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명세<연세의대 교수>
최근에 개봉했던 영화 '사이드 웨이(side ways)'는 사랑 이야기에 와인에 대한 지식과 열정을 담고 있고 그 때문에 미국 사회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미국에서는 이 영화 개봉 이후 '사이드 웨이 증후군'이라는 용어가 생길 정도로 피노느와종 와인이 훨씬 더 관심의 대상이 되고 캘리포니아 산타바바라 포도원 관광이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의 흥행은 대단치 않았으나 호사가들 사이에서는 꽤나 화제로 떠올랐고 이어서 와인영화라고 할 수 있는 노시터감독의 '몬도비노(Mondovino)' 다큐멘터리가 나와 와인 열기를 진지하게 확산시키고 있다.
한국의 다큐멘터리 감독은 '청계천'의 신완수와 '잘먹고 잘사는 법', '새집증후군'의 박정훈 등의 성과가 높듯이 미국의 다큐멘터리는 '켄 번즈'와 '릭 번즈' 형제가 공영방송인 PBS TV 망을 통해 최고의 명성을 구가하고 있다. 그들의 작품은 하나의 주제를 완벽하게 소화하고 있어 성과가 높은데 '뉴욕', '남북전쟁', '야구', '재즈', '국회' 등은 TV 방영 후 오히려 관심이 높아져 소장가들을 위한 DVD로 출시되어 대단한 인기를 모으고 있다. 필자도 사서 소장하고 있을 정도이다.
언젠가 와인모임에서 몬다비에 대한 와인 다큐멘터리가 나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번즈 형제 중 한사람이 만들었겠구나'라는 추측을 했다. 그리고 사이버상에서 검색을 하고 영화를 본 후에야 이 영화가 2004년 깐느영화제 공식 경쟁부문 초청작이었음을 알게됐다. 개막 1시간 전에 세 시간 가까운 러닝타임으로 편집되어 출품되었고 135분으로 재편집된 작품이 토론토영화제에서 상영되었다는 것을 알고 시사회를 찾았다. 감독인 조나단 로시터는 1961년생으로 미국인 신문기자의 아들로 태어나 프랑스·영국·이탈리아·그리스·인도 등에서 자란 국제시민이다. 그는 프랑스의 보자르 예술학교와 샌프란시스코 예술원에서 회화를 공부하고 감독이 되어 '일요일', '징후와 불안' 등 극영화를 만들어 선댄스 영화제와 깐느 영화제에서 주목을 받았다. 그는 영화감독으로 그리고 소믈리에 자격을 가진 와인 애호가며 전문가로서 이 영화를 통해 와인에 대한 엄청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이 영화에서 그는 전 세계 와인전문가를 소개하는 듯 시작하여 프랑스의 한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마을 사람들과 미국의 로버트 몬다비의 전쟁을 부각한다. 와인의 세계화 현상과 그에 대한 거부감, 최고 품질에의 도전이 적나라하게 공개된다. 현재 최고의 와인권력자인 미국의 로버트 파커 그리고 프랑스의 미쉘 롤랑, 몬다비 가족들이 대표하는 미국의 와인 문화와 에메 기베, 위베르 드 몽띠유의 보수적 프랑스 와인문화의 관점을 상호 대비하여 흥미를 배가시켜 준다. 노시터는 공개적으로 가치를 한쪽으로 부여하는 대신 가치중립을 유지하면서도 고유의 개성을 파괴하고 쉽게 팔리는 맛의 획일성을 추구하는 와인 세계화를 비판했다. 특히 자신의 발언을 통해 직접 성토하기 보다는 자신이 비판하고자 하는 대상으로 하여금 얘기하게 하는 방식을 통해 영화의 흥미를 더해주고 있다. 조나단 노시터는 세 개의 대륙과 세계화 물결을 배경으로 한 와인 무역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여러 형태로 완성했다. 와인 전문가이기도 한 노시터는 외부로부터 차단된 와인 세계의 문을 열고, 캘리포니아와 이탈리아의 와이너리를 방문하며 영향력 있는 비평가들과 와인 상인 등 와인 업계의 사람들을 직접 만난다. 영화는 세 대륙을 횡단하며 나파 밸리의 가족사, 두 피렌체 귀족 왕조의 경쟁, 조그만 땅을 놓고 벌이는 브르곤뉴 지방 가족의 3대에 걸친 싸움 등을 취재했다. 그는 와인은 오랫 동안 서구문명의 것이었고 포도농민과 산업 자본가들 사이의 와인전쟁을 통해 현재에 도달하는 과정을 담담하지만 생생하게 보여준다. 이 다큐멘터리의 진정한 미덕은 침묵을 깨는 조나단 노시터의 재능에 있다. 영화 '몬도비노'는 와인과 함께 해온 서양문명의 오늘을 비추고 있는 셈이기도 하다.
2000년 12월 15일에 발행한 와인스펙테에터에는 와인 왕조라 할 수 있는 로쉴드 가계의 발자취를 담고 있다. 즉 1744년 프랑크푸르트에서 태어나 최고의 와인 명문가를 이룬 로쉴드가의 선조인 메이어 암쉘 로쉴드(Mayer Amschel Rothchild)로부터 셋째 아들인 나탄 로쉴드(Nathan Rothchild)와 다섯째 아들인 제임스 로쉴드(James Rothchild)가 각각 보르도 특급 와인인 무똥로쉴드와 라피트로쉴드를 만들어가는 이야기를 전설로서 형상화했다. 이 다큐멘터리에서는 여기에 더해 프랑스의 무똥로쉴드와 미국의 몬다비가 협력하여 1980년부터 미국의 특급 와인인 오퍼스 원(opus one)을 만들어가는 이야기와 와인의 세계화의 폐혜를 브르곤뉴와 대비하여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이탈리아의 현지를 찾아가 프레스코발디를 비춰주고 전 세계의 와인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주고 있다. 135분 분량의 다큐멘터리 영화로 관객이 소화해야 할 정보가 너무 많아 부담스럽긴 하지만 엄청난 정보량을 속도감 넘치게 진행하고 있는 노시터의 역량을 보면 10부작 10시간 시리즈를 기다리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세계의 유명 와이너리가 앉은 자리에서 최고 전문가들의 설명을 들으면서 와인 문화를 익혀가게 되면 혹시 기회가 생겨 와이너리를 가보게 되었을 때 좀 더 생생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와인 공부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몇 번은 반복해서 보고 싶을 것 같아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