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는 외롭다
한때 의사가 강자(强者) 또는 질투의 대상으로 여겨졌던 시절이 있었고, 지금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와 유사한 생각을 갖고 있다. 때로는 의사를 가리켜 좋게 말하다가도 자신들의 이해관계와 관련이 되면 사회성이 떨어지고 악덕한 집단의 일원으로 몰아붙이기도 한다.
잠시 필자의 과거경험을 말하자면, 정도에 지나치게 이기적 행동을 하거나 자신이 잘 모르는 내용에 대해서도 다 아는 듯 자신있게 주장하는 의료인들을 만나면서 당혹스러울 때가 몇 번 있었다. 또 의료 이외의 분야에는 무관심한 경우가 많았고 대화하는 방식,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 사회에 대한 시각 등에서는 사회의 엘리트집단으로 보는 시각과는 거리감을 느낄 때도 많았다.
그러나 대학병원을 비롯한 다양한 형태의 병원을 컨설팅하면서 의료와 의료인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지게 되었다. 많은 것을 포기하거나 유보해둔 채 공부에만 전념했던 고3의 생활이, 의과대학에 진학한 후 개원할 때까지 10여년이 지속된다. 강도의 차이는 있지만 수시로 옆 동료와 경쟁해야 하는 시간들의 연속이다. 다른 분야의 책을 읽거나 관심을 가지거나 색다른 경험을 하려는 노력은 '사치'로 치부되기도 한다. 물론 과연 이런 노력을 하기 어려울 정도로 의과대학 교육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서는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모 대학의 모 과에 소속되고 나면 마치 그 곳의 '귀신'이 된 것 같은 삶이 이어진다. 같은 출신의 선후배가 만남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개원을 하면 역시 개원한 동창들끼리의 만남이 늘어난다. 진료가 끝나면, 역시 그들과 함께 술자리를 하며 지친 심신을 달랜다.
의사사회를 넘어서자
물론 서로에게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풀리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풀리지 않는 문제들이 너무도 많다. 오히려 때때로 상식적인 해법이 독약이 되는 경우가 있다.
병원을 찾은 환자들이 대기실 의자에 앉아 서로의 경험이나 정보를 공유한다. 입장이 똑 같기 때문에 서로 공감하기 쉬운 정황이다. 이때는 병원에 다닌 경험이 많고, 말 잘하는 사람이 어렵게 설명하는 의사보다 어쩌면 더 큰 신뢰를 줄 수도 있다. 하지만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이 없는 환자가 자신의 질병을 고치기 위해서 많은 병원을 섭렵했다고 해서 그가 의사 역할을 하는 것은 위험천만한 짓이다. 마찬가지로 병원경영을 하면서 생기는 문제에 대해서 동료의사들에게 물어볼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참고 사항일 뿐이고 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전문가'를 찾아야 한다.
경영은 사회와 동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다양한 분야의 정보를 늘 접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가급적 동료의사와의 술자리는 줄이는 것이 좋다. 대신 그 시간을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을 만나는 데 할애하는 것이 '경영'은 물론이고 '삶의 질'을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지금 당장 쉽게 전화할 수 있는 다른 분야의 훌륭한 전문가가 떠오르지 않는다면, 그동안 건강한 네트워크를 만드는 데 소홀했음을 의미한다. 병원경영은 원장의 삶과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다. 혼자 하는 병원경영은 외로울 뿐 아니라 건강하지도 않다. 오늘부터는 밥이나 술 먹는 시간도 지혜롭게 활용하도록 해야 한다. (엘리오앤 컴퍼니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