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구박사의 클래식음악산책]<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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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7.11.26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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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린스키(키로프)극장의 과거와 현재 <2부>

▲ 이종구(이종구 심장클리닉원장·예술의 전당 후원회장)

마린스키발레 출신의 아그리파 바가노바(Vaganova, 1879-1951)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발레교사이며 1934년에 출판된 그의 책 <고전발레의 기본>은 전 세계적으로 표준교과서가 되었다. 마린스키 극장의 뛰어난 발레리나였던 그는 러시아 혁명이 일어난 1917년에 무대생활을 마치고 황제발레학교를 이어받아 마린스키 발레에 부속된 무용학교를 살리면서 루돌프 누레예프 같은 뛰어난 무용가들을 양성했으며 이 학교의 졸업생들은 마린스키극장을 비롯해 전 세계에서 활동하고 있다.   

1917년 볼셰비키 혁명은 예술계에도 엄청난 변화를 불러왔다.

그리하여 마린스키 극장은 키로프로 이름을 바꾸게 된다. 키로프는 혁명가이면서 스탈린의 동지이자 경쟁자이기도 했다. 그는 레닌그라드의 공산당 서기가 되었으며 그 당시 공산당 내부에서는 스탈린보다도 인기가 더 좋았다고 한다. 이것을 못마땅하게 여긴 스탈린은 키로프를 가까이에서 감시하기 위해 모스크바의 공산당서기로 올 것을 권하지만 키로프는 이를 거절했고 얼마 후 1934년에 암살을 당하지만 그 배후는 알려지지 않았으며 스탈린의 지시로 암살되었다는 설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 후 그는 대대적인 숙청으로 정적과 경쟁자들을 모두 제거하고 마린스키 극장을 키로프로 개명했다. 그리하여 황제발레단으로 출발한 마린스키발레는 키로프가 되고 1991년 구소련의 붕괴와 더불어 다시 마린스키의 이름을 되찾게 되었다. 그러나 전통을 중요시하는 러시아인들은 오늘도 이 세가지 이름을 모두 사용하고 있다.

러시아에 붉은 혁명이 성공하자 마린스키 출신의 많은 무용인들이 서방국으로 떠나게 된다. 무용가 출신은 아니지만 마린스키의 예술 감독을 지낸 디아길레프(Diaghilev)는 파리에 정착하면서 러시아 발레단(Ballet Russes)을 만들고 마린스키 출신의 무용가들을 파리로 초대한다. 그들 중에는 포킨·파블로바·니진스키(Nijinsky) 같은 전설적 무용인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이들 중 또 하나의 세계적 안무가는 게오르그 밸런친(Balanchine)이다. 그는 1904년 러시아에서 태어나 황제 발레학교에서 공부하였으나 마린스키에서 무용을 하지는 않았다.

1924년 그가 서유럽에서 공연 중 다그리에프가 그를 설득하여 망명을 하게 되고 발레루스에서 활약하다 1933년에 미국으로 건너가 아메리칸 발레와 뉴욕시발레를 창설하고 미국발레의 대부가 되었다.

또 한명의 마린스키발레 출신인 천재적 루돌프 누레예프는 1961년 KGB요원들을 따돌리고 서방으로 망명하고 영국 로얄 발레의 간판 발레리나와 환상의 쌍을 이루면서 영국의 로얄 발레를 세계의 정상에 올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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