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웹스터 지음/강병철 옮김/꿈꿀자유 펴냄/2만원

"조류독감 인간 팬데믹은 반드시 온다. 언제 벌어질 것이냐가 문제일뿐."
지난 1997년 홍콩에서 H5N1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를 처음 퇴치한 후 여러 가지 질문이 제기됐다.
닭들을 죽이는 이 바이러스는 어디서 왔을까. 어떻게 인간을 감염시키고 죽이는 능력을 갖게 됐을까. 이 바이러스가 다시 나타날까. 전파될까. H5N1 인플루엔자는 동물 보유숙주 집단에 심각한 질병을 일으키지 않는 상태로 이미 자리잡았을까. H9N2의 역할은 무엇일까. H5N1은 중국 밖으로 퍼질까.
세계적인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전문가인 '독감 사냥꾼' 로버트 웹스터가 쓴 <조류독감이 온다>가 출간됐다.
조류독감으로 알려진 H5N1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1996년 가을 중국 광동성의 거위에서 처음 발견됐다. 심각한 유행이 뒤따르며 거위 집단의 40%가 폐사했다. 바이러스의 기원을 추적하려는 시도는 대부분 실패했다. 당시만 해도 아시아에서는 야생 철새에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를 분리하는 데 관심이 없었다.
현재 알고 있는 H5N1 거위 바이러스는 거의 확실하게 야생 오리에서 유래했다. 그런데 야생 오리는 이 바이러스에 감염돼도 병에 걸리지 않았지만 집거위에게 전파되자 아직도 완전히 밝혀지지 않은 과정을 거쳐 치명적인 균주로 변했다. 그 후 H5N1 바이러스는 거위에서 양계장으로 전파됐다. 1997년 3월 홍콩에서 닭에게 치명적인 유행을 일으킨 후, 4∼5월 주변지역 농장으로 퍼졌다. 감염된 농장의 닭들이 홍콩의 살아 있는 새 시장(LBM)으로 흘러들어갔을 것으로 추정된다.
1996년 광동성에서 거위들이, 이듬해 홍콩과 주변 지역에서 닭들이 병들어 죽어갔지만 어디서도 인간 질병은 보고되지 않았다. 최초로 인간이 사망한 것은 1997년 5월 홍콩의 3세 어린이였다. 광저우의 거위에서 분리한 H5N1 바이러스와 사망한 소년에서 분리한 바이러스를 비교해보면, 그 사이에 바이러스는 새로운 구성요소를 획득했다. 심지어 뉴라민산 가수분해효소(N1)조차 달랐으며, 유일한 공통 요소는 적혈구 응집소(H5)였다. 어린이를 감염시킨 바이러스는 어떻게 이런 물질들을 획득했을까.
모든 감염병이 그렇듯, 다양한 동물종이 좁은 공간에서 붐비는 환경은 바이러스끼리 유전자를 교환할 수 있는 완벽한 조건을 제공한다. 거위 H5N1 바이러스 유전자가 다른 바이러스 유전자와 섞이면서 다양한 조류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서 유전자 조각을 획득하고, 결국 인간의 몸을 공략할 수 있었다는 분석이다. 현재 바이러스학자들은 조류독감에서 H9N2가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이 바이러스 역시 LBM에 널리 퍼져 있었기 때문이다.
"세계의 모든 존재는 서로 연결돼 있고, 인간과 동물의 건강은 생태계와 밀접하게 관련된다."
저자는 이 책에서 조류독감 대응전략으로 치료제, 백신, 만능 항체, 만능 백신으로 분류하고 현실성과 장단점을 명쾌하게 진단한다.
조류독감이 인간에게 팬데믹을 일으키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안일함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경고하면서도, 현재 불가능하다고 미래에도 그럴 것이라는 예단은 피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다만 지식을 추구하는 데 제한을 두지 않으면서, 실수를 저지르지 않아야 하고, 신중하면서도 충분히 준비하는 섬세한 균형을 잡아야 한다고 전한다.
모두 17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죽음의 사자: 스페인독감, 1918년 ▲인플루엔자 연구를 시작하다 ▲호주의 물새에서 타미플루까지 ▲캐나다 야생 오리 ▲델라웨어 만: 딱 맞는 시간, 딱 맞는 장소 ▲종간 전파를 입증하다 ▲중국에 가다 ▲홍콩: 살아 있는 조류 시장과 돼지 가동 ▲전 세계를 탐색하다 ▲결정적 증거 ▲조류독감, 날아오르다 ▲21세기 첫 번째 팬데믹 ▲사스, 그리고 두 번째 유행 ▲스페인 독감의 비밀을 찾아 ▲마왕, 부활하다 ▲판도라의 상자 ▲미래를 내다보며: 우리는 준비되어 있는가? 등을 중심으로 인플루엔자의 세계에 다가선다.
이 책을 번역한 강병철 꿈꿀자유 대표(소아청소년과 전문의)는 "이 책은 '모든 인플루엔자 연구자의 스승'이라 불리는 대학자의 일대기이자, 손에 땀을 쥐는 에피소드가 이어지는 모험담이자, 우리 앞에 임박한 대역병의 수수께끼를 하나하나 풀어가는 과학 논픽션"이라면서 "그리 길지 않지만 매 장마다 펼쳐지는 이야기가 다채롭고 밀도가 높아 여러 권의 책을 읽은 느낌을 주며, 사실을 전달하는 정보의 양이 엄청나다"고 전했다.
도서출판 꿈꿀자유는 감염병 시리즈를 통해 인류 역사에 큰 영향을 미친 감염병들을 소개하고 있다.
강병철 꿈꿀자유 대표는 "코로나 팬데믹에서 보듯 병원체는 인류의 운명을 좌우할 힘을 갖고 있을뿐 아니라, 기후 위기와 환경 파괴로 인해 앞으로 점점 자주 우리를 찾아 올 것"이라면서 "역사 속에 미래의 열쇠가 있다. 깊은 통찰을 주면서도 소설 못지 않게 흥미진진한 미생물과 감염병 이야기를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070-8226-16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