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의 분화와 인턴교육

노동의 분화와 인턴교육

  • 안덕선 고려대 명예교수 (전 의료정책연구소장) admin@doctorsnews.co.kr
  • 승인 2023.08.20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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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 의료 활동, 적법한 위임 통한 보조 인력 직무 분담 '실용적'
새 직장 창출, 인턴·전공의 교육 내실화, 의료 효율성 제고 기대

안덕선 고려대 명예교수 (전 의료정책연구소장)ⓒ의협신문
안덕선 고려대 명예교수 (전 의료정책연구소장)ⓒ의협신문

2022년 대한전공의협의회가 137개 병원 903명 전공의를 대상으로 인턴수련 교과과정 및 근무환경 실태조사에 의하면 인턴의 업무 중 술기 36%, 환자 모니터링과 이송 16%, 인턴 업무와 무관한 잡무가 13%를 차지하고 있다. 

인턴 직무의 65% 이상이 인턴에게 필요한 필수과목별 핵심역량과 무관한 내용이었다. 인턴에게 의사로서 고등 사고능력을 작동시킬 만한 진찰 및 처방 업무는 15% 정도에 그쳤다. 

의과대학 임상 실습이 인턴교육을 위한 충분한 준비를 제공하지 못하고 인턴교육은 전공의 교육을 위한 충분한 기본 역량을 갖추지 못하는 악순환의 고리에 있는 것이다. 

의과대학 실습에서 충분한 사전 준비 교육 없이 인턴에게 맡겨진 침상 술기나 다른 술기는 환자나 인턴 당사자 모두에게 안전하지 않다는 것은 익히 인지하고 있다.  

인턴 업무 중 술기가 36%를 차지하고 있었는데 아마도 채혈·도뇨·심전도 촬영 등 아무리 반복해 봐야 의사로서 기본적 역량 획득과는 무관한 반복적 노동의 술기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의사의 가장 기초적인 역량은 환자의 진찰과 검사로 잠정적인 진단을 도출한 후 이에 따라 향 후 치료의 방향을 결정하는 임상 추론의 능력과 필수적인 기본 술기 그리고 환자와 소통 능력이다. 

단순 술기의 습득은 오래 걸리지도 않고 통상적이고 반복적 노동에 가까워진다. 단순 술기는 반드시 의사가 하지 않아도 다른 보조 인력 부분 직무(Park Task)에 국한해 위임(delegation)가능하다. 의사의 처치 명령(Order)에 따라 정맥혈 채취나 정맥관의 삽입은 특별히 어려운 상황을 제외하고 정맥혈 채취에 국한된 역량의 의료 기술직이 수행해도 환자 안전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의료법 위반의 불법 대리 성격이 아니고 비교적 단순한 역량의 부분 직무(Part Task)를 위임하는 것인데 물론 이에 필요한 교육을 이수해 적법하게 위임하는 것이다. 

의료 선진국에는 단순한 술기를 꼭 고비용 직군인 의사가 해야 할 필요가 없고 대리 아닌 위임으로 부분 직무가 가능한 다양한 의료 보조 직군이 존재한다. 

미국에서 채혈사(Phelbotomist)는 정맥혈이나 수액공급을 위한 정맥 삽관을 위한 직군으로 고등학교 졸업장과 최소 40시간의 교육으로 자격획득이 가능하다. 

정맥주사를 위한 도구·감염 등에 대한 안전 조치 그리고 혈액에 대한 기초지식·합병증·정맥주사를 위한 부분 해부학에 대한 학습이다. 추가 요건으로 병원 근무를 위한 기초심폐소생술과 자격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무료 비대면 교육과정도 존재한다. 혈관 노출 상태가 적당하지 않아 채혈의 어려움이 있는 사례의 채혈은 의사의 몫이다. 

간단한 통상적인 도뇨는 비뇨기과 기술을 습득한 비뇨기사(Urology Technician)가 할 수 있다. 이들의 직무는 환자 기록 검토, 절차 설명, 장비 설정 및 테스트 지원과 유지를 포함한다. 

비뇨기사는 의사의 지시와 감독하에 방광 초음파 이미지를 촬영하고 도뇨관 삽입을 수행할 수 있다. 각종 비뇨기과 내시경 검사에서 전문의를 보조하고 환자에게 도뇨관 관리를 위한 교육과 설명도 하고 의사의 지시와 책임하에 수술 후 실밥 제거와 드레싱도 한다. 

2년 이상의 병원 근무 경력을 쌓으면 상급비뇨기사(Senior Urology Technician)가 된다. 비뇨기사는 비뇨기과 전문의의 비뇨기 질환 진단 및 치료를 지원하는 실험실·클리닉·병원에서 근무한다. 

의료보조사(Medical Assistant)는 각종 검사를 위해 환자를 준비하는 것을 비롯해 주치의의 요청에 따른 약물투여·심전도 수행·실밥 제거·드레싱·실험실 검사를 위한 샘플 수집·환자와 의사 사이의 연락과 환자 예약 일정 관리·의료 서비스 코딩·보험 약식 준비·의무기록 유지 등 다양한 직무를 수행할 수 있다. 

의료보조사는 외래 진료소, 진료소 및 기타 외래 치료 시설에서 다양한 의료 환경에서 근무할 수 있다. 

미국에서 의료보조사는 고등학교 졸업 후 1∼2년의 교육 기간을 거쳐야 한다. 직무의 위험도와 난이도가 높지 않고 진료의 효율을 높일 수 있도록 전문직의 판단으로 위임이 가능한 직무를 담당하는 직군이다. 

우리나라는 몇 년 전부터 통상적으로 외래 간호사가 담당하던 수술 후 실밥 제거도 반드시 의사가 해야 의료법 위반이 아니라고 전공의가 담당하게 됐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충분히 의사가 아니라도 할 수 있는 직무를 반드시 의사가 해야 하는 것도 비합리적이고 바쁜 전공의를 호출해 실밥 제거만 시키는 것도 비교육적이고 낭비적 인력 운영이다. 

환자와 대화하고 수술 상처를 확인하는 자리에 동석한 간호사나 보조 인력이 의사의 위임을 받아 직무를 수행할 수 있다면 진료의 효율성도 높일 수 있다. 인턴이 수행하는 업무의 상당 부분이 단순 술기의 반복이라는 사실도 비교육적이고 낭비형인 수련이다. 

의료에서 의사의 판단에 따라 위임에 의한 단순 직무 수행을 위한 직군은 미국에서 빠른 성장세를 보인다. 

환자 안전에 영향을 미치지 않고 단순한 의료 활동에 고비용 의사를 투입하는 대신 적법한 위임을 통해 다양한 보조 인력에게 직무 분담을 하는 것은 의료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매우 실용적인 조치로 보인다. 

외국의 다양한 사례에서 의료의 변화에 따라 레이저기사·인공호흡기사·모발이식기사·신장투석기사·초음파기사·방사선치료사 등 기존의 보건의료인력 이외의 직군도 보인다. 

의료의 효율성 제고를 위해 정식 학부 과정의 보건의료인력 이외에도 위임의 범위가 한정된 새로운 직군 신설의 필요성이 분명히 존재한다. 

인턴이 일반 의료(General Medicine)를 위한 기본 수련 과정이라면 고등사고 능력에 의한 임상 추론(Clinical Reasoning)과 기본 임상술기 역량을 획득할 수 있도록 단순하고 반복적인 직무의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 

다양한 의료 보조 직군은 새로운 직장 창출과 인턴과 전공의 교육 내실화 그리고 의료의 효율성 제고도 동시에 기대해 볼 수 있어 우리나라도 다양한 의료 보조 직군의 도입에 대한 타당성에 대한 검토가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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