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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생명의 두드림, 나눔의 어울림 '장기기증'

기획 생명의 두드림, 나눔의 어울림 '장기기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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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09.01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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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잇기-질병관리본부 장기이식센터 공동기획 ①

사단법인 생명잇기와 질병관리본부 장기이식관리센터는 생명나눔에 대한 긍정적 인식제고와 뇌사 추정자 발생 때 의료인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뇌사장기기증 활성화 의료인 교육 홍보사업'을 벌이고 있다. 이와 함께 장기기증에 대한 국민의 인식 개선을 위해 한국장기기증원 등과 다양한 사업을 진행중이다.

<의협신문>은 4회에 걸쳐 장기이식을 통해 숭고한 나눔을 펼치고 세상과 이별한 이들과 어느 누군가의 '선물'을 통해 새 삶을 살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를 게재하면서 아름다운 생명나눔의 의미를 되새기고자 한다.

사단법인 생명잇기는 2009년 10월 보건복지부로부터 법인설립 허가를 받은 단체로 대한이식학회 회원을 중심으로 뇌사장기기증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생명잇기는 민간단체 홍보요원과 의료인을 위한 교육자료 개발 및 교육,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홍보활동에 주력하고 있다. 
편집자

다 나눠주고 떠날 거야

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지루하실지 모르겠지만 조금이나마 저의 이야기가 마음으로 느껴지고 용기로 다가갔으면 하는 작은 바람입니다.

1992년, 제가 3살이 되던 해 감기가 오랫동안 낫지 않아 엄마가 더 큰 병원으로 저를 데려가셨습니다. 신장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 서울대학교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고 혈액투석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복막투석으로 바꿔 집에서 투석을 했습니다. 너무 어릴 때라 기억은 잘 안 나지만, 언제나 아빠가 옆자리를 지켜주셨던 기억은 납니다.

그렇게 투석 1년 만에 이식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첫 이식 수술이 잡힌 날에는 고열 때문에 실패를 했고 두 번째 기회가 찾아와 뇌사자의 신장으로 서울대병원 김상준 교수님께서 이식수술을 해주셨습니다. 처음 수술실을 가는데 너무 무섭고 떨렸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수술실에서 "자고 일어나면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올 거야"라는 의사 선생님 말을 들으며 잠이 들었고 깨어나 보니 회복실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중환자실에 들어갔고 어렸지만 그곳에서의 시간은 너무 외로웠던 순간이었습니다.

어린 마음에 엄마 아빠가 너무 보고 싶고 어리광을 부리고 싶었는데도 면회시간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혼자 덩그러니 누워있다는 것이 외로웠습니다. 가끔 청소부 아주머니가 들어오시는 것조차 반가웠습니다.

그러고 나서 입원실로 옮겼는데 아침 7시 채혈 시간만 되면 숨바꼭질이 시작되었습니다. 피 뽑기가 싫어서 침대 밑, 엄마 등 뒤, 화장실 이곳저곳을 누비며 숨고 나중에는 베개 밑에 팔을 넣고 자는 게 습관이 되어 버렸습니다.

면역력 때문에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탓에, 오후가 되면 엄마랑 창가에 앉아서 밖을 내다보며 종이접기도 하고 그림그리기도 하고 만들기도 했습니다. 링거를 오른팔에 맞다 보니 자연스레 왼손잡이가 되었습니다.

링거 한번 막히면 저뿐 아니라 간호사선생님도 혈관 찾느라 고생하신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아예 오른손을 쓰지 않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 전에 혈관 찾다가 목에서도 피를 뽑고 발에서도 피를 뽑아봐서 얼마나 아픈지 알기 때문에 더 조심 했었습니다. 혈관 찾느라 고생할 때마다 엄마는 미안하다고 글썽이시면서 저를 안아주셨고 그럴 때는 그렇게 큰 엄마가 저보다 더 작아보였습니다.

어릴 때는 나 아픈 것만 생각하고 우느라 몰랐지만 지금도 가끔 미안하다고 하시는 엄마를 보면 건강하게 태어나지 못한 것이 죄송하기도 하고 제가 밉기도 합니다. 하지만 엄마 덕분에 이렇게 건강하게 자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퇴원하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식이요법이 정말 중요한데 저는 짭조름하고 달콤한 맛있는 것들이 먹고 싶었습니다. 당연히 엄마는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하루는 김이 너무 먹고 싶어서 몰래 훔쳐 먹고 있었는데 엄마랑 눈이 마주쳐서 엉엉 울었습니다. 엄마한테 혼이 날까 지레 겁을 먹었었습니다.

또 어떨 때는 퇴근 하신 아빠를 붙잡고 냉장고에 있는 소시지 하나만 먹고 싶다고 졸라서 마음 약한 아빠가 엄마 몰래 꺼내 주곤 하셨습니다. 그때는 난 언제쯤 마음대로 먹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만 했었습니다.

그렇게 조심해가며 외래진료를 다닌 지 벌써 17년째입니다. 그동안 안 힘들었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죠? 학교를 빠지지 않고, 학교생활도 열심히 해서 다른 친구들과 다를 게 없다는 것을 부모님께 보여드려 두 분을 안심시켜드리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채혈을 하고 등교하는 날이면 피곤하고 힘들어서 부모님께 짜증도 많이 내고 그래서 지금도 죄송한 마음이 큽니다. 제가 살아온 날의 대부분이 병원을 왔다 갔다 한 것이 전부이지만 저는 정말 17년에 대한 감사함이 매우 큽니다.

뇌사자 분이 기증을 안 해주셨더라면 저는 이렇게 건강한 삶을 살 수 없었을 것입니다. 부모님이 제 곁을 지켜주지 않으셨다면, 교수님들께서 저를 관심과 애정으로 치료해주지 않으셨다면 저는 이렇게 존재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예전엔 창피했지만 배에 있는 큰 수술자국도 사랑하고 주사바늘 자국이 생긴 팔도 사랑하고 아파서 자라지 못한 작은 키도 사랑합니다. 3개의 신장도 사랑하고 퉁퉁 붓는 제 얼굴도 사랑하고 그냥 제 삶의 모든 것을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아주 어렸을 때였지만 아플 땐 '죽으면 어떡하지?'라는 생각도 했었습니다. 살려달라고도 하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간절한 마음이 이렇게 현실이 되었을 때의 감격은 정말 겪어보지 못한 분들은 모르실 겁니다.

이 자리를 빌려 제게 사랑을 전해주신 여러분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저는 사랑의 빚쟁이가 되었습니다. 잘 자랐고 건강도 잘 지켜나가고 있습니다. 제가 받은 사랑을 이제 되돌려 드리겠습니다. 제가 늙어서도 다른 장기가 건강하다면 저도 생명을 나누려고 합니다.

생명잇기는 물질적으로 주고받는 것만이 아니라 희망과 용기를 나누는 것으로도 할 수 있습니다. 저도 누군가의 용기가 없었더라면 금방 주저앉았을 것입니다. 지금 투병중인 많은 분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세요! 지금까지 저의 이야기를 들어주신 모든 분께 감사합니다.

나의 달리기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심장은 터져버릴 것 같다. 저 멀리 경기장이 보이는데 누군가 발을 잡고 놓아주려 하지 않는다.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든다. 35분 남짓한 시간동안 이렇게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다니.

20년 된 만성간염을 간경화로 다시 만나고 7년 동안 나름 관리한다고 했는데도 준비 없이 갑자기 삶의 막바지에 다다랐다. 간성혼수에 식도정맥류출혈로 피를 토하고 혼수상태에 빠졌다. 그리고 25시간의 수술을 받고 10일간 의식불명 상태가 지속되었었다.

두 아들의 희생과 아내의 헌신적인 사랑으로 새 생명을 받고 새로운 마음으로 살아온 지도 이제 4년이다. 지금껏 살면서 100미터도 안 뛰어본 내가, 운동이라면 치를 떨던 내가, 사람이 변했는지 덜컥 마라톤에 도전을 했다. 그것도 5,000미터를.

대회 나가기 한 달 전부터 본격적으로 연습을 시작했다. 원래 준비 하나는 요란스러운 나는 우선 제일 좋은 운동용품을 세트로 장만하고, 제자리를 못 찾아 냉대 받던 러닝머신에 오르고 동네 학교 운동장도 달렸다.

그런데 안간 힘을 다 써 봐도 기록시간은 줄지 않고 힘든 건 항상 늘 그대로였다. 그래도 이제 갓 200일 된 귀여운 내 손주 승우를 생각하면 못 해낼 일이 없다. 어릴 적 가시고기를 알고부터 나도 내 자식들에게 가시고기가 되고자 다짐했고 나름 열심히 노력해서 좋은 결과도 얻었다. 그들이 나를 다시 살려놓았으니 내가 살아있는 한 나의 가시고기 사랑은 쭉 계속 될 것이다.

다른 참가 선수들은 장난이 아니다. 정말 프로선수들이다. 그래도 내 뒤의 몇몇이 나를 위로한다. 저기 경기장 입구가 보인다. 이미 순위에는 떨어진 나를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응원해준다. 트랙에 들어서자 기다리다 함께 뛰어주는 아름답고 고운 두 누님 덕분에 절로 힘이 난다. 나는 더 힘껏 뛰었다.

먼저 들어간 동료들이 나를 반겨준다. 하지만 대한민국 선수단의 응원석은 일부러 보지 않았다. 미안하기도 하고 해서.

내 눈물을 감춰주는 땀이 흘렀다. 이 상황에 또 눈물이라니. 무엇 때문인지 달리는 중간에도 눈물이나 몇 번 소리 죽여 울었다. 비록 짧은 5km 미니 마라톤이지만 나는 끝까지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뛰었다. 오늘도 나는 나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쉬지 않고 달린다.

나에게 이번 이식인 세계대회는 참가의 기쁨과 함께 앞으로 나의 새로운 삶의 방향을 정하는데 큰 계기가 되었다.

2년 뒤 남아공에서의 복수? 메달에 대한 욕심? 나의 건강? 승우? 무슨 이유에서라도 좋다. 어떤 이유든 나의 달리기는 계속된다. 내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새생명 주고 떠난 영혼에게…

오늘 하루도 살아 있음에 감사하고 내게 새로운 삶을 주고 떠난 영혼을 위해 기도드린다. "나에게 생명을 나누어주고 떠난 영혼에게 은총을 베풀어주소서."

지금부터 20년 전쯤 나에게 신부전증이 발생했다. 신장의 기능이 떨어져 노폐물을 걸러내지 못하게 되면서 온몸에 요독이 쌓여 구토와 두통, 고혈압 등에 시달렸고 그 고통은 너무 가혹했다. 일주일에 3번 혈액투석을 받았는데, 매번 4시간을 누워 투석을 받고 집에 돌아오면 어지러워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가정은 자연히 어두운 분위기가 드리워져 아이들은 집에 들어오기 싫어하게 되었고, 누워 있는 엄마의 존재는 무겁기만 했다. 사계절을 새벽같이 일어나 밥을 해서 도시락을 싸주고 6시 전에 어김없이 병원에 데려다 주고 출근해야 했던 남편의 정신적, 육체적 고통도 너무 컸다.

하지만 환자인 내 자신의 고통도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투석하는 동료가 건강이 악화되어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될 때는 공포에 가까운 두려움이 밀려오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식의 기회가 왔다. 서울대병원 신장 코디네이터에게서 새벽에 전화를 받았다. 혈액형이 일치하는 뇌사기증자가 있으니 이식받겠는가를 묻는 내용이었다. 병원으로 가는 중 남편의 긴장된 모습을 보며 내가 못할 짓을 많이 하는구나 하는 생각과 20년간 만성신부전 아내를 간호해 온 남편에게 말할 수 없는 미안함과 감사함이 동시에 내 가슴 속에 밀려들었다.

이식 후 지금도 주치의 교수님의 약 처방과 환자에게 주는 지시는 절대적으로 순응하여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지켜나간다. 요즘은 내가 수술했던 7월에 태어난 손주 재인이와 산보도 하고, 여고동창생들과 4박5일 해외여행도 다녀오고 일주일에 3번 이상 영어공부와 컴퓨터공부도 하고 있다.

나는 내게 온 이러한 행복을 다른 환자들도 누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곤 한다. 그래서 나도 이 귀중한 시간을 타인에게 조금이나마 나눠 줄 수 있도록 내 자신을 열심히 가꾸고 있다.

장기기증은 한 사람의 삶을 완전히 바꾸며, 밝은 사회를 만들어가는 지름길이라고 감히 생각하고 있다. 우리 환자들에게 새 삶을 주신 수많은 기증자 분들과 그 가족 분들에게 다시 한 번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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