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수<21세기심장클리닉원장>
맥주를 마시면 체중이 증가한다고 알려져 있다. 실제로 맥주의 칼로리가 체중을 늘게 하고 특히 복부 비만이 되게 하는 경향이 있다. 많은 경우에 맥주 이외에도 소주 같은 술을 즐기는 사람들에서도 과체중이나 비만이 있는 경우가 많다. 와인도 알코올이 있는 음료이므로 과연 체중이 늘까?
'날씬해지고 싶으면 맥주보다는 와인을 마셔라' 1996년 미국의 건강전문지 <헬스>에 소개된 내용이다. 노스캐롤라이나 대학 브루스 던컨 박사팀이 1만 2145명의 남녀 음주자를 조사한 결과 맥주를 마신 사람은 허리/힙 비율이 0.9보다 높았지만, 와인애호가는 0.9이하로 나왔다고 한다. 와인이 맥주보다는 복부비만을 일으키지 않는 것 같지만 생각보다 뛰어난 다이어트 효과는 아니다.
다만 와인은 과식증 특히 감정적인 긴장상태에서 오는 과식에 대해 이를 억제하는 효과가 큰 것으로 밝혀져 있고, 자신이 작성한 다이어트 식단을 실천하는 데 와인 한 잔이 양념으로 곁들여지면 그 식단을 실천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와인을 섭취하면 자연히 탄수화물 섭취량이 줄기 마련이며, 온 몸의 신진대사를 왕성하게 해 주기 때문에 섭취한 음식물의 산화가 촉진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최근 미국의 영양학 잡지에 나온 것을 보면, 콜로라도 주립대학의 코르데인 박사가 14명의 남자에게 6주 동안 2잔의 와인을 저녁식사 때 마시도록 하고 다시 6주 동안은 동일한 식단에 금주를 하게 했으나, 이 두기간 중 체중, 체지방 비율 등 비만에 관계되는 지수에 아무런 변화가 없었고, 따로 통제하지 않은 대상자에게 와인 2잔을 6주 동안 마시게 해도 체중 등 변화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면서 와인의 칼로리는 체중 증가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고 발표하였다. 이와 같이 와인은 다이어트 식품이라기보다는 체중의 변화에 영향을 주지 않는 식품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당뇨병이 있는 사람의 경우에는 어떤가? 당뇨병은 칼로리에 민감한 병이고 일반적으로 술은 금하도록 권유되고 있는 질환이기도 하다. 소주(알코올 함량 25%)의 경우 한잔 반(60g) 정도면 100칼로리에 해당된다. 당뇨병이 있는 사람이 알코올을 섭취하면 혈당이 높아지고 인슐린을 분비하는 췌장에 나쁜 영향을 주기 때문에 술은 금기시 된다.
최근 미국과 영국 연구진이 합동으로 조사한 바에 의하면 하루에 와인 2∼4잔을 마시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당뇨병에 대한 위험도가 40% 더 낮다는 보고가 있다. 인류는 아주 옛날 당뇨병이란 질병을 알 때부터 경험적으로 포도주를 사용했는데, 기록에 의하면 인슐린이 발견되기 1600년 전부터 와인을 당뇨병에 사용하였다고 한다. 이는 알코올이 당뇨병 환자에게 에너지원이 되기 때문인데, 포도주는 흡수가 느려서 혈중 알코올 농도가 낮은 상태에서도 서서히 에너지를 낼 수 있다. 처음에 와인을 투여하면 혈당치가 약간 상승하는데, 이는 알코올이 중추신경계에 작용하여 간의 글리코겐을 유리시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혈당치는 그렇게 높지 않고 바로 없어지면서 저혈당 상태가 4시간 이상 지속된다.
독일은 맥주의 나라고 알려져 있지만 품질 좋은 화이트 와인의 명산지로 유명하다. 독일은 100여년 전부터 당뇨병 환자를 위한 '초저칼로리 와인'을 생산하고 있다. 독일 정부는 DLG라는 단체의 인증을 받은 초저칼로리 와인에 대해 '당뇨병 환자용 와인'으로 판매할 수 있도록 규정을 정해 허용하고 있다. DLG란 'Deutsch Landwirtsahaft Gesellschaft'의 약자로 농업 및 임업가공 제품에 대한 검사 및 소비자 보호 역할을 수행하는 정부 공인 단체이다. 이 단체가 규정한 바에 따르면 당뇨병 환자용 와인은 우선 총칼로리가 700 이하여야 한다. 이와 함께 알코올 및 당분 함량이 각각 12% 이하, 1 리터 당 4g 이하여야 하며, 잡균의 생육 억제를 위해 와인 제조에 사용하는 아황산가스 함량이 150ppm을 초과하지 않아야 한다.
이 와인은 아무 곳에서나 생산되는 것은 아니다. 북위 50도 근처에서 포도가 수확되는 독일 모젤 지방에서만 소량으로 만들어진다. 독일 의사들은 일본과 같이 당뇨병 환자에게 '알코올은 완전금지'라고 말하지 않는다. 독일의 당뇨병 환자들은 의사와 상담해서 1일 알코올 섭취량을 정해 와인을 마신다.
미국에서도 최근 달지 않은 와인을 증상이 가벼운 당뇨병 환자에게 쓰기 시작하여 만족스런 결과를 얻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한 병원에서 실시된 임상시험에서는 당뇨병 환자가 하루에 와인 한 병을 다 마셨는데도 혈액 내 혈당치는 거의 올라가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당뇨병이 있는 경우 일반적인 술은 마시지 않는 편이 좋지만 와인의 경우는 적은 양에, 칼로리가 적은 것으로 즐긴다면 정신적으로도 유익하고 투병생활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