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국회 의료계 비상상황 관련 청문회, 정부 끝까지 자료 못내놔
‘대통령 격노설’엔 철벽방어...“보정심 당일 용산에 안건 상정 보고“
"의정협의체서도 숫자 안 밝혀"...‘의료계 1년 협의' 주장도 뒤짚어
"제가 했습니다."
정부는 26일 열린 국회 청문회에서도 2000명 의대 증원의 이유를 대지 못했다. 증원의 근거를 내놓으라는 국회의 파상공세에,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제가 결정했다"며 손을 들었다.
무려 4개월이 넘는 대혼돈을 불러온 결정이, 아무런 근거도 없이, 장관 한 사람의 머리 속에서 이뤄졌다는 믿을 수 없는 고백이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26일 의료계 비상상황 관련 청문회를 열었다. 현 의료사태의 원인을 따지고 그 대책을 모색하기 위한 자리다.
이날 질의의 대부분은 '2000명 증원'의 근거에 쏠렸다. 의료계는 물론 의대증원 자체에 동의하는 사람들마저 왜 당장 내년에, 현 정원의 1.6배에 달하는 2000명을 한꺼번에 증원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던 탓이다.
반복되는 국회의 청문에도, 정부는 "KDI 등 3개 보고서를 참고하고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 (증원규모를 2000명으로) 결정했다"는 기존의 입장을 반복했다. 그러나 반드시 2000명이어야 하는 근거는 이번에도 내놓지 못했다.
야당의 칼 끝이 '대통령 격노설', '이천공 조언설' 등 용산을 향하자, 보건복지부는 그제서야 "우리의 결정"이라며 정책 결정의 책임을 떠안았다. '1년 간의 의정합의', '수십 번의 정책 간담회'를 통해 의료계와 의대증원을 협의해왔다는 주장도 접어넣은 채다.
정부의 설명에 따르자면 2000명이라는 숫자는 "보건복지부 내에서 논의해", "'의사가 부족한가', '부족하다면 얼마나 부족한가' 하는 두가지 질문에 스스로 자문하여" 결론을 낸 것이다.
이후 장관 등 극소수만 아는 상황에서 2월 6일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 회의 당일 아침 대통령실에 보고되고, 당시 회의 자리에서 처음으로 외부에 공개되었으며, 회의 종료와 함께 발표됐다.
# 박민수 차관 "보정심 회의서 의대증원 규모 처음 밝혀"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은 이날 공청회에서 "2월 6일 보정심 회의에서 의대증원 규모를 처음 밝혔다"고 했다. 1년 간 이어온 의료현안협의체 회의에도 2000명이라는 숫자를 내놓은 적은 없다고 시인했다.
아무런 협의없이 보정심 당일 2000명 증원 규모를 의료계에 '통보'했다는 사실을 인정한 셈이다.
박희승 의원: 2000명이라는 숫자는 2월 6일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 브리핑에서 조규홍 장관이 최초로 공개한 것이 맞지요?
박민수 차관: 네.
박희승 의원: (실무책임자인) 전병왕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언제 알았습니까?
전병왕 실장: 2035년까지 의사인력 1만 5000명이 부족하다는데는 여러 논의과 검토가 있었습니다. 어느 한 시점에 툭 튀어나온 것은 아닙니다.
박희승 의원: 작년 10월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직후 정부가 1000명 의대증원을 발표할 것이라고 조선일보가 보도했는데요. 이후 의대증원이 발표된 2월 6일까지 보건복지부 관계자가 대통령실과 의대정원을 협의한 적이 있습니까.
박민수 차관: 장관과 제가 수시로 용산 사회수석실과 논의를 많이 했습니다.
박희승 의원: (용산 대통령실과 논의과정에서) 보건복지부가 제시한 숫자가 있습니까.
박민수 차관: 네, 2000명 제안을 저희가 했습니다. 여러 숫자와 방식을 놓고 각각의 장단점을 가지고 토의해서 2000명 증원이 가장 합리적이다. 이렇게 결론을 내린 겁니다.
박희승 의원: 의료현안협의체에 참여했던 의료계도 구체적인 숫자에 대해서는 논의가 한번도 없었다고 하던데, 그러면 보건복지부 내에서만 논의가 된겁니까.
박민수 차관: 의료계가 매우 민감하게 생각하던 과제로, 정부가 생각하는 적정 증원을 미리 상의할 수 없었던 사정이 있었습니다. 의료계는 의사가 부족하지 않다는 주장이었기 때문에 더 이상 논의의 진전이 어려웠습니다.
# 조규홍 장관 "2000명 증원 규모, 제가 결정했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이날 2000명 증원 규모를 자신이 정책적으로 결정해, 2월 6일 보정심 회의 직전 대통령실에 "2000명 증원안을 올리겠다고 보고했다"고 말했다. 대통령실에도 당일 아침에야 2000명 결정을 알렸다는 얘기다.
보건복지부와 대통령실은 지난해 가을부터 의대증원 문제로 거의 매일 회의했다면서도, 회의록이 없어 언제 누가 어디서 만나 무슨 논의를 나눴는지는 알 수 없다고 했다.
이수진 의원: 박민수 차관의 말을 종합해보면 보건복지부가 내부적으로 숫자를 결정한 뒤 비공개로 가지고 있다가, 보정심 후에 확정해 발표했다는 것인데 이런 것을 보고 밀실행정이라고 하는 겁니다. 이런게 의료갈등 의료대란을 만든 것 아닙니까.
다른 나라의 경우 의대정원을 20년에 걸쳐서 연간 5% 정도로 증원하고 있습니다. 급격한 증원을 하면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의대증원의 필요성을 모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2000명 증원은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비과학적인 증원이고, 그래서 결국 총선용 졸속안이 아니었느냐는 합리적인 의구심이 들 수 밖에 없는 겁니다.
보정심을 들러리 거수기로 전락시키고, 군사작전 하듯이 의대정원 규모를 발표했어요. 대통령의 뜻이라서 그런겁니까.
조규홍 장관: 갑자기 나온 것은 아니고 의정협의체 등에서 논의했는데 의견이 좁혀지지 않았습니다. 대통령실에는 보정심 직전에 사회수석실을 통해 2000명 증원 안건을 보정심에 올려서 논의하겠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김선민 의원: 보건복지부에서 처음에 400명∼500명 수준을 논의했지만 용산과의 협의 과정에서 2000명까지 확대됐다는 말은 정관계를 넘어 이미 국민들에게도 공공연한 비밀이 됐어요.
조규홍 장관: 복지부가 어떤 인원을 말씀드렸는데, 대통령실에서 그걸(비토)해서 숫자가 바뀌었다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잘못된 소문입니다. 제가 결정했습니다.
박희승 의원: 복지부 관계자와 의대 정원 확대와 관련해서 협의를 하신 적이 있다고 오전에 차관이 말씀을 하셨어요. 몇 번이나 만났고 누구누구 만나서 협의를 했습니까.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 저희들이 수시로 협의를 했기 때문에 그런 횟수를 카운팅하기는 어렵습니다.
박희승 의원: 만나면 기록을 남기실 것 아닙니까. 회의록 같은 것 그런 건 지금 보관하고 계십니까.
장상윤 사회수석: 비공식적인 협의 또는 구두로 하는 협의, 전화 이런 것들을 기록으로 남기지는 않지요. 대부분의 협의는 그런 기록을 남기지는 않습니다 . 공식적으로.
박희승 의원: 수석님은 2000명 증원을 언제 어떻게 알았습니까.
장상윤 사회수석: 증원 필요성에 대해서는 작년 11월, 12월부터 계속 복지부와 또 대통령실 간에 공감대가 있었고 다만 그 규모를 어떻게 할 거냐, 방식을 어떻게 할 거냐에 대해서 복지부가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박희승 의원: 복지부가 500명∼1000명 선에서 의료계와 물밑 조율을 하다가 강서구청장 선거 후, 이번 총선을 앞두고 대통령의 격노, 강력한 의지 표명 이후 의대 정원이 2000명으로 대폭 확대했다 이런 의혹이 있습니다. 대통령의 말씀 때문에 규모가 바뀐 것은 아닙니까.
장상윤 사회수석: 전혀 아닙니다.
# 또 '3개 보고서', 2000명 증원 근거 어디에도 없다
조규홍 장관은 이날 KDI 등 3개 보고서의 내용을 참고하여, 정책적 판단에 따라 2000명 의대증원을 결정했다고 했다. 판단의 근거가 무엇이냐는 국회의 자료제출 요구가 이어졌지만, 정부는 청문회가 끝날 때까지도 이를 내지 못했다.
박주민 위원장: 3개 논문에 2000명이라는 숫자가 있습니까.
조규홍 장관: 없습니다.
박주민 위원장: 유일하게 증원 규모를 적은 것은 KDI 보고서 뿐입니다. 보고서에 뭐라고 써있었나요.
조규홍 장관: 연간 4∼5% 선이 적당하다.
박주민 위원장: 4∼5% 정도 증원하면 숫자로 몇명입니까?
조규홍 장관: 150명에서 300명 정도 될 것 같습니다. (실제로는 122명~153명, 현 의대정원 3058명 기준)
박주민 위원장: 나머지 2개 보고서에 증원 규모가 있습니까.
조규홍 장관: 없습니다.
조규홍 장관: 3개 논문을 참고했다고 하는 것은 수급 전망에 있어서 2035년에 1만 명이 부족하다는 것을 참고했다는 것이고요. 1만 명의 수급을 맞추기 위한 정책적인 판단은 보건복지부장관의 책임 하에 정책적인 판단을 한 것이다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박주민 의원: 정부는 2000명이 꼭 필요한 숫자라는 거잖아요. 그래놓고 두 달만에 500명, 4분의 1일 뚝 줄여서 최종적으로 1509명 증원을 결정했어요. 그렇게 합리적으로 과학적이고 필요 불가결한 숫자였다면 어떻게 두 달만에 500명이나 줄입니까. 결국 4분의 1일을 확 줄일 수 있을 정도로, 아니 줄일 수 밖에 없을 정도로 막 정한 숫자, 주먹구구라는 얘깁니다.
서울고등법원에서도 2000명 결정에 대해서는 그 근거가 미흡하다고 판결문 곳곳에서 여러차례 지적하고 있어요. 정부의 주장대로 증원의 근거가 명확하다면 자료를 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