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는 의사에게, 조제 선택권은 국민에게"
주수호 제43대 대한의사협회장 후보(기호 3번)가 대한약사회의 성분명 처방 도입 시도를 비판하고, 국민 선택분업 도입을 주장했다.
주 후보는 27일 입장문을 통해 이 같이 밝혔다.
주 후보는 "의사들이 성분명 처방에 반대했던 이유는 국내 제네릭 약가 자체가 외국에 비해 저렴하지 않기 때문에 성분명 처방을 통한 약제비 절감 효과가 떨어지며, 국내 생동성 시험 결과를 신뢰할 수 없기에 품질이나 약효가 의심되는 제네릭 약제가 있어 환자 개별적으로 처방을 달리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며 "더욱 큰 문제는 약화사고 책임소재로, 약사가 어떤 회사의 제네릭 약을 고를지 모르는 상황에서 발생하는 약화사고의 책임을 의사가 모두 지는 것은 부당하다"고 환기했다.
성분명 처방이 건강보험 재정절감에 기여할 것이라는 주장도 잘못이라고 했다.
주 후보는 "성분명 처방이 시행되면, 약사들이 어떤 약을 조제할지 알 수 없는 의사들은 어쩔 수 없이 오리지널 약제 처방을 대폭 늘릴 수밖에 없게 된다"면서 "오리지널 약제 처방이 늘어나면, 약품비 규모를 감당하기 어려워진다는 말이 되므로 오리지널 약제 처방을 늘리게 될 성분명 처방은 건강보험 재정 파탄에 가속도를 붙이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짚었다.
"국민 불편을 최소화하고, 조제행위료를 감소시켜 건강보험 재정 누수를 줄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바로 국민 선택분업"이라고 밝힌 주 후보는 "잘못된 제도는 고쳐야 하고, 지속될 수 없는 시스템은 없애야 한다. 요양기관 강제지정제, 단일공보험제, 그리고 의약분업. 우리는 무엇을 바꾸어야 할지 이미 알고 있다. 이제 실천할 일만 남았다"고 강조했다.
진료는 의사에게, 조제 선택권은 국민에게
매번 새로운 약사회장이 선출될 때마다 신임 약사회장은 성분명 처방을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다. 지난 12월 12일 제41대 약사회장으로 당선된 권영희 후보 역시 성분명 처방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런데 성분명 처방은 무엇이 문제일까? 지금까지 의사들이 성분명 처방에 반대했던 이유는 국내 제네릭 약가 자체가 외국에 비해 저렴하지 않기 때문에 성분명 처방을 통해 약제비 절감 효과가 떨어진다는 점, 국내 생동성 시험 결과를 신뢰할 수 없기에 품질이나 약효가 의심되는 제네릭 약제가 있어 환자 개별적으로 처방을 달리 할 수밖에 없다는 점 등 때문이다.
하지만 더욱 큰 문제는 약화사고에 대한 책임소재 부분이다. 정부나 약사회에서는 오리지널 약제와 제네릭 약제의 효능이나 품질 차이가 거의 없으므로, 만약 환자가 약을 복용한 이후에 부작용을 경험하는 약화사고 발생 시 약제를 처방한 의사가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제네릭 약제의 안전성과 품질, 효능 등을 신뢰할 수 없는 의사들은 약사가 어떤 회사의 제네릭 약을 고를지 모르는 상황에서 발생하는 약화사고의 책임을 의사가 모두 지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성분명 처방이 시행되면, 약사들이 어떤 약을 조제할지 알 수 없는 의사들은 어쩔 수 없이 특허 기간이 만료되기 전에 있는 최신 오리지널 약제 처방을 대폭 늘릴 수밖에 없게 된다.
특허 기간 만료 전 오리지널 약제 처방의 증가는 환자 안전 측면에서는 긍정적일 수 있으나, 약제 가격이 고가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약제비가 증가하게 되어 건강보험 재정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그리고 이로 인해 제네릭 약제 판매가 줄어들게 되면, 신약 개발보다는 제네릭 약제 생산 및 판매를 통해 산업을 유지하고 있는 영세한 국내 제약 산업도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매일 쏟아지는 혁신적이고 효과 있는 최신 오리지널 약제를 국내에 도입하지 않을 수도 없다.
앞서 말했듯이 국내 제네릭 약가가 외국에 비해 높고, 심지어 오리지널 약제와는 거의 차이 나지 않기 때문에 성분명 처방을 통해 약제비 절감을 하겠다는 말은 설득력이 없는 주장이다. 오히려 오리지널 약제 처방 증가로 인해 건강보험 재정에는 나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따라서 많은 부작용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약사회나 친 약사회 국회의원들이 성분명 처방을 추진하는 이유는, 약제비 절감이라는 명분 보다는 약국 재고 관리에 유리하기 때문이라고 보아야 한다. 성분명 처방을 통해 구비 약제의 종류를 최소한으로 하면, 대량 구매를 통한 마진율 상승도 기대할 수 있고 관리도 매우 용이해진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다.
항생제 등 약제 오남용을 막고 조제 서비스 향상을 꾀한다는 목적으로 2000년부터 시작되었던 의약분업이 실패한 정책이라는 사실은 이미 2차례에 걸친 김대중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를 통해 확인이 되었다. 그럼에도 의약분업 제도는 어떠한 수정이나 변화도 거치지 않고 유지되고 있고, 건강보험 재정을 갉아먹는 주범이 되고 있다. 건강보험 재정에서 약품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대략 20% 초반 정도로 유지되고 있지만, 약품비 규모는 매년 1조원 이상씩 증가하고 있다. 건강보험 약품비는 2015년 14조986억원에서 2021년 처음으로 20조원을 넘어 21조2097억원이 되었고, 2023년에는 25조 8204억원까지 증가했다. 물론 의약분업 제도를 유지하기 위해 약국에 지급되는 조제행위료도 매년 3조원 규모라는 점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런데 2020년도 경상 의료비 대비 약제비 비율은 우리나라가 19.9%로 OECD 국가 중 상위 8위에 올라가 있다. OECD 평균은 15.1%로 나타났으니 대한민국이 외국보다 상대적으로 진료비 비중이 낮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만 보아도 세계 최고의 의료 이용률을 자랑하는 대한민국의 의료행위 수가가 상대적으로 얼마나 낮은 지 알 수 있다. 문제는 이렇게 가파르게 약품비가 증가하는 와중에도 건강보험 재정 약품비 중 신약의 지출 비중은 OECD 최저 수준인 13.5%라는 점이다. 이는 곧 오리지널 약제 처방이 늘어나면, 약품비 규모를 감당하기 어려워진다는 말이 되므로 오리지널 약제 처방을 늘리게 될 성분명 처방은 건강보험 재정 파탄에 가속도를 붙이는 결과를 낳게 된다.
의사들은 건강보험 재정에도 악영향을 주고, 환자 건강도 담보할 수 없는 성분명 처방은 찬성할 수 없다. 하지만 만약 약사회와 국회가 성분명 처방을 끝까지 추진하려고 한다면 의사들은 국민 건강을 보호하고 국민들께 조제 선택권을 돌려드리기 위해 국민 선택분업을 추진할 수밖에 없다. 2000년 의약분업 투쟁당시 병협도 투쟁에 적극적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섣부른 성분명 처방 추진은 오히려 의료계를 하나로 뭉치게 만드는 기폭제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즉, 지금보다 더욱 강한 의사들의 저항과 결집력을 보고 싶지 않다면, 성분명 처방 추진이라는 무리수를 감행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지금도 많은 국민들은 진료를 받은 이후 외부에 있는 약국으로 이동해서 또다시 대기하는 불편함을 감수하면서도 많은 돈을 지불하고 있다. 국민 불편을 최소화하고, 조제행위료를 감소시켜 건강보험 재정 누수를 줄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바로 국민 선택분업이다. 의료기관 진료 이후 약 조제를 의료기관 내부와 외부 약국 중 어디에서 받을 것인지에 대한 선택을 국민이 할 수 있어야 한다. 분명히 외부 약국에서의 조제를 선호하는 국민도 있을 것이고, 의료기관 원내조제를 원하는 국민도 있을 것이다. 국민이 처방약 조제처를 선택할 수 있으면 경쟁이 가능해져 보다 나은 조제 서비스를 유도할 수도 있고, 조제행위료의 차등 적용을 통해 건강보험 재정 건전화를 유도할 수도 있다.
잘못된 제도는 고쳐야 하고, 지속될 수 없는 시스템은 없애야 한다. 지금 대한민국은 의료 시스템의 거대한 변화라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의 한 가운데에 있다. 지금 그 변화의 물줄기에 잘 따라가지 못하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차디찬 물속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요양기관 강제지정제, 단일공보험제, 그리고 의약분업. 우리는 무엇을 바꾸어야 할지 이미 알고 있다. 이제 실천할 일만 남았다.
2024년 12월 27일
제43대 대한의사협회장 후보
기호 3번 주수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