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기 직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폐지 또는 완화와 민영보험 활성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발표한 뒤 한동안 이를 두고 인터넷상에서 큰 논란이 벌어졌다. 심지어는 공기업의 민영화에 발맞춰 건강보험도 민영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왔다. 이에 김성이 보건복지가족부 장관이나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나서 건강보험 민영화는 검토한 적도 없고, 당연지정제는 현행대로 유지하는 것이 이명박 정부의 정책 방향이라고 발표하기까지 했다.
이런 발표를 하면서도 제주도에 국내 병원도 영리병원을 세울 수 있도록 허용하는 등 '의료 선진화'라는 이름으로 여전히 의료 상업화를 추진하고 있지만 아무튼 당연지정제 폐지 철회로 일단 국민의 '환호'를 받았다. 국민에게 이로운 정책을 내놓고 이를 강력하게 추진하겠다고 발표해서 칭찬과 환호를 받은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추진하겠다는 정책을 그만 둔다고 해서 환호를 받은 것이다. 보건복지 분야에서는 '아무 것도 안 한다'고 발표해야 칭찬받는다는 비아냥까지 나온다.
이쯤 되면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고유가 등으로 제대로 달성할 것이 거의 불가능해 보이는 경제 성장 분야는 논외로 하고 보건복지 분야에서는 이명박 정부가 정말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일까? 국민은 현행 보건의료 체제에서 진료비 걱정 없이 병원 등에서 제대로 치료받고 있는 것일까?
여러 자료를 보면 '그렇지 않다'가 답이다. 먼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07년 보건의료통계를 보면 2005년 기준 우리나라에서 의료비에 들어가는 비용 가운데 38% 가량을 환자들이 내고 있다. 경제개발협력기구 회원국들의 평균인 19.5%와 견주면 거의 2배 가량이 된다. 이 때문에 중ㆍ저소득층은 중병이라도 걸리면 살던 집을 내놓아야 하는 등 의료비 '난'을 겪어야 한다.
물론 의료진이 판단하기에 꼭 필요한 치료라 할지라도 의료비 걱정에 못 받는 사람들도 많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우리나라 통계청 자료를 분석해 2007년 발표한 연구 결과를 보면 경제적 부담 때문에 필요한 치료를 포기한 비율이 하위 10% 소득계층에서는 무려 26%로 나타났다. 반면 상위 10%는 이 비율이 1.3%로 조사돼 대조를 이뤘다.
또 다른 자료도 의료 소외계층의 어려운 실상을 잘 드러낸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최근 자료를 보면 지난 4월 기준 건강보험 가입자 가운데 지역 가입자의 4명 당 1명 정도가 보험료를 내지 못해 체납하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이 가운데에는 소득수준이 높아도 고의로 내지 않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200만 세대가 넘는 가정이 건강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상황은 전국민 건강보험 시대라는 말을 부끄럽게 한다.
신의료기술이나 신약 등은 계속 나오므로 건강보험의 적용 범위를 현재대로 유지하면 건강보험의 보장성은 저절로 떨어진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지금처럼 정부가 의료 상업화만 앞세우고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등을 방치한다면 지금보다 의료 소외계층은 더 늘어갈 것이다. 아파도 또는 중병에 걸려 죽어가도 진료비 걱정으로 치료를 받을 수 없는 사람들이 늘어가는 사회를 두고 바람직하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진정 '의료 민영화'를 추진한다는 비판에서 벗어나려면 의료 선진화(상업화)보다 더 시급한 정책인 국민들의 진료비 걱정을 덜어주는 방안을 하루 빨리 내놔야 한다. himtra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