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연구소 탐방 제4편 취재를 위해 녹십자 관계자들을 만나고 나서야 기자는 그 사탕이야기가 '썰(說)'에 불과했다는 것을 아주 '뒤늦게' 알게 되었다.그러나 오줌으로 약을 만든다는 꼬마들의 추측은 사실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그렇다.바로 그들은 녹·십·자였다.
녹십자는 1967년 창립됐다.그리고 1973년에 오줌에서 뇌졸중 치료제인 유로키나제를 분리하는데 성공했다.녹십자에게 유로키나제는 매우 큰 의미를 지닌다.80년대 헤파박스가 나오기까지 유로키나제는 녹십자의 주력품목이었다.
녹십자 성장의 기틀이었으며 수출 1,000만불 달성의 공신이기도 하다.그렇게 녹십자는 국민이 '몸으로' 세워준 회사다.1983년 드디어 헤파박스가 시판되고 녹십자는 일순간 매출 500억원대의 대형 제약업체로 성장한다.
1983년, 12년의 연구 끝에 세계에서 세번째로 개발에 성공한 '헤파박스'는 지금까지 전세계에서 가장 많이 접종된 B형간염백신이라는 기록을 가지고 있다.녹십자는 헤파박스로 발생한 막대한 이익금을 도대체 어디에 투자해야 할지를 고민하게 된다.
이러한 가운데 기업의 소유개념 등으로 다른 업체들이 선뜻 나서기 힘든 '민간 연구재단'을 설립하기로 결정, 1984년 국내 최초로 과기부의 승인을 받아 비영리 민간 연구재단인 '목암생명공학연구소'를 탄생시킨다.
녹십자는 왜 이런 연구소를 세웠을까? 아니 이 연구소는 다른 연구소와 다른 것이 무엇일까? 박두홍 목암생명공학연구소장은 이 부분에 대해서 이렇게 얘기한다."연구소가 기업내에 존재하게 되면 회사의 경영방침 변화나 경기침체 등의 외부요인에 의해 연구소의 기능이 좌지우지된다.
목암의 경우 총 재원의 ⅓은 정부로부터, ⅓은 기금에서 발생하는 수입과 로얄티 수입, ⅓은 녹십자로부터의 과제 수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외부상황과 관계없이 연구기능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백신과 진단시약에 관한 WHO 협력연구기관'인 목암생명공학연구소는 지난 20여년 동안 '백신과 진단시약'이라는 녹십자의 연구방향 연장선에서 많은 성과들을 배출해냈다.A4 용지 반페이지에 걸친 목암연구소의 다양한 업적들이 '홍보실'측으로부터 제공됐으나, 요점만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1988년 세계 최초로 유행성출혈열 백신 개발 ▲1993년 세계 두번째로 수두백신 개발 ▲국내 최초 HIV 진단시약 ▲유전자재조합 B형간염백신 ▲유전자재조합 인터페론 알파 ▲B형간염 진단시약 ▲124건의 특허등록 ▲155건의 논문발표
현재 목암연구소가 주력하고 있는 프로젝트는 백신도 아니고 진단시약도 아닌 '골다공증치료제'이다.2008년 상품화를 목표로 현재 독일에서 임상2상을 진행하고 있으며 전과정을 FDA기준에 맞춰 추진중인 대형 기대주 신약이다.예방 위주의 기존 치료제와는 달리 손실된 뼈의 밀도를 회복시켜 주는 실질적 의미의 골다공증 치료제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또 한가지 주력 분야는 신생혈관 형성을 억제하여 암세포를 '굶어죽게'만드는 항암치료제 '그린스타틴' 개발로서 현재 전임상 진행중이다.이 외에 혈우병 치료제 그린진, 자기면역질환 및 장기이식 거부반응을 억제하는 면역억제제 등이 있다.박두홍 소장은 "현재 목암의 연구비전은 세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항암제·치료용백신·면역조절약제가 그것이다.
백신연구의 경우, 예방용백신에서 치료용백신으로 좀더 적극적인 의미에서의 백신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항원을 주입해서 면역반응을 일으킴으로써 질병을 치료한다는 점에서 치료용백신이라고 부른다.골다공증이나 항암제 분야는 '삶의질'과 관계된 질환으로써 시장이 넓기 때문에 집중하고 있는 분야다."
그렇다면 녹십자는 더이상 백신회사가 아니란 말인가?
"기술적인 면에선 우리의 장점을 고수하고 있다.현재 플래트폼에서 한두 단계만 연결하여 더 큰 분야로 나간다는 전략이다.물론 무엇이든 시장이 크면 다 하겠다는건 아니다.하지만 1∼2개 제품 만들줄 아는 벤처회사에 누가 투자하겠는가.경쟁력을 확보하려는 전략이라고 보면 된다."
목암이 현재의 위치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녹십자와의 협력관계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실제로 '목암'이 기초기술을 중심으로 중장기 연구과제를 수행하는 동안 '녹십자종합연구소'는 주로 제품화를 목표로 역할을 나누고 있다.'R&D만이 살 길이다'라는 '교과서' 같은 말을 되짚어 보더라도 녹십자의 미래는 목암에 상당 부분 달려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목암이 채택하고 있는 비전은 녹십자를 어디로 이끌어 갈 것인가.제약업계에서 향후 10년이내 1조억원대 회사와 그렇지 못한 회사로 양분화될 것이라는 예측은 공공연해 보인다.그리고 '이변이 없는 한' 성장성있는 회사로서 많게는 8∼10개, 적게는 4∼5개의 회사들이 거론된다.그러나 어린시절 나의 추억을 일깨워준 우리의 '녹·십·자'는 불행히도 여기에서 자주 지목되는 회사가 아니다.이유가 무엇일까?
업계 관계자는 이렇게 분석한다."독자적인 R&D 기반을 갖추고 10년이상 준비해온 회사만이 살아남을 것이다.이런 면에서 녹십자의 방향성은 애매해 보인다.이미 한국 백신시장을 평정하고 세계적인 수준을 자랑하지만 차세대 블록버스터 백신의 플랜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백신 시장의 특성상 녹십자는 현재 '백신이냐 아니냐'의 딜레마에 빠져있는 듯 하다."
1∼2개의 제품만 가진 위험성있는 벤처회사에 누가 투자하겠느냐?는 말에는 수긍이 간다.하지만 자랑스럽게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B형간염백신 헤파박스의 '녹십자'가 앞으로 에이즈·사스 백신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는 뉴스를 듣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순진한 생각을 해본다.
우리는 그런 회사를 갖고 싶은게 아닐까? 1∼2개의 제품만 가진 회사라기 보단 1∼2개의 튼튼한, 남들은 못 만드는 제품을 가진 회사라면 누가 투자를 마다하겠는가? 그게 어린시절 추억의 녹십자에 대한 '애정' 때문이기도 하지만 녹십자가 한국백신의 자존심으로 자랑스런 세계 제1의 백신기업이 되어주길 바라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다시 엄청난 수입을 올려 좀 더 좋은 연구소를 또하나 만들어주길 바란다.그래서 목암연구소를 두고 '기업이익의 사회환원'이라고 설명한 문구가 단순 '홍보용'이 아닌 진심으로 한국 제약 연구를 위했기 때문이었기를 순진하게 바래본다.국민들이 '온몸'으로 키워준 녹십자가 그런 회사이길 믿고 싶다.
여기서 느닷없이 궁금한게 하나 있다.녹십자는 국민학교 아이들의 '오줌'을 가져가며 아이들의 학교에 돈을 지불했을까? 기사 다쓰고 확인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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