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켓을 쏘아 올려 지구 대기권을 뚫고 우주로 보내는 일은 수많은 난관과 위험을 극복해야 가능한 일이다. 비행기가 발명되고 불과 100여년만에 우주관광시대를 앞두게 된 것은 전적으로 과학기술의 힘이지만 과학기술이 모든 상황을 완벽하게 통제하고 위험을 제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수천명의 과학자들이 매달려 공을 들여도 예기치 못한 사고는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 TV로 생중계되는 도중에 승무원 전원이 사망한 챌린저호의 폭발사고는 훗날 가느다란 고무 링이 원인이었다고 알려졌다.
의사가 환자의 질병을 치료하는 일은 마치 우주선을 쏘아 올리는 것과 흡사하다. 과학적 근거에 기반해 질병을 퇴치하려고 힘쓰지만 의사가 모든 상황을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의료기술이 발달할수록 점점 더 고도로 위험한 시술이 늘어나기 때문에 오히려 위험부담은 더 커진다. 의학에서 치료성공률 70%라고 말할 때는 예기치 못한 상황과 의사의 통상적인 실수까지도 다 포함해서 나오는 수치이다.
그런데 요즘 법원의 판결을 보면 의사는 절대로 실수를 해서도 안되고 치료과정에 환자에게 악결과가 생기면 의사에게 책임지라고 한다. 어느 변호사가 자기 블로그에 요즘 법정에서 벌어지는 일을 올린 글이 있다. 수술 후 부작용을 호소하는 환자가 제소한 법정에서 신체감정에 이상이 없다는 판정을 받았는데도 환자가 고통을 호소한다는 이유로 판사가 화해조정을 권고했다.
치료를 한 의사가 완강히 거부하자 판사는 크게 화를 냈다. "아니, 피고는 의사잖아요. 의사가 그런 식으로 이야기하면 되겠어요? 피고는 자기가 백프로 완벽하게 시술했다고 자신할 수 있나요? 내가 의사들 언제 한번 불러 모은 자리에 가서 얘기를 해주고 싶어요. 그렇게 살면 안된다고!" 한국의 의료는 법원이 무너뜨리고 있는 것이다.
일부에서 정부가 추진 중인 의료사고특례법에 기대를 거는 듯한 주장들이 나온다. 정부안의 주요 골자는 '보험가입과 조정중재절차 참여시' 형사처벌 특례를 적용한다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조정중재에 참여하지 않으면 형사처벌한다는 뜻이다. 이 법이 통과되면 이제 의사들은 형사처벌 받지 않으려고 강제로 조정중재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상 조정중재 강제화법이다.
영국에서 의사생활을 한 박현미교수에 의하면 영국에서는 '정직한 실수'와 '살인'을 명확히 구분한다고 했다. '정직한 실수'는 어떤 악결과라도 죄를 묻지 않는다는 말이다. 죽음을 향해가는 환자를 살리려고 최선을 다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예기치 못한 사고를 모두다 형사처벌하면 이제 아무도 필수의료를 할 의사들은 없을 것이다. 우주선 폭발사고나 발사실패 할 때마다 관련자들을 모조리 형사처벌하면 누가 우주선을 개발하겠다고 나서겠는가?
우리는 의사를 너무 쉽게 형사법정에 세우고 너무 쉽게 형사처벌을 하고 있다. 오죽하면 환자들이 형사재판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민사소송을 제기한다는 말까지 나오는 지경이다. 우리는 선심 쓰듯이 던져주는 의료사고특례법에 환호할 것이 아니라 고의, 중과실을 검사가 입증하지 못하면 아예 기소조차도 하지 말라고 요구해야 한다. 그래야 필수의료가 살아난다.
형사처벌과 별개로 환자가 억울한 경우를 당해 누군가 배상을 해야 한다면 일을 시킨 사람이 배상을 하도록 해야 한다. 민사소송에 대비하는 것이 위험 비용인데 그 위험비용은 쥐꼬리만큼 의료수가에 녹아 들어 있다.
그리고 그조차도 병원에 지불하는데 위험비용 구경도 못해본 의사들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하라고 하는 현실은 잘못되었다. 수억대 소송의 위험에 대비할 수 있을 정도의 충분한 위험비용을 당사자인 의사들에게 직접 지불하던지 아니면 쥐꼬리 위험비용은 공단이 모두 가져가고 강제로 일을 시킨 건강보험공단이 민사소송의 직접 당사자가 되어야 한다.
모든 산업에서 소송에 대비하는 방어수단은 그 일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선택할 수 있는 권한과 위험에 대비해 가격을 결정할 수 있는 가격결정권이다. 선택권과 가격결정권을 모조리 봉쇄해놓고 수억대 배상비용을 의사 개인에게 책임지라고 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도 않다.
억울한 사정을 배상해주지 말라는 말이 아니다. 누군가 억울한 사정을 당했다면 당연히 배상을 해주어야 하지만 하려면 제대로 하라는 것이다. 일을 시키려면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달라.
우리는 의사이다. 죽음의 문턱을 넘나드는 환자들을 살리기 위해 보통 사람은 감당하지 못하는 스트레스를 오로지 홀로 감당하며 싸우는 전문가이며 과학자이다. 의사가 환자를 살리기 위해서 소신껏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달라는 것이 공허한 메아리가 되는 사회는 정상적인 사회가 아니다.
의사가 전문가로서 존중받고, 과학자로서 의사의 말이 신뢰받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의사가 존중받고 환자도 행복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 나의 꿈이다.
의사는 하나다. 우리 모두 함께 가면 멀리 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