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 당연지정제' 하에서 의료사고 대한 손해 배상 책임은?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하에서 의료사고 대한 손해 배상 책임은?

  • 신동욱 성균관의대 교수(삼성서울병원 암치유센터) admin@doctorsnews.co.kr
  • 승인 2023.08.1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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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서비스 하자로 인한 손해배상책임…공보험이 부담해야
위험한 의료행위 기피현상 등 의료공백 문제 해결 도움될 것

신동욱 성균관의대 교수(삼성서울병원 암치유센터)ⓒ의협신문
신동욱 성균관의대 교수(삼성서울병원 암치유센터)ⓒ의협신문

하나의 가상의 예시를 들어보자. 

"당신이 한 음식점에 전속 계약된 대리 주차 기사라고 하자. 차 한 대를 대리 주차해주면 3000원을 받는다. 음식점 소속 직원은 아니고, 주차 대수에 따라 본인이 대리비를 징수하는 자영업자이다. 좁은 골목에 주차를 하다 보면 혹시 접촉사고도 날 수 있기 때문에, 위험을 대비해 스스로의 수입에서 월 10만원짜리 대리운전 배상보험을 들었다. 혹여 사고가 나면 최대 1000만원이 한도이다. 하루는 10억원짜리 롤스로이스 차량이 도착했다. 워낙 고가의 차라 접촉사고를 내게 되면 1억원을 물어줘야 할 수 있다. 본인이 자영업자이기 때문에, 혹여 사고가 나더라도 음식점은 전혀 배상해주지 않는다. 당신이 대리 주차 기사라면 그 차량을 운전해서 주차해줄 것인가? 아니면 거부할 것인가?"

얼마 전 매우 우려스러운 판결들이 있었다. 팔로 사징후(Tetralogy of Fallot), 부분적 폐정맥 이상, 시미타 증후군 등의 선천성 심장기형을 가진 1살짜리 환아에 대해 2차 수술을 하다가, 수술 직후 대동맥 캐뉼라가 빠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후 환아는 영구적인 인지장애·언어장애·미세운동장애 등 후유증이 남았다. 이에 대해 법원은 9억원을 손해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모든 의료 행위가 완벽하게 이뤄진다면 좋겠지만, 의료행위에는 과실이 있을 수 있다. 아무리 본인이 주차의 달인이라 하더라도, 절대 접촉사고를 내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할 수 있을 수 있을까? 

의료사고로 인해 합병증이 생겼을 때 배상액수는 보통 이미 들어간 치료비나 개호비 합계, 향후 치료비와 개호비, 보조구 비용 합계, 일실 수입 합계 등으로 정해진다. 그러다 보니, 소아 청소년이나 젊은 성인, 고소득 성인 등은 배상액이 매우 높아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의료비는 이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티코를 대리 주차하나, 벤틀리를 대리 주차하나 전혀 차이가 없이 일괄 지급하는 것과 같다.

그런 상황에서 혹시라도 실수를 했을 때 거액을 물어내야 한다면, 대리 주차 기사는 최고급차는 대리 주차하지 않겠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의사들의 문제는 그런 선택권조차 없다는 것이다. 좀 더 조건이 좋은 다른 음식점에 취직을 할 방법도 없고, 최고급차는 대리주차를 하지 않겠다고 할 선택권도 없다. 최고급차에 대해 대리 주차비를 올려서 받을 수도 없다. 무조건 3000원에 대리주차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 이 나라의 건강보험 당연지정제이다.  

사고로 피해를 입은 환자와 보호자의 입장에서 배상은 매우 중요하다. 개인적인 불운이기도 하지만, 장애가 남은 환자를 평생 돌보며 살아야 하는 입장에서는 이에 따른 경제적 문제와 간병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적절한 배상을 받아야 한다. 

국가배상법 제2조에 의하면 '공무원 또는 공무를 위탁받은 사인이 공무를 수행하면서 고의 또는 과실로 타인에 손해를 입힌 경우에는 공무원에 일을 맡긴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 공무원에게 경과실이 있는 경우 국가나 지자체는 구상할 수 없고, 피해자가 공무원에 손해배상을 구하는 것도 허용되지 않는다'고 돼있다.

이 같은 국가배상책임 제도는 공무원에 일을 맡긴 국가나 지자체의 면책을 불허하는 한편, 경과실 공무원을 면책시킨다는 점에서 피해자 보호 및 공무원 보호에 입법취지가 있다. 

2019년 의료법학회에서 이상덕 재판연구관은 "의료기관이 국민건강보험의 가입자나 피부양자인 국민에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국민건강보험법상 요양기관의 지위에서 국민건강보험법상 요양급여를 건보공단을 대신해 제공하는 활동으로, 명백히 공무에 해당한다"며 "논란이 있겠지만 적어도 공무를 수행하는 실질적 의미의 공무원에 해당한다는 점을 부정하기 어렵다"고 지적한 바 있다.

우리나라의 당연지정제 하에서, 건강보험이 커버하는 의료행위는 실제로 건강보험공단이 국민에게 제공해야 할 의료행위를 의료기관이 위탁받아 수행해주는 것과 다름 없다. 따라서 건강보험공단은 요양급여의 제공이라는 공무 수행과 관련, 국가배상법에 따른 배상책임을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 이 재판연구관의 설명이다. (관련기사)

의료수가는 국가가 전적으로 정하는 상황에서, 위험에 대한 비용은 의료기관이나 의사 개인에게 전가시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음식점 주인이 롤스로이스 대리주차를 강제로 시키려면 대리기사가 그 위험에 맞는 보험금을 낼 수 있도록 충분히 많은 금액을 대리비로 받을 수 있게 하거나, 아니면 스스로 보험료를 부담해서 대리 주차 기사가 걱정 없이 주차를 하게 해주면 된다. 

의료서비스가 국민건강보험이라는 강제적인 공보험과 당연지정제를 통해 제공되는 이상, 의료서비스의 하자로 인한 손해배상책임도 공보험이 부담해야 한다. 이는 최근 의사들이 위험이 있는 의료행위를 기피하면서 벌어지고 있는 의료공백 문제를 해결하는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적어도 중과실이 아닌 이상, 무과실 의료사고나 경미한 과실로 인한 의료사고는 법적 분쟁과 손해 배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 우리는 팔로 사징후와 같은 고위험 질환을 가진 환아들은 수술을 받을 수 없는 세상에 살아야 할 수 있다. 

또한 의료사고에 대한 배상을 국가가 해주는 것은 환자와 보호자 입장에서도 좋을 것이다. 현실적으로 배상은 받아야 하니, 최대한 의료진의 실수를 부각하려고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본인이나 가족을 치료해주려고 최선을 다한 의료진의 경미한 실수를 비난하고 싶은 사람들이 그렇게 많을까? 적절한 기준에 따라서 국가가 배상을 해준다면 환자나 보호자들이 의료진의 과실을 입증하기 위해 필요한 노력이 줄어들 것이다. 

최근 고의나 중과실이 아닌 의료사고에 대해 의료인의 형사처벌 면제에 대한 논의가 진행이 되고 있다. 형사뿐 아니라 민사에서도 가벼운 의료과실은 국가가 배상하도록 하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실제 군의관이나 공보의들은 그런 판례들이 있다.(관련기사). (관련기사)

합리적인 의료과실에 대한 의료 배상 제도가 마련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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