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협 회장 누가 돼도 마찬가지라는 분들에게

의협 회장 누가 돼도 마찬가지라는 분들에게

  • 최승원 편집국장 choisw@kma.org
  • 승인 2025.01.08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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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협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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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용산구 이촌로46길 대한의사협회 의사 회관 대강당 복도 벽면에는 '명예의 전당'이 있다. 송암 심호섭 대한의사협회 1대 회장부터 이정근 41대 회장 직무대행까지 스물여덟장의 인물 사진이 이 벽면에 걸려 있다.

공식적으로 이곳이 명예의 전당이라 불리는 건 아니다. 역대 스물여덟명의 회장과 직무대행의 사진이 한 구역 가득 걸려있다보니 명예의 전당이라 불러도 손색없지 않을까하는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에서 이름을 붙여봤다.

손춘호 22대 회장까지는 흑백사진이고 그 이후는 컬러다. 식민지배와 전쟁 등으로 고단했던 한국 근대사를 겪었던 이전 흑백사진 속 회장과는 달리 컬러 사진 속 회장들은 여유가 있어 보인다.

2000년 의약분업 당시 의협 회장은 29·30대를 역임한 고 유성희 회장이었다. 이때 만해도 회장은 3년씩 6년 연임이 관례였다. 유성희 회장도 6년차 연임 임기 막바지로 접어들고 있었지만 의약분업 사태로 임기 몇 개월을 남기고 회장직을 불명예 사퇴했다.

유 회장 이후 의협 회장 자리는 더는 명예롭기만 한 자리일 수 없었다. 이후 25년간 의협 회장이나 직무대행을 거쳐간 이만 최근 강대식 42대 회장 직무대행까지 17명이다. 평균 임기는 1년 6개월. 3년에 연임까지 6년을 하던 이전 회장들의 임기를 고려하면 한 명의 회장 혹은 직무대행이 정상임기의 절반을 겨우 마치고 갈린 셈이다.

대통령제 국가에 살아서 그런지 적잖은 의사들은 의협 회장을 의료계 혹은 대한의사협회라는 행정부를 이끄는 대통령으로 인식한다. 대한민국 대통령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국정 철학에 기반해 검경과 같은 권력기관을 한 손에 쥐고 의회에서 여당의 지원을 받으며 정국을 주도한다.

공공기관장을 비롯해 나눠줄 자리만 수백개가 넘고 대통령의 쌈짓돈이라고 불리는 '특별교부금'으로 반대파를 회유할 수도 있다. 정치 성향에 따라 대통령과 한 편인 매체력좋은 언론도 있다.

대한민국 대통령에게는 무거운 책임만큼 막강한 권한이나 실질적인 통치 수단이 많아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말을 듣기도 한다.

대한의사협회장은 어떨까?

검경과 같은 권력기관은 고사하고 여당이라고 불릴만한 조직화된 지지 대의원도 없다. 여당없는 대통령이 홀홀단신 정국을 돌파해야 하는 셈이다. 자신의 소신을 회원들에게 전달할 매체력 좋은 언론도 마땅치 않다. 이렇다할 실질적인 '통솔(?) 수단'이 없다. 좀 심하게 말하면 오직 말과 논리로만 다양한 이해관계에 놓인 의료계 당사자와 나아가 정부, 의회 관계자를 설득하고 입장을 조율해야 한다.

혹자는 '250여명의 대의원과 시도의사회장들, 각 직역 의사회 대표들과 소통하며 의료계 전체를 위해 사심을 버리고 일하면 된다'고 얘기하기도 하지만 이런 말은 의협 회장이 가져야 할 기본 덕목일 뿐이다. 복잡한 이해관계와 입장이 실타래처럼 얽힌 현실 커뮤니티를 이끌 수 있는 실질적인 수단이나 방법이 아니다.

현실 세계에서 오직 말씀과 논리만으로 한 커뮤니티를 이끌 수 있을까? 2000년 전에 한 분 계셨던 것 같다. 예수가 그랬다.

시대가 바뀌며 새로운 역할이 의협 회장에게 요구됐지만 의협 회장의 '통솔 시스템'은 25년전 그 시대 그대로 머물러 있다. 시스템 개편이 시대에 따라 절실했지만 인물을 교체하는 것에만 관심이 집중된 탓이다.

이른바 '의료계'라고들 하지만 의료계는 단일한 성격의 커뮤니티가 아니다.

27개 전문과목마다 이해가 얽혀있고 개원의와 봉직의, 전공의 등 직역에 따른 입장차는 25여년전보다 더욱 복잡하게 꼬여있다. 의료계는 이른바 '북경 나비의 날갯짓이 뉴욕에 폭풍을 일으킬 수 있는' 복잡계의 영역이다.

수많은 주체가 어떻게 행동했느냐에 따라 각 주체가 영향을 주고 또 그 영향을 받으며 나비의 날갯짓이 폭풍을 몰고 오는 세상이 의료계란 얘기다. 이런 복잡계의 세상이지만 의협의 운용시스템은 25년 전 그대로다.

의협 회장의 리더십 운용시스템에 개선이 없다면 의협 회장의 길은 누가 돼도 고난의 연속일 수 밖에 없다.

대한의사협회가 한 단계 업그레이되려면 의협 회장이 의료계를 주도할 수 있는 의사결정 시스템이 도입돼야 한다. 그 시스템은 최소한 각 직역과 전문과 등 의료계의 각 이해당사자의 입장이 논의되고 일정한 절차에 따라 이견이 조정됐다는 형식적 완결성이 확보돼야 한다.

의협 회장은 이런 결정을 단계적으로 밟으며 커뮤니티를 조율하고 통합해야 한다. 생각같아서는 각 전문과목 대표와 직역 대표들이 참여한 협의체 같은 기구의 설립도 고민해야 한다.

운용시스템에 대한 개선없이 인물탓만 하다가는 '누구를 뽑아도 마찬가지'라는 냉소만이 짙어질까 우려된다.

오늘(8일)은 43대 대한의사협회 회장이 선출되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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