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화(서울대병원 강남센터·영상의학과)
지난 2006년 예술의 전당 미술관에서 열린 카프(KCAF)전에 의사 출신 화가가 공식 초대받아 화제가 됐다. 카프전은 전문 직업화가도 좀처럼 명함을 내밀기 어려운 수준 높은 전시회다. 강진화 서울의대 교수(서울대병원 강남센터·영상의학과)는 재작년 호주 시드니에서 열린 아트페어와 지난해 미국 라스베가스의 아트페어에도 참여했다. 2002년 첫 개인 전시회를 연 이래 올해까지 네번의 개인전을 선보였다.
정식으로 미술 교육을 받은 적이 없는 강 교수가 우연히 화가로서의 재능에 눈뜬 건 전공의 시절.
"1988년 전공의 2년차 때 제주의료원에 파견을 나갔는데, 병동 하나씩을 숙소로 사용했어요. 그런데 다른 전공의들은 대부분 결혼한 상태여서 가족들과 제주도 이곳저곳을 놀러다니더라구요. 혼자 어디 낄 데도 없고 그렇다고 공부를 할 수도 없고…. 그래서 어슬렁어슬렁 의료원 앞 문구점에 갔더니 유화물감이 있길래 사서 해본 게 여기까지 왔네요."
1998년 제4회 대한민국 국민미술대전과 1999년 제3회 서울미술전람회에 입선하면서 화가로서의 본격적인 길목에 접어들었다.
"첫 개인전 할 때 프로페셔널한 직업화가들이 보면 비웃지 않을까 고민이 많았어요.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긴 하죠. 화가의 세계는 치열한 경쟁이거든요."
강 교수는 "정통교육을 받지 않고 누군가 끌어주는 사람이 없는 상태에서 여기까지 온 것만도 기적 같고 놀라운 일"이라며 겸손해했다.
그의 미술분야는 풍경이나 인물에서부터 초현실주의적인 작품까지 광범위하다. 최근에는 일정한 주제를 정해 개인전을 열고 있는데, 지난해 제3회 개인전 때는 주로 줄기세포를 표현했다. 올해 제4회 개인전에서는 핸드폰과 컴퓨터 등 첨단기기의 소음과 자연의 내적 고요함의 대비를 묘사해 좋은 평가를 받았다.
"딱히 작품을 그리는 시간이 정해져 있지는 않아요. 시간 날 때마다 그리죠. 평일 밤이나 주말, 아침 출근하기 전에도 짬짬이 그립니다."
강 교수가 영상의학과 전문의라는 점도 왠지 미술 친화적인 전공과목이라는 느낌이 든다. "무의식적으로 연관이 있을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전공을 선택한 후 레지던트를 하면서 미술에 입문한 것이니까 반드시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죠."
의대 교수이자 화가, 눈에 띨 만큼 고운 외모를 지닌 그녀가 싱글인 이유가 궁금했다. "직장 생활과 그림, 두 가지를 하려다 보니 그쪽에 신경을 못 썼네요. 결혼을 했다면 혼자 그림 그릴 시간은 없었겠죠. 독신주의자는 정말 아닌데…. 남자복은 없고 일복만 있네요."
그림은 의사로서의 바쁜 생활에 지친 영혼과 감성을 순화해준다고 했다. 마침 인터뷰 직전 전공의로 보이는 젊은 여선생이 여름휴가에 대해 쭈뼛쭈뼛 말을 꺼내는데, '날짜 채워서 다녀오라'는 강 교수의 태도는 엄한 교수님보다는 학교 선배언니처럼 다정했다.
강 교수의 작품은 미술시장에서 인기가 높다. 초창기 작품은 첫 전시회를 열기도 전에 대부분 팔렸다. "그린 지 얼마 안 된 작품이 팔리면 가슴이 아플 때도 있어요. 다시 그린다고 해도 물감 농도 등이 달라서 꼭 같을 수는 없거든요." 그림은 강 교수의 홈페이지(http://myhome.medigate.net/~peacesta)에서도 감상할 수 있다.
미술에 관심 있는 동료 의사들에게 조언을 부탁했다.
"의사 중에도 미술 하시는 분들이 꽤 있습니다. 원래 미대에 가고 싶었던 분도 있고, 사사받은 분도 있죠. 주말에 같이 캔버스 싸들고 야외에 나가는 분들도 있구요. 그룹에 참여하면 다른 사람의 평가를 받아볼 수 있는 장점이 있고, 저처럼 혼자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면 유니크한 특성을 살릴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그림 그리는 일이 재밌고 즐거워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