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구박사의 클래식음악산책]<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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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7.06.07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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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헤미아(체코)의 애국 음악인들(2)

▲ 이종구(이종구 심장클리닉원장, 예술의 전당 후원회장)

스메타나로부터 바톤을 승계한 작곡가는 안톤 드보르작(Dvorak, 1841-1904)인데 그도 체코의 테마를 많이 인용하여 세계적 작곡가가 되었으며 또한 체코인들에게 긍지와 애국심을 심어준 사람이라 할 수 있다. 1969년 미국의 암스트롱이 달에 착륙할 때 그는 드보르작의 심포니 9번을 듣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의 음악은 최초로 우주에 전달된 것이다.

드보르작은 당시 오스트리아 제국에 속해있던 프라하 근처의 시골에서 태어났으며 아버지는 고깃간과 여관을 운영하면서 현악기의 한 종류인 지터(Zither) 연주자로 살고 있었다.

드보르작은 9살 때 프라하의 유일한 음악(오르간)학교에 입학하였는데 교육은 독일어로 이루어지고 있었으며 드보르작은 독일어가 서툴러서 고생하였다. 이 사항은 내가 일제시대에 초등학교를 다니면서 일본말을 배워야 했던 때를 연상케 한다. 1866년 그는 바이올린과 비올라를 잘하게 되었으며 스메타나가 지휘하는 보헤미아 오케스트라의 단원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피아노를 가르쳐야 했고 또 작곡을 하기 위해 1871년에 그 오케스트라를 떠났다.

드보르작은 한 제자를 사랑하게 되었으나 그녀가 좀 더 사회적 지위가 높은 백작과 결혼을 하게 되자 그 슬픔을 달래기 위해 가곡시 Cpress Trees를 작곡하였고 1873년 그는 첫 애인의 동생과 결혼하여 여생을 행복하게 살았다.

1877년 그는 프라하의 한 교회의 오르가니스트가 되었으며 이때 그의 작곡은 주목을 받기 시작하였으며 요하네스 브람스(Brahms)의 추천으로 비엔나의 짐록출판사와 계약을 맺게 됐다. 브람스의 의뢰로 작곡한 보헤미아의 민속 음을 주제로 한 슬라브 무곡(Slavonic Dances)은 큰 성공을 이루었다.

드보르작의 명성은 오스트리아나 독일에서보다 영국에서 먼저 퍼지기 시작했다. 독일의 음악계가 보헤미아 사람인 드보르작을 차별대우 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를 본 마리아의 고통을 표현한 Stabat Mater(1880)는 영국에서 대성공을 이루었으며 그는 영국에서 아홉 번이나 초대받아 자신의 작곡을 지휘하면서 큰 환영을 받았다. 그의 심포니 7번도 영국에서 위탁받아 초연하였으며 1891년에 그는 캠브리지 대학으로부터 명예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 수여식에서 캠브리지의 총장은 라틴어로 드보르작을 소개하였는데 라틴어를 배우지 못한 시골출신의 드보르작은 한 마디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1892년 그는 뉴욕의 음악원장으로 취임하여 1895년까지 뉴욕에 살면서 미국의 흑인작곡가들을 만나고 그 영향을 받아 심포니 9번(신세계로부터)을 작곡하였다.

이 곡은 1893년에 뉴욕의 카네기홀에서 초연되었다. 미국에 있는 동안 그는 현악 4중주(in F, American) in E flat와 유명한 첼로 콘체르토(B minor)도 작곡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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