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과 변비

감과 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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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9.01.23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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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신(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 정보통신이사, 전남 장흥군 유치면보건지소)

오랜만에 서울에 눈이 왔는지 진료실 컴퓨터에서 흘러나오는 라디오 교통정보에서 눈길 사고 소식과 교통 정체소식으로 아침부터 떠들썩하다.

내가 근무하고 있는 전라남도 산골마을에는 밟으면 발목까지 푹 들어갈 정도의 눈이 곳곳에 쌓여 있는데 눈 몇 센티미터 쌓인 것으로 호들갑스러운걸 보면 역시 우리나라의 중심은 서울인가보다.

며칠 전 아침부터 눈이 소복소복 내리던 날, 옆 마을에 사시는 할머니 환자분이 직원과 같이 먹으라고 어른 주먹만한 홍시를 9개나 가져오셨다.

지난해 11월말까지만 하더라도 까치밥이라며 몇 개씩 빨갛게 매달려 있던 홍시감도 몇 번의 눈과 추위가 지나간 지금은 정말로 까치가 다 먹었는지 앙상한 감나무에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데 오랜만에 곱게 익은 홍시를 보니 반갑기까지 했다.

보건지소 주변에는 유난히 감나무가 많다. 집집마다 마당에 한 두 그루 심어져있는 것은 기본이고 바로 뒷산 산등성이에도 감나무가 빼곡하니 심어져 있다.

심지어는 보건지소 숙소 앞에도 단감나무가 심어져 있으니 가을이면 온 동네가 빨간 감으로 돌돌 둘러싸여진다. 감이 다른 지역보다 많아서 그런지 가을에는 보건지소에 오시는 할머니들 손에 든 검정비닐봉지마다 맛있게 익어서 건들면 톡 터질 것 같은 홍시들로 가득했다.

"어머님(사실 일흔이 훌쩍 넘은 어르신들도 할머니라는 말을 들으면 섭섭해 하신다는 여직원의 충고를 받아들여 될 수 있으면 할머니라는 말을 안 하려고 노력중이다), 아껴두었다가 맛있게 드시지 왜 가지고 오셨어요?" 하면 어머님들은 "난 많이 묵었어, 또 너무 많이 먹으면 변비 걸린 당께" 하시며 감을 봉지에서 몇 개씩 꺼내어 책상에 놓고 가신다.

이렇게 놓고 간 홍시들을 여직원과 같이 근무하는 한의사선생 나누어 주고 남은 것들을 진료실 책장에 줄줄이 진열해 놓았더니 그것을 본 마을 어르신들이 "아휴, 우리 집에도 감 따놓은 것 많은디…,

다음에 올 때 가져다 줘야 것네" 하시며 가져다 놓은 감들이 책장을 가득 채웠었다. 이후 날마다 잘 익은 것을 골라서 아침 대용으로 한개, 낮에 입이 심심할 때 한개, 밤에 출출할 때 한개씩 먹었더니 할머니들 말씀대로 정말 나도 화장실 가기가 조금은 힘들어졌다.

예전 전공의 시절 가끔 수술 후 퇴원하거나 건강한 아기 잘 낳고 퇴원한다며 의국에 보내준 피자는 겹치는 턱살과 두툼한 뱃살을 초래했는데 할머니들의 정성이 담긴 촌지는 엉뚱하게도 변비라는 부작용을 낳았다.

하지만 기분 나쁘지 않는 부작용이다. 일년 동안 올 때마다 감·김장김치·요구르트 등을 들고 오셨던 마을 어르신들에게 지면을 통해 말씀드리고 싶다.

"할머니! 저는 인제 3개월만 있으면 정들었던 이 마을을 떠납니다. 지난 가을부터 가져다주신 감 맛있게 잘 먹었고요, 올해 새로 오시는 선생님도 변비 걸리도록 감 많이 챙겨주세요. 그리고 아프시지 말고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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