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례와 요술사과

주례와 요술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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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9.11.27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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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건(인하의대 교수 인하대병원 성형외과)

가까이 지내던 성형외과 원장님 딸의 결혼식에 주례를 맡아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평소에 주례란 결혼식을 경건하게 이끌어가는 성스러운 위치라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었으나, 진부한 이야기를 반복하지는 않으려고 고민하던 중, 탈무드에 나오는 '요술사과'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러나 옛날이야기 하듯 편안하게 하객을 이끌어갈 말재주도 없고 요즈음은 멀티미디어 세상이라 결혼식마다 대형스크린에 신랑신부의 모습을 비추어주는 일이 흔하기에, 나도 슬라이드를 만들어 주례사를 준비했다.

왕에게 외동딸이 있었다. 그런데 그 공주가 병에 걸려 백약이 무효였다. 왕은 딸의 병을 고쳐 주는 사람에게 공주를 시집보내겠다고 포고했다. 먼 고을에 삼형제가 살고 있었는데. 그 중 큰아들이 망원경으로 그 포고문을 보게 됐다.

둘째아들은 요술담요를, 셋째아들은 어떤 병이든 낫게 하는 요술사과를 가지고 있었다.  동화책 속 그림의 공주얼굴에 신부 얼굴을 넣고, 큰아들과 둘째아들의 얼굴에는 장동건과 정우성을 오려 넣었다. 물론 셋째아들 얼굴에는 신랑 얼굴을 넣었다. 

세 사람은 요술담요를 타고 망원경으로 왕궁을 찾아가서 공주에게 요술사과를 먹였더니 그 병이 나았다.

주례사 도중에 퀴즈를 냈다.
"삼형제 중 누가 공주와 결혼해야 합니까?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객 하나가 손을 번쩍 들었다.

"셋째입니다. 큰아들과 둘째는 여전히 망원경과 담요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셋째가 가졌던 사과는 공주가 먹어서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네, 정답입니다. 요술 사과를 가졌던 셋째는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공주를 위해 주었습니다. 참된 사랑은 자기희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저의 주례사입니다."

기념촬영을 마치고 식사가 마련되어 있는 자리로 돌아와 아내의 옆얼굴을 보았다. 눈가 주름이 눈에 띄었다. 우리가 결혼한 지 어느 덧 이십 이 년이 넘었다. 주례사에 인용한 요술사과 이야기처럼 나를 희생하면서 결혼생활을 했던가 생각해 보았다.

일년차 전공의 때 결혼해서 사년간 수련 받고, 그 동안 아이 셋을 낳아 키우며, 대학에 몸담아 업적을 쌓다 보니 아내의 요술사과만 먹어치우며 발전해 이렇게 주례도 서는 위치에 올랐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식장을 나서려니 양가 어른들께서 주례가 독특하고 인상적이었다고 감사의 뜻을 표하셨다. 그냥 인사치레려니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동안 학회발표 준비하듯 슬라이드를 만들면서 행여 진부하지 않으려는 노력이, 그들의 일생에서 가장 경건한 순간을 가볍게 만들어 버리지는 않을까 우려하던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아내는 신부와 사회를 본 신부의 친구가 예쁘다고 했다.

"신부와 친구들이 예쁘기는 하지만 당신만은 못한 것 같아."
이런 뻔히 속 들여다보이는 방송용 발언에도 행복해 하는 아내가 어리석어 보이기도 하고, 사랑스럽기도 했다.

내일은 아내와 뒷산에 올라갈 것이다. 한 시간 정도의 등산은 아내를 일주일간 행복하게 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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