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훈의 "여기는 NIH입니다"] <6>

[이시훈의 "여기는 NIH입니다"]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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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6.12.04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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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지사지(易地思之)

▲ 이시훈(내과전문의, NIH visiting fellow)

모든 의과대학생들은 한번쯤은 인간의 내면 세계를 탐구하는 멋진 정신과 의사를 꿈꾸게 된다. 영화에서 보는 것 같이 환자를 카우치에 눕히고, 자유연상과 정신 분석을 통해 정신 세계라는 망망대해를 항해하면서 그 좌표를 정하고, 정신의 내면과 정신 병리를 탐구하는 프로이트, 융과 같은 천재 정신의학자들에게 존경과 경이로움을 품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막상 임상 실습을 통해 정신병동에 가보게 되면 치료의 많은 부분을 투약에 의존하는 모습들이 다른 진료과와 크게 다름없음에 조금은 실망하기도 한다.

신경전달물질 등 정신 병리와 관계된 많은 생물학적인 기전이 밝혀지고, 효과적인 정신병 약제들이 속속 개발되어 예전만큼 심리요법·상담요법·정신분석적인 치료법들이 각광을 받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여전히 '사이코드라마'는 정신병동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 중 하나이고 인격장애, 신경병증 등의 정신질환에 많은 효과가 있는 치료법이다. 이 '사이코드라마'의 핵심은 '역할바꾸기(role change)'와 '공감(sympathy)'이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데 있어서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데, 역할바꾸기와 공감만큼 더 필요한 덕목이 있을까?

레지던트 때의 일이다. 출근 길에 지하철역에서 넘어져 어깨가 탈골되는 사고를 당한 일이 있다. 근무하던 대학 병원의 응급실로 실려 갔다. 마침 한 선배가 응급의학과 당직으로 있었는데, 너무나 불친절하고 성의없는 태도에 분노가 치밀었다. 큰 통증으로 너무나 고통스러워 하는데, 엑스레이 촬영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면서 호통을 치는 것이다.

진찰 결과 외상성 어깨탈구란 진단을 받았고, 습관성 탈구를 예방하기 위해 수술을 받게 되었다. 큰 수술이건 작은 수술이건 수술대에 오르는 환자의 마음은 같다고 생각된다. 초조하고 걱정되고, 무서운 그 복잡한 감정을 겪어 보진 않은 사람을 잘 알 수가 없다. 수술 전 자세하고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시던 정형외과 교수님과 수술 후 매일 아침에 와서 소독을 해주고, 상처를 점검해가던 한참 후배인 인턴과 주치의가 그렇게도 고맙고, 크게 보일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 당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이 기억난다. 환자가 되었던 경험들이 진료에 임하는 나의 태도를 바꾸었으리라 생각된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모든 것이 무뎌지는지, 그 때의 일도 옛 기억으로 희미해질 무렵, 최근 또 한가지의 일이 일어났다. NIH에서의 연구생활이 아무래도 스트레스였던지, 아니면 환경이 달라지고 물이 달라져서인지 머리가 많이 빠지는 것이었다. 환절기에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긴 하지만 여간 신경쓰이는 일이 아니었다. 의욕이 많이 떨어지고, 생활의 즐거움이 없어지는 등 그대로 방치하다간 우울증에 빠질 수도 있겠다는 우려가 드는 것이었다. 문득 생명에 전혀 지장이 없는 탈모 증상이 이렇게 큰 상실감과 마음의 고통이 될 수 있는데, 실제로 사지 절단이나 중병으로 큰 아픔을 받고 있는 환자들의 마음의 상처가 얼마나 클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의사로서 다시 한번 환자의 마음을 갖게 되는 것은 차라리 감사할 일이었다. 다행히 큰 병은 아니고, 일시적인 증상이었던 것도 행운이었다. 그리고 아무리 작은 병이라도 환자 자신에게는 큰 마음의 짐이 될 수 있고, 그것을 찾아서 깨끗이 낫고, 마음의 평안을 찾아 주는 것도 의사의 본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은 큰 가르침이라고 생각한다.

예전에 신문보도에 수의를 입어보는 검사들의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모든 사람들에게 있어서, 특히 항상 환자들을 마주대해야 하는 의사들에게 상대방의 심정을 한번 더 고려해보는 '역지사지'의 생활태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한번 상기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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