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액 연봉의 실상은? "허울뿐인 업무대행의사"
사명감이 없어서? "부당해고 당했는데 어떻게 일해요"
돈만 밝힌다고? "돈만 보지 않기 때문에 떠난다!"
"N차 공고에도 의사 못 구해", "연봉 4억에도 지원 의사 없어"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짚으며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소재가 있다. 바로 높은 연봉에도 의사를 구하기 어려웠던 보건의료원의 사례다.
4억대까지 연봉을 올렸음에도 지원하는 의사가 없다는 자극적 보도에 국민의 시선이 쏠렸다. '의사들이 배가 불러서' 혹은 '사명감이 없어서', 정말 '의사가 부족해서' 라는 손쉬운 예단이 줄을 이었다.
의사들은 과연 '배가 부르고, 사명감이 없고, 또 숫자가 적어서' 고연봉을 마다했을까? [의협신문]은 N차 모집이 나왔던 지역 보건의료원의 사례를 통해, 의사들이 가지 못했던 진짜 이유를 들여다 봤다.
의사들이 배가 불렀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연합 비례대표로 당선된 김윤 서울의대 교수(의료관리학)는 지난 2월 MBC 100분 토론에 출연, 의대 증원 찬성쪽에 서서 "종합병원 봉직의(월급의사) 연봉이 최근에 3억~4억원까지 올랐다"고 주장해 의료계의 거센 비판을 받기도 했다.
김윤 당선인의 말대로라면 '3억 6000만원'이라는 월급은 산청군까지 내려가기엔 너무 적은 금액이기에 갈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을 수 있다. 과연 그럴까?
더불어민주당 신현영 의원은 의사 시절 연봉표를 공개하며 "과대한 희망과 잘못된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연봉표에 따르면, 신 의원은 명지의료재단(1년간)과 한양대학교(4개월간)로부터 1년 동안 약 1억 285만원의 급여를 받았다.
2022년 보건사회연구원의 보건의료인력 실태조사에서 나타난 2020년 전체 봉직의 평균 연봉은 1억 9115만원이었다.
4억원은 의사들에게도 충분히 매력적인 액수일거라는 얘기다. 만약 일반 직장인들이 적용 받는 월급체계와 근로조건, 법적 책임소재가 유사하다면 말이다.
연봉 3억 6000만원? "실상은…"
산청군 보건의료원은 작년 5차례 공고 끝에 내과 전문의를 채용했다. 연봉은 3억 6000만원. 매력적인 고연봉에도 의사를 고용하지 못했다는 기사가 연일 터져 나왔다.
울릉군 보건의료원은 지난해 내과 전문의 채용 공고를 9차례낸 뒤에야 의사를 구할 수 있었다. 당시 울릉군 보건의료원이 내건 조건은 월급여 2500만원. 이번에도 '전국 15곳 보건의료원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이 제기됐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산청군 보건의료원 내과 전문의 3차 공모에 지원했던 A의사는 3억 6000만원이 허울뿐이라고 지적했다.
산청군과 울릉군이 모집한 전문의는 '업무대행의사'. 업무대행의사는 의사 개인 자격으로 의료원과 사업계약 형태인 '업무대행계약서'를 작성한다. 엄밀히 말하면 고용이 아닌 개인사업자로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개인사업자이기에 국민연금·건강보험 등 4대 보험료는 본인이 모두 감당해야 한다. 의료원측이 요구하는 손해배상보험료와 주택비 등까지 더하면 비용은 60%까지 이를 수 있다. 사업소득이 3억원을 넘으면 세금 40%(주민세 별도)도 부담해야 한다. 연봉 3억 6000만원이 실제로는 월급여 1500만원에도 못미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의료사고 위험 역시 스스로 감당해야 한다. 계약서에는 '업무와 관련한 산청군수의 정당한 지시에 따라야 한다', '산청군수를 피보험자로 하는 손해보험을 가입해야 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산청군과 의료 업무에 관한 도급계약을 맺도록 해 모든 민·형사상 책임까지 의사에 떠넘긴 것이다.
울릉군 보건의료원도 사정은 마찬가지.
울릉군 보건의료원은 5차 모집부터 △주말·공휴일 야간콜 △개인사업자 등록 △손해보험 가입을 채용 조건으로 내걸었다. 사실상 24시간 근무에 의료분쟁 책임을 모두 떠넘기는 조건에 의료계에선 '노예 계약'이라는 비판이 커졌다.
의료사고 위험을 스스로 감당해야 하는 정신적 부담, 주거 문제, 생활 여건 등을 고려하면 선뜻 지원하기 어려운 조건이라는 것이 의료계의 진단이다.
사명감이 없어서다? "부당해고 당했는데 어떻게 일해요"
경기 고양시 산하 3개 보건소는 2022년 의사 5명에 일방적 계약해지를 통보해 논란이 됐다.
고양시 산하 덕양구·일산동구·일산서구 보건소는 당시 의사 5명(치과의사 3명·한의사 2명)에 계약해지를 통보했다. 이번에도 채용 형태는 '업무대행의사' 였다.
계약해지 통보를 받은 의사들은 약 10년에서 15년 이상 근무해온 이들. 의사들은 보건소가 업무대행의사를 임기제 공무원으로 전환할 것이라는 약속도 어긴 것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보건소에서는 업무대행 의료진 제도의 문제점을 개선하려다 보니 부득이 계약연장을 하지 못하게 됐고, 임기제 전환 약속 이행 여부는 예산과 정원 문제 등으로 이행이 어려웠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해명 이후 고양시 보건소는 업무대행 의사 채용계획 재공고를 올렸다. 보건소의 해명이 순간을 모면하기 위한 '변명'에 불과했다는 것이 밝혀진 순간이다.
계약해지 통보를 받은 B의사는 '업무대행의사'로서의 부당했던 대우를 털어놓기도 했다.
B의사는 "질병으로 치료를 받아야 했지만 보건소에서 조치가 없었다. 채용공고를 내주지도 않았다. 본인이 직접 대체 의사를 구해야 했다"고 회상했다.
"출장을 가도 관련 수당은 없었다"며 "업무대행의사는 매년 계약갱신을 해야 한다. 10년간 급여도 딱 한 번 올랐다. 불만을 표할 길도 없었다. 이러한 차별로 시나 보건소와 갈등을 빚고, 나가는 의사들이 많다"며 정확한 복무규정도 없었음을 전했다.
의료원 업무대행 의사의 고용 불안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례. '사명감'으로 지역 의료를 책임져온 의사들이 영문도 모른 채 직장을 잃었다.
돈만 밝힌다고? "돈만 보지 않기 때문에 떠난다!"
'4억원 연봉' 제시에도 의사를 구하지 못했다는 소식은 작년 속초의료원에서도 날아들었다.
두 명의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퇴사하면서, 인력 충원이 필요했지만 채용은 쉽지 않았다. 장장 5번에 걸친 재공고 끝에야 의사를 채용할 수 있었다.
당시 퇴사한 두 명의 전문의는 각각 7년, 12년 동안 속초의료원에서 근무해 온 이들. 오랜 직장을 떠난 이유는 '자녀 교육'이었다. 경제적 여건보다는 가족과의 삶 등 사회관계가 근무지 결정에 큰 영향을 준다는 의미다.
[의협신문]이 작년 진행한 '은퇴 후 진로 선택은?' 설문(2023년 6월 14일∼26일 진행·2016명 참여) 결과에 따르면, '지방으로 이전 근무 시 겪을 수 있는 어려움'으로 '가족과 별거'(29.7%)를 가장 크게 걱정했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에서 실시한 '2020 전국의사조사'(Korean Physician Survey, KPS/2020년 11월 19일∼2021년 1월 10일 진행·6507명 참여)에서도 결과는 비슷했다.
지방이전 근무 시 어려움 중 1위는 ▲자녀의 교육문제(58.3%)였으며, 뒤를 이어 ▲가족과 떨어져 살게 되는 어려움(52.6%) ▲친지나 친구 관계 등 개인적인 사회관계 단절(42.4%)을 꼽았다.
지방 인프라의 한계가 연쇄적으로 가족과의 단절을 가져오면서, 취약지를 반복 생산하게 된다는 진단이 나오는 이유다.
응급의학의사들은 의료원과의 갈등, 과중한 위험부담 역시 의사들의 발걸음을 돌리게 하는 주 원인이라고 강조한다.
이형민 대한응급의학의사회장(한림대성심병원)은 "속초의료원 사직 전문의들은 언론에서 말한 4억대의 연봉이 결코 아니었다. 한참 낮은 돈을 받고 있던 걸로 안다"며 "의료원 바로 옆 병원의 경우, 이전 보다 더 적은 연봉에도 의사들이 그만두지 않았다. 고용에도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 그렇다면 해당 의료기관에 문제가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속초의료원의 경우 비의사 출신 행정 원장이 오면서 갈등이 심해졌다고도 알려졌다.
이형민 회장은 "전국 의료원에서 흔히 발생하는 문제다. 의료라는 본질을 모르면 운영 자체가 불가능한 곳이 병원이다. 행정원장들의 경우 의료원을 경제적 논리로만, 가게처럼 운영하고 싶어 하는 경우가 많다"며 "의사로서 일을 하기 위해선 어느 정도의 자율성 보장과 한계 조율이 필요하다. 의사들 사이에서는 이러한 보장이 없고, 갈등이 심한 의료원을 '블랙'이라 부른다. 블랙 의료기관은 모든 의사들이 꺼리는 곳으로 채용이 더욱 어려워 진다"고 말했다.
최근 대동맥박리 환자 사망 사례를 '응급실 뺑뺑이' 책임으로 돌렸던 언론 보도도 언급하면서 "채용에 어려움을 겪는 의료원은 대부분 의료 취약지다. 의료 취약지는 전원 가능한 의료기관이 없어, 위험부담이 훨씬 세다. 소송에 걸리면 최소 10억이다. 리스크를 고려했을 때, 결코 매력적인 조건이 절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의사 스스로 '존재가치'에 무게를 두는 경우가 많기에 연봉보다는 제대로 일을 할 수 있는 환경을 택한다는 지역 필수의료 의사의 제언도 나왔다.
배장환 충북대병원 심장내과 교수(사직서 제출 의대교수)는 지난 5일 보건복지부가 주최한 '필수의료 강화를 위한 건강보험의 역할' 토론회에 참석, 4번째 공고만에 의사를 채용한 단양보건의료원의 사례를 들며 "응급의학과 의사가 2명이다. 365일 밤낮 근무를 어떻게 견디겠느냐"고 지적했다.
배 교수는 "환자가 별로 없고 소득은 높은 곳이 있다 해도 의사들은 '꿀 빨겠다'며 가지 않는다. 능력이나 커리어가 절단됐다는 생각이 들면 절대 머무르지 않고, 가지 않는다"며 "의사는 제대로 일할 수 있는 환경에서 트레이닝한 것을 활용하고 싶어 한다. 돈을 많이 준다고 해도 안 가는 곳은 다 이유가 있다. 정부는 3억, 4억 등 의사에게 줘야하는 돈을 먼저 생각할 게 아니라 의사 존재가치를 제대로 들여다보길 바란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