부에서 신설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의료 포퓰리즘을 실현하는 충실한 도구가 되고 있다. '심평의학'이란 신조어를 탄생시킨 심평원은 빠른 속도로 발전하는 신의료기술과 신약의 개발을 따라가지 못한 채 기계적 삭감과 규제의 상징이 되었다. 심지어 함께 본인 부담으로 받고자 하는 서비스조차 법정비급여 이외는 불법으로 규정하여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강력한 평등주의 원칙을 적용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의 의학전문대학원 추진도 대표적인 포퓰리즘 정책이다. 2005년 의전원 도입 당시 정부는 표면적으로는 '의술 양성 및 의학 발달, 의사·의과학자 양성 창구 확대' 등을 내세웠지만 이면에는 의사를 기득권으로 치부하면서 의료 개혁을 추진한 것이다. 당시 의료계의 우려와 반대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BK(Brain Korea) 21' 사업비 지원과 연계하여 의전원 도입을 밀어붙여서 한때 전국의 41개 의과대학 중 36개가 의전원을 운영할 정도였다. 하지만 결국 의료계의 우려대로 △우수 이공계 인력의 의전원 이탈 △의과학자 양성 실패 △공중보건의·군의관 부족 △기초·필수 의료 분야 기피 등의 부작용만 양산하다가 결국 차의과학대학교를 제외한 모든 의전원이 사라졌다.
문재인 정부에서 시행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정책(일명 "문케어")'의 핵심 정책인 3대 비급여(선택진료비, 상급병실료, 간병비)의 건강보험 적용도 대표적인 포퓰리즘 정책이다. 전문의가 된 후 10년 이상 임상 경험과 연구를 한 교수와 갓 전문의가 된 의사의 진료 가치를 동일하게 취급하고, 치료행위도 아닌 편의 서비스에 해당하는 상급병실료에 건강보험을 적용하여 경제력이 있는 사람이 자비 부담으로 쓸 수 있는 비용조차 건강보험 부담으로 전환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건보재정 악화를 초래했다. MRI 검사 등 무분별한 급여화로 인해 이른 새벽부터 심야까지 MRI를 찍기 위해 환자가 줄을 서는 진풍경도 연출되었다. 반면 정작 절실한 간병비의 건강보험 적용은 '간병살인'이라는 사회적 문제에도 불구하고 미적거렸다. 수혜 대상이 적어서 득표에 큰 도움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의료 포퓰리즘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저수가로 인해 많은 환자를 볼 수 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 가운데도 세계에서 가장 헌신적으로 환자를 돌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의사들의 수입이 높다고 의사를 적대시하여 의료행위의 결과가 좋지 못하다고 의사를 형사 처벌하고 있다. 의사 1인당 기소 건수가 일본 대비 265배로 의사의 의료행위에 대한 형사처벌이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나라, 의사에 대한 불신을 부추겨서 CCTV 감시 대국 중국도 하지 않는 세계에서 유일의 수술실 CCTV를 달도록 한 나라, 은행 직원 평균 연봉도 2억을 바라보는 시대에 40대 전문의가 열심히 일한 대가로 받는 연봉 2억(세후 월 1천만원 남짓) 정도의 의사 소득을 두고 국가가 의사를 악마화하고 개혁 대상으로 삼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아마 잘나가는 변호사들이 누린다는 '50억 클럽'을 의사들이 구경이라도 했으면 좀 덜 억울하기라고 하지 않을까 싶다.
지금 대한민국의 의료 왜곡이 구조화된 원인은 물가보다 현저히 낮은 수준의 의료수가 인상을 수십년간 반복해 온 건강보험 수가체계에 있다. 우리나라는 1977년 대비 2023년 1인당 국민소득(GNI)이 1,034불에서 33,745달러로 32배 늘어나고, 버스요금이 40원에서 1,500원으로 37.5배 오르는 사이에 의료수가(환산지수)는 1점당 10원에서 79.7원(병원급)으로 8배도 안 올랐다. 이런 비현실적 수가에도 불구하고 대학병원들은 그동안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 비급여와 함께 전공의 인력을 갈아 넣은 박리다매의 진료를 해 왔다. 이 과정에 비급여가 별로 없는 필수의료 분야의 수가는 심각한 적자에 허덕이게 되었고, 최근 의료행위에 대한 민·형사 소송이 잇따르면서 의사들이 필수의료 분야 전공을 기피하게 되었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어떤 포퓰리즘 정책보다 더욱 강력하게 포퓰리즘에 기댄 정책이 바로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이다. 보수우파 정부라고 말하는 윤석열 정부는 필수의료 분야에 대한 '낙수효과'를 말하며 의대정원 늘리면 아차 하면 감옥 갈 수 있는 필수의료 분야 의사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말한다. 일부 잘 나가는 변호사처럼 불로소득을 얻는 것도 아닌 실수령액 1천만원 남짓의 의사 소득을 가지고 대통령부터 의사와 국민을 갈라치기 하는 포퓰리즘 정치를 하고 있다. 지난 정부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원팀이 되어서 환자를 치료해야 할 의사와 간호사를 갈라치기 한 것과 뭐가 다른가?
■ 의대증원, 선의로 포장된 지옥으로 가는 길
보건의료정책 중 의사 인력 정책은 가장 중요한 정책이다. 시설과 장비는 과잉이나 과소가 될지라도 단기간에 조정이 가능하지만 한번 배출된 의사 인력은 장기간에 걸쳐 보건의료 재정과 정책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선진국에서는 의사 인력의 적정성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별도의 기구나 조직을 두고 있다. 미국의 보건의료인력국 산하 '국가보건의료인력분석센터(National Center for Health Workforce Analysis, NCHWA)', 일본 후생노동성 산하 전문가 중심의 '의사인력 수급 검토회', 네덜란드의 '의료인력계획 자문위원회(Advisory Committee for Medical Manpower Planning, ACMMP)', '보건의료서비스 연구소(Netherland Institute for Health Service Research, NIVEL)', 호주 보건부 산하의 '호주보건의료인력원(Health Workforce Australian, HWA)' 등이 그 예다.
윤석열 대통령은 2022년 5월 취임식에서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가장 큰 원인으로 반지성주의를 언급하면서 '견해가 다른 사람들이 서로의 입장을 조정하고 타협하기 위해서는 과학과 진실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대정원 증원도 그래야 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정부는 의대정원 증원의 근거로 삼은 연구보고서조차 공개할 수 없다고 말하며 해당 연구보고서의 연구자들조차 2000명은 과하다고 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통으로 일관하면서 전문가의 의견이나 반론은 '입틀막' 한 채 증원을 강력히 바라는 대학 총장을 대상으로 한 의대정원 수요 추계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2000명 증원 카드를 던졌다.
지난 반세기 동안 포퓰리즘으로 인해 생겨난 의료의 켜켜이 쌓인 문제들은 다 덮어놓은 채 의사를 악마화하고 마치 의대증원이 개혁인 것처럼 포장하여 2000명을 증원하면 총선에서 득표하는데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대통령이 원하는 대로 의사 소득이 일부 낮아질 수도 있다. 하지만 모든 선택에는 대가가 있다. 우리나라 의사 소득이 OECD 평균보다 높은 것이 우리가 OECD 최상위의 의료의 질을 유지하는 것에 어느 정도 동기부여를 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 만일 의사 소득이 OECD 평균 수준으로 낮아지면 그것에 비례해서 의료의 질도 OECD 평균 수준으로 낮아지는 것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덤으로 의사 수 증가로 인한 의료비 총액의 증가도 국민이 감당해야 한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