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연구소탐방7 LG생명과학연구원, LG의 자존심 '이땅은 너무 좁다'

제약연구소탐방7 LG생명과학연구원, LG의 자존심 '이땅은 너무 좁다'

  • 신범수 기자 shinbs@kma.org
  • 승인 2004.07.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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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전통 정원을 보면 많은 요소들이 곡선으로 이루어져 있는 반면, 유독 연못만은 직선(사각형)으로 만들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음양사상이 조경문화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중국이나 일본의 정원과 크게 다른 점이라고 할 수 있다.

방형(方形)연못, 곧 방지(方池)라고 불리우는 이 연못의 형태를 음양설로 설명하면, 네모난 형태의 연못은 땅(陰)을 상징하고, 방지원도(方池圓島-연못안에 만든 둥근 섬)는 하늘, 양(陽)을 상징한다. 즉 우리 조상들은 연못을 만들며 천원지방(天圓地方-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이라는 우주관을 그 안에 숨겨 놓았던 것이다.


어릴적 머릿속에 그려보던 '부잣집, 재벌집'의 이미지는 어떤가? 3층 양옥에 잔디가 푸른 큰 정원, 그리고 물고기가 노는 연못, 아이들이 잔디위에서 뛰어놀고 노부부는 파라솔 아래 의자에서 와인을 마시며 흐뭇하게 자손들을 바라보는 모습. 뭐 이런 것 아니었던가?(이 모습은 실제 모 제약회사 80년대 광고의 한 장면이다)

연구소 탐방 취재를 위해 까다로운 신원확인(대학과 전공까지 확인-화학이나 약학전공이면 입장불가인가?)을 거쳐, LG생명과학 연구원 정문을 드디어(?) 통과했을 때, 기자는 어린시절 TV에서 본 그 광고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LG생명과학이 LG화학과 함께 사용하는 대덕 LG화학 연구원은 크기도 크기려니와, 초현대식 건물에 잘 다듬어진 잔디, 그리고 커다란 연못이 어우러진 '리조트형 콘도미니엄'을 연상케 했다.


뻔하디 뻔한 국내 제약업계에서 LG와 CJ로 대표되는 두 대기업의 진출은 기대와 우려라는 두가지 반응을 가져왔다. 여기에 대해선 긴 설명이 필요없을 듯 하다. 우선 그 '우려'에 대해 LG생명과학 연구원 송지용 원장에게 물었다.

"우리는 제네릭이 없다. 기존 제약 시장에서 서로 경쟁하는 체제라면 문제가 되지만, 우리는 개발 제품만 했다. '자니딥'은 좀 다르다. 경쟁하는 품목이라고 볼 수 없다. 노바스크 제네릭 경쟁에 뛰어드는 것, 그런 것이 흔히 우려하는 경쟁이다. 대기업이 그런거 한다면 존재가치가 없다."
질문의 내용을 좀더 본질적으로 하기 위해 '왜 대기업이어야 했는가?'를 물었다.

"제약 산업은 중소기업 산업이 아니다. 예전엔 수입, 라이센싱 인으로 쉽게들 돈 벌었다. 이제는 아니다. 정상적인 제약 산업은 대기업으로도 부족하다. 물론 국내 기업들이 신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지만, 글쎄….물론 이것도 대기업이 신약개발의 촉진제가 됐기 때문이라고 본다. 신약개발, 본격적인 제약산업은 LG그룹이 다 뛰어들어도 부족하다."


LG가 1년에 쏟아붇는 R&D 비용은 600억원이 넘는다. 매출의 30%이상이다. 손익 따져, 감당할 수 있는 만큼 하는 그런 수준이 아니다. 언제까지 이럴 수 있을까? 역시 송지용 원장 말.

"LG전자의 연간 매출이 20조다. 화학만 9조다. 회장이 보면 의약품시장은 눈에도 안들어온다. 신약개발을 통해 1조 이상의 품목을 갖는 그런 것 아니면 의미가 없다. 그런 신약을 개발하기 전까지는 라이센싱 인과 팩티브의 해외 진출에 집중할 것이다. 1년반 정도면 유럽허가가 날 것으로 보인다.

그 외 B형간염 치료제, 서방형 인간 성장 호르몬 등이 상업화되면 이런 걱정은 상당부분 해결될 것으로 본다. 제약산업을 너무 경영마인드로만 보면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견뎌야 한다. 이에 대한 LG의 긍정적인 조직문화와 건실한 지원이 있기에 아직은 견딜만 하다."


기자는 지난 연구소 탐방을 통해 모 연구소의 연구방향에 대해 의문점을 제기한 일이 있었다. '자사의 강점을 키워 한 분야의 1인자가 되는 것이 이 제품 저 질병에 문어발 연구를 하는 것 보다 낫지 않냐'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송 원장은 다른 견해를 밝혔다.

"LG가 한 우물만을 파지 않는다고 비판받기도 한다.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말이다. 다국적제약사들도 모든 질환군을 커버한다. 컨설팅회사들도 길리아드(Gilead)는 항바이러스만 해야한다고 조언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어패가 있는 것이다. 신약은 배팅이다. 안나오면 끝이다. 수백개 프로젝트에서 한두개 성공하는 확률게임이다. 시장크기를 고려하고 우리가 할 수 있는 타겟을 정해 전략적 파트너를 찾아야 한다. 큰 제약사가 볼 때 관심 가질 만한 블록버스터 품목을 제시해야 한다. LG도 이런 상황일 뿐이다. 그래서 어떤 이미지를 갖고 '이런회사', '이거만 하는 회사'를 추구하기 힘든 것이다."


LG도 한국기업이지만, LG연구원에서는 타 제약사 연구소에서는 느껴지지 않는 그 무엇이 있었다. 송 원장에게서도 한국 제약산업에 대해서 제3자의 시각으로 내려다 보는 듯한 느낌이 느껴졌다. 그렇다면 송 원장이 진단하는 한국제약의 미래는 좀 더 객관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 수입 판매에 몰두하던 제약사들, 지금은 어렵게 됐다. 옛날엔 땅 짚고 헤엄치기였다. 현재 몇 개 회사가 끌고 가고 있고, 정부도 지원을 늘리고 있고, 시간이 지나면 외국과의 경쟁에서 어느 정도 가능은 하다고 본다. 어쨌든 약은 개발되는 것이고, 우리나라 경제도 이제는 머리로 만드는 분야로 결국은 가야하고…."

"우리는 우리 방향이 옳다고 본다. 돈 벌려고 피 터지게 경쟁해도 결국은 못 번다.(국내 제약시장에서 그렇다는 뜻인 듯) 우리에게 어울리지도 않는다."

사실 송 원장은 국내 제약산업의 미래에 대해 그리 정확한 진단을 내리지 않았다. 오히려 'LG는 국내 산업에 별 관심이 없다.해외 시장에 쏠려 있을 뿐이다'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그리고 그는 확신과 자신감에 넘쳐 있었다.


느닷없이 제약연구소 탐방기사 첫머리에 연못과 정원이야기를 꺼낸 것에 의아해 할 수도 있겠다. 천원지방이라는 성리학적 우주관이 숨겨져 있는 전통 정원. 도대체 그 의도는 무엇일까? 모 사이트의 '지식검색'을 이용했다.

'천원지방을 구현하는 직선 연못과 둥근 섬은 음양이 만나 만물을 생성하고 국가의 번영, 자손의 번창에 대한 우리 조상의 간절한 바람이다.'

직선의 연못이 음.둥근 섬이 양.그래서 음과 양의 조화를 통한 번영. 정말 멋지지 않은가? 제약사 연구소의 연못이니까 제약식으로 해석하면, 만물의 생성은 신약의 개발, 국가의 번영은 제약 강국화, 자손의 번창은 직원들의 번창? 아니면 후속제품의 번창? 아무튼 뭐든지 좋다. 어떤 식이든지 LG생명과학이 팩티브의 성공적인 해외진출과 또다른 세계적 신약의 개발을 반드시 해주길 바랄 뿐이다.

그리고 우리나라가 의약품 식민지가 아닌, 의약품 선진국으로 가는 물꼬를 LG가 터주길 진심으로 기대하고 바란다. 또한 이것은 국내 제약업계의 바람이기도 하고 의약계에 종사하는 모든 이들이 기대하는 일일 것이다.

송 원장과의 인터뷰를 마치고 멋진 건물을 한바퀴 돌아나와 호화로운 부잣집의 연못 앞에 다다랐다. 사진을 찍기 위해 연못을 한바퀴 돌아봤다. 그런데 한가지 특이한 점이 있었다. 멋지게 직선으로 뻗은 LG연구원의 우아한 연못. 거기에는 섬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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