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칼럼 동일한 의료과실, 다른 민·형사책임

법률칼럼 동일한 의료과실, 다른 민·형사책임

  • 박성철 변호사(법무법인 지평) admin@doctorsnews.co.kr
  • 승인 2023.09.30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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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철 변호사
박성철 변호사(법무법인 지평)

지난 8월 31일 대법원은 같은 사실관계를 전제로 한 두 개의 판결을 선고했다. 동일한 의료과실에 대해 민사책임과 형사책임을 달리 인정했다.

민사사건에서는 인과관계를 인정했다. 의료과오 사건에서 적용되는 인과관계 추정에 관한 법리를 설시하며 인과관계를 인정했다(대법원 2023. 8. 31. 선고 2022다219427 판결). 반면, 형사사건에서는 인과관계가 증명되지 못했다고 보았다. 과실과 사망 사이의 인과관계에 대한 증명 부족을 이유로 하여 무죄 취지 파기환송 판결을 했다(대법원 2023. 8. 31. 선고 2022다219427 판결). 같은 사안인데도 정반대 결론에 이르렀다.

환자가 '오른쪽 어깨 전층 회전근개파열과 어깨충돌 증후군 소견'으로 전신마취 아래 관정결 시술을 받던 중 저혈압 증상이 반복되다가 사망한 사안이다. 부검에서도 사인이 밝혀지지 않았다.

업무상과실은 있었다. 피해자에게 마취가 진행되는 동안 마취간호 업무를 시작한 지 2∼3개월밖에 안 된 간호사에게 환자 감시업무를 맡긴 채 다른 수술실로 옮겨 다니며 여러 환자들에게 마취시술을 했다. 피해자의 활력징후 감시장치 경보음을 들은 호출을 받고도 신속히 수술실로 가지 않았다. 휴식을 취했다. 마취유지 중 환자감시와 신속한 대응을 소홀히 한 업무상과실이 있다고 판단되었다. 민사와 형사책임을 인정하는 전제가 되는 과실은 공히 인정되었다.

그러나 대법원은 업무상과실치상죄가 성립되기 어렵다고 보았다. 형사책임을 인정할 정도로 인과관계가 증명되지 않았다는 입장을 취했다. 구체적으로 보면, "피해자는 반복적인 혈압상승제 투여에도 불구하고 알 수 없는 원인으로 계속적으로 혈압 저하 증상을 보이다가 사망하였는데,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피고인이 직접 피해자를 관찰하거나 간호사의 호출을 받고 신속히 수술실에 가서 대응하였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조치를 더 할 수 있는지, 그러한 조치를 취하였다면 피해자가 심정지에 이르지 않았을 것인지 알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나아가 대법원은, 피해자에게 심정지가 발생하였을 때 피고인이 피해자를 직접 관찰하고 있다가 심폐소생술 등의 조치를 하였더라면 피해자가 사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에 대한 증명도 부족하다고 보았다.

의사에게 의료행위로 인한 업무상과실치사상죄를 인정하기 위해서는, 업무상과실의 존재만으로는 부족하다. 업무상과실로 인하여 환자에게 사망 등 결과가 발생한 점에 대하여도 엄격한 증거에 따라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증명이 이루어져야 한다(대법원 2023. 1. 12. 선고 2022도11163 판결 등 참조). 의사의 업무상과실이 증명되었다는 사정만으로 인과관계가 추정되거나 증명 정도가 경감되지 않는다. 결국 이 사안에서도 피고인의 업무상과실로 피해자가 사망하게 되었다는 점이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증명되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원심이 파기되었다.

민사소송에서는 달랐다. 민사상 손해배상책임이 성립하기 위해서도 인과관계가 인정되어야 한다는 점은 다르지 않다. 다만 증명의 정도가 달라진다.

의료는 고도의 전문적 지식이 필요한 분야다. 환자 측에서 의료진의 과실을 증명하기는 쉽지 않다. 현대의학지식 자체의 불완전성도 있다. 진료상 과실과 환자에게 발생한 손해 사이의 인과관계는 환자 측뿐만 아니라 의료진 측에서도 알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대법원은 이러한 증명의 어려움을 고려했다. 환자 측이 의료행위 당시 임상의학 분야에서 실천되고 있는 의료수준에서 통상의 의료인에게 요구되는 주의의무의 위반 즉 진료상 과실로 평가되는 행위의 존재를 증명하고, 그 과실이 환자 측의 손해를 발생시킬 '개연성'이 있다는 점을 증명한 경우라면, 진료상 과실과 손해 사이의 인과관계를 '추정'한다. 인과관계 증명책임을 완화하는 것이다.

결국 이 사안에서도, 피고 측에서 망인의 사망이 진료상 과실이 아니라 다른 원인으로 인하여 발생했다는 점을 증명해 추정을 번복하지 않은 이상, 진료상 과실과 사망 사이의 인과관계를 추정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처럼 동일 사안에서도 형사재판과 민사재판에서 인과관계에 대한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 형사재판에서는 '합리적인 의심이 없을 정도'의 인과관계 증명을 요한다. 반면 의료과오가 문제되는 민사소송에서는 개연성이 증명되면 인과관계가 추정된다. 같은 사건에서 형사와 민사재판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보여주는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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