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전공의 행정명령 취소·의대생 휴학인정 요청 단칼에 '거절'
"27년만 의대증원" 자화자찬만...스스로 막판 대화 가능성 차단
10일에는 태도 바꿔 '강제 진료명령' 발동...불신의 벽 더 높아져
9일 대한의사협회의 총파업 선언 직전 열린 정부의 긴급기자회견. 의료계 총파업을 막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지만 정부는 스스로 대화의 가능성을 차단했다.
정부는 이날 의료계의 전공의 행정명령 취소 요청을 거절하고 의대생 휴학승인 또한 불가하다는 입장을 고수하면서도, 의료계와 언제든 대화할 생각이 있고 이들이 돌아올 것이라고 믿는다는 기존의 주장만 되풀이했다.
지난 27년 동안 '늘리지 못했던' 의대정원을 이번 정부가 해냈다는 자화자찬과 함께다. 정부의 기자회견 직후, 의료계 대표자들은 정부의 무능과 불통을 규탄하며 총파업을 선언했다.
혼란을 막기 위해 의료계와 계속해서 대화할 것이라던 정부는, 의료계가 총파업을 선언한 직후인 10일 오전, 각 의료기관에 강제 진료명령을 내렸다. 전날과는 '180도' 다른 행보. 불신의 벽은 더 높아졌다.
# 전공의 행정명령 취소 요청, 한덕수 국무총리 단칼에 '거절'
9일 열린 정부 기자회견에서 한덕수 국무총리는 전공의 행정명령 취소 요청에 대한 정부의 입장을 묻는 질문에 "복귀하는 전공의에 대해서는 처분을 하지 않고 하등의 불편이 없도록 하겠다"면서도 "명령 취소에 대해서는, 향후에 대해서 철회를 했다고 말씀드린다"고 했다.
의대교수들이 정상화의 최우선 과제로 제안했던 전공의 행정명령 취소 요청을 의료계 총파업 선언 직전, 또 다시 단칼에 거절한 것이다.
의료계는 정부가 전공의에 대한 각종 행정명령을 취소가 아니라 철회한 것은, 기존 행정명령의 유효성을 확보해 향후 전공의 행정처분의 근거로 삼으려는 것이라며 그 부당성을 주장해왔다.
행정명령을 취소한다면 이전에 있었던 그에 따른 위반행위도 소멸되지만, 행정명령을 철회할 경우 철회시점 이전에 발생한 이른바 명령 위반행위는 여전히 유효하고 그에 따른 행정처분도 언제든 집행이 가능하다는 점에서다.
방재승 서울의대·서울대병원 비상대책위원회 고문은 9일 전국의사대표자대회에서 정부의 이같은 태도를 강력 비판했다.
방 고문은 "정부는 행정명령을 철회했으니 문제될 것이 없다지만, 행정명령의 취소와 철회는 엄연히 다르다"면서 "면허정지 가능성을 없애주지 않고 있는 것"이라고 짚었다.
이는 전공의들에게 두고두고 압박책이 될 것이라고도 걱정했다.
방 고문은 "사직 전공의에게 행정명령 꼬리표는 끝까지 따라다닌다. (복귀하는) 전공의들도 수련을 마치기 전까지 정부의 어떠한 부당한 정책이 있어도 의사표시를 못하게 만드는 노예계약제"라고 비판했다.
"정부가 이런 것을 국민에게 알리지 않으니, 국민들께서 정부가 이렇게 양보했는데 의사들이 너무한 것 아니냐고 비판한다"고 짚은 방 고문은 "의료붕괴는 이미 시작되었고, 정부 말대로 가면 내년엔 더 최악의 상황이 된다. 정부가 일으킨 의료붕괴를 의사가 막으려고 무진애를 쓰고 있는 것"이라고 호소했다.
# 이주호 장관, 의대생 휴학·유급 인정 못한다
정부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의대생 휴학 및 유급 인정 또한 불가하다고 다시 한번 못 박았다. 전공의와 의대생 복귀를 위한 의료계의 제안들을 정부가 모두 거절한 셈이다.
이주호 교육부 장관은 의대생 휴학인정 여부를 묻는 질문에 "학생들에게 어떻게 더 명분을 주겠느냐는 이야기인데, 오늘 밝힌 정부 계획에 학생들이 돌아올 수 있는 명분이 충분히 담겨있다고 본다"면서 "40개 대학 총장들과 협의체를 구성, 논의했는데 의대생들의 집단 휴학이나 유급은 불허한다는데 다함께 공감을 했다"고 밝혔다.
휴학과 유급을 인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어떻게 의대생 복귀를 이끌어낼지 그 구체적인 해법에 대해서는 답을 내놓지 못했다.
이 장관은 "정부의 더 충실하게 학교 현장에 전달하고 설득하는 노력을 하겠다", "어떻게든 돌아오게 하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겠다"는 답변만 되풀이했다.
# 27년간 못 늘린 의대정원 우리가 해냈다, 끝 없는 자화자찬
한편 이날 한덕수 국무총리는 "27년 동안 한 명도 늘리지 못한 의대 정원이 비로소 국민과 환자의 수요에 맞추어 확대됐다"고 자평했다.
정부의 의료개혁 노력에도 "여전히 일부 의료계 인사들과 의사단체가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추가적인 불법 집단행동을 거론하고 있다"는 비판과 함께다.
해당 발언은 9일 의료계 대표자대회에서도 회자됐다. 의협은 "정부가 계속해서 선동적으로, 국민들에 명백한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불쾌감을 표했다.
최안나 의협 대변인은 9일 대표자대회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27년간 증원이 없었던 것은 사실이나, 이는 의사들이 반대해서가 아니라, 정부가 의사 수가 늘면 국민 의료비 부담 늘어날 수 있고 의사양성의 문제나 의학교육의 질 문제 등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정책 판단 하에 그간 감축 정책을 해왔기 때문"이라고 반박했다.
"정부는 1997년부터 각종 조사와 데이터를 바탕으로 의사 감축 정책을 해왔고, 2020년 전까지 해당 정책을 유지해왔다"고 밝힌 최 대변인은 "그럼에도 총리는 27년간 의료계의 반대로 의대정원을 늘리지 못해오다, 이번 정부가 국민을 위해 성과를 낸양 호도하고 있다. 총리께서 명백한 거짓말로 국민을 선동하는데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 총파업 시행 전까지 의료계 설득? 날짜 정해지자 행정명령부터
의료계 대표들은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정부의 무능과 불통을 재확인했다면서, 결국 오는 18일 집단휴진에 나서겠다고 선언했다.
전날까지 "집단휴진이 결정되고 시행되기 전까지 의료계를 적극 설득하고 대화를 나누도록 하겠다"던 정부는 10일 오전 태도를 바꿔, 각 의료기관에 '18일 진료를 하라'는 강제 진료 행정명령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