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풍경…낯설지 않은 세상

낯선 풍경…낯설지 않은 세상

  • 이영재 기자 garden@doctorsnews.co.kr
  • 승인 2012.02.03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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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구 원장 사진집 <형과 구의 낯선 풍경> 발간

시골 마을 뒷산은 송신탑 차지다. 너른 평야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각종 송전탑과 전신주가 이젠 낯설지 않다. 논과 밭 사이에는 어울리지 않게 아파트가 솟아 있고 비닐 덮힌 을씨년스런 밭 너머에는 덩그라니 공장건물이 자리한다.

새들에게도 버림받은 듯한 방앗간의 휑한 모습과 생계대책의 아우성이 담긴 플래카드가 폐가를 감싼다. 모내기를 하는 이들의 모습에서 풍요를 떠올려야할 논길을 따라가다보면 골프연습장 철골에 걸린 그물망에 맞닿는다.

국제결혼을 알선하는 업소의 간판과 재혼·장애우 결혼을 책임진다는 벽보가 아픈 현실을 내보인다. 무슨 사정이 있는지 짓다 만 10층이 넘는 유객업소의 흉물스러움이 뼈대를 내보이고 바로 길 건너에는 '민박'한다는 고즈넉한 단층산장이 보인다.

아직 완공되지 않는 교각 사이로 얼굴을 내보인 푸른하늘. 우리의 이 현실은 소통일까 단절일까.

 
이형구 원장(전북 전주·중앙마취통증의학과의원)이 지난해 열었던 개인전 '형(形)과 구(具)의 낯선 풍경'전의 작품을 사진집으로 옮겨 <형과 구의 낯선 풍경>으로 펴냈다. '형태'와 '기구'가 있는 낯선 풍경이다. 삶의 뿌리인 농촌 모습을 통해 인간다움에 대해, 삶에 대해 우리에게 가슴으로 다가온다.

이 원장의 작품에는 기교보다는 마음이 있다. 어느 작품에도 작가가 못내 아쉬워하는 시간과 공간에 대한 아픔이 배어있다. 퇴색하고 낡은 풍경속에서 옛것에 대한 향수에 머무르지 않고 지금 우리가 사는 모습이 잃어가고 있는 것을 찾아간다.

이 사진집은 다섯단락으로 꾸며졌다. 첫번째 주인공은 송신탑. 진안·군산·부안·김제·정읍·보령·완주·장수·익산 등지에 마치 '내가 있어서 너희들이 사는 줄 알라'고 윽박지르듯이 솟아 있는 그들의 모습을 담았다. 두번째는 플래카드. 삶을 지탱하기 위한 최소한의 권리를 요구하는 애절함과 절실함이 녹아있다.

그들이 이야기한 '끝까지 투쟁'에서 과연 무엇이라도 얻어냈을까. 국제결혼 알선·채권회수·혁신도시 분양을 담은 각종 전단이 앵글속에 잡히고 무너진 벽 앞 주차금지 표지는 그만큼의 여유조차 없어져 가는 아우성으로 다가온다. 세번째는 다리다.

논밭과 산을 무론하고 쭉쭉 뻗어가고 있는 고속철도·고속도로를 위해 다리에 다리가 이어진다. 그 곁에 그 밑에 자리한 주민들의 삶은 외양만큼 좋아졌을까. 또 하나의 부제는 부조화다. 너무나 어울리지 않지만 곳곳에 당당하게 들어서 있는 모텔들.

그리 행복하지 않은 미래가 그려진다. 네번째는 일상이다. 벼가 익은 논 옆에 들어선 폐차장에는 압착기에 들어가기전 차 두 대가 하늘과 맞닿아있고 그 너머엔 골프연습장이 보인다.

영광 법성포 굴비가게에 즐비한 굴비 꾸러미들과 완주 소싸움장에서 '소주인' 조끼를 입고 소싸움을 지켜보는 소 주인의 뒷모습에서 그들의 시름을 읽는다. 이 낯선 풍경의 마지막은 사람이야기다.

어느 이름모를 화가가 그렸을 대형 그림앞에 지팡이를 의지한채 나무의자 한켠에 앉은 어르신과 버스정류장을 가득채운 일군의 촌로들.

순창 구림에서 모내기하는 이들과 구례봉동의 시장풍경이 이어진다. 서천 바닷가 모래밭에 한쪽다리가 묻힌채 버려진 쇼파와 멀리 공사로 바삐 움직이는 굴삭기와 덤프트럭이 서로에게 쓸쓸함을 보탠다.

박남준 시인은 서평에서 "작가는 어긋나 있는 현실을 통해 옮고 그름을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라 차이를 이야기한다. 차이는 다름이다. 이 다름을 서로 인정하자는 것이다.

서로를 인정하게 될 때 비로소 어떤 가치체계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작가는 소통의 부재가 아니라 소통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역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책을 마무리하며 '사진노트'를 통해 "나에게 사진은 의문이고 물음이다. 인간다운 원초적 삶은 근원적으로 파괴되고 생태적 위기를 맞고 있다.

이 현실에서 우리는 물질적 풍요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 얻는 만큼 잃는 것도 많다는 진실을 알게된다. 자연의 순리 앞에 과학은 무슨 의미일까? 우리는 이제 그만 교만해야 한다"고 말한다.

낯선 것들은 이제 더 이상 낯설지 않다. 모두가 변한 이유다. 그러나 변하지 말아야 할 것, 지켜야 할 것은 옛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그대로이지 않을까. 이 책 속 사진을 통해 다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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