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직 서울대 교수, '의료 수요와 공급' 경제학적으로 접근
"현재도, 미래도 의사 부족하지 않다…미래 의료수요 충족 가능"

국내 연구진의 의사수 추계 연구 '논문'이 또 나왔다. 이번엔 경제학적으로 접근한 연구다.
경제학자인 김세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앞으로 10년간 의료 서비스의 '수요와 공급'을 예측한 결과 의대정원을 늘리지 않아도 미래 의료 수요를 충족할 수 있다는 내용의 논문을 발표했다. 해당 논문은 연세의학학술지(Yonsei Medical Journal, YMJ)에 12일 실렸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의 추계 연구에 이어 국내 학술지에 의사수 추계 연구 논문이 재차 실리면서 공신력을 확보한 근거가 잇따라 나오고 있는 셈이다. 의사수 추계를 위한 변수도 다양해지고 있다.
정부는 정책 연구 보고서 3편을 근거로 의사가 1만여명 부족하다며 올해부터 5년 동안 2000명씩 늘리겠다는 정책을 발표해 추진하고 있다.
연구진은 "현재 의료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10년 후 예상되는 의사 부족에 대해 대중이 신뢰하고 동의할 수 있는 객관적인 예측이 필요한데 현재까지 의사 부족에 대한 객관적 예측을 제공할 수 있는 모델은 거의 없었다"라며 연구의 배경을 설명했다.
연구진은 의료 서비스를 수요와 공급으로 나눠 향후 10년 동안의 성장률을 분석, 비교했다. 10년 안에 의사 부족 현상이 일어날지는 '현재' 의사 부족 현상이 발생하는지, 의료서비스 증가율이 공급 증가율을 넘어설 것인지 달려있다고 본 것.
즉, 현재 의료 서비스 공급이 수요를 충족하지만 수요가 공급보다 더 빠르게 증가한다면 의사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의대 입학 정원을 늘려야 한다. 반대로 공급이 수요보다 빠르게 증가하면 기존 공급으로도 충분하기 때문에 의대정원 확대의 필요성은 없다.
연구진은 OECD 통계를 활용해 현재 의료서비스 수요와 공급의 양과 질을 확인한 결과 현재 의사수가 부족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결론지었다. "우리나라 인구 1000명당 의사수는 2.6명으로 OECD 평균 보다 눈에 띄게 적지만 높은 노동 생산성과 질 높은 의료서비스가 결합돼 현재 우리나라가 의사 부족에 직면해 있지 않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또 "우리나라는 의사보다 의료장비에 크게 의존하는 자본 집약적인 생산방식을 사용하고 있는데 이를 채택하면 의사 1인당 의료서비스 생산량이 증가한다"라며 "데이터를 검토하고 이용 가능한 모든 증거를 고려할 때 우리나라가 현재 심각한 의사 부족에 직면해 있다는 주장을 객관적으로 뒷받침하는 근거를 찾기 힘들다"고 했다.
그렇다면, 미래는 정부의 말대로 의사수가 진짜 부족해질까.
우선 수요 영역에서 보면, 연구진은 미래 의료서비스 수요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고령인구의 급격한 증가와 전체 인구의 현저한 감소라는 통계청의 전망을 갖고 왔다.
연구진은 "전체인구 감소는 의료수요를 감소시킬 것으로 예상되지만 고령인구 증가는 수요를 증가시킬 가능성이 높다"라며 "총인구가 감소하고 있음에도 노인 인구 증가가 다른 인구 집단 감소를 앞지르면 의료수요가 증가할 수 있다"고 전했다.
구체적으로 미래 인구통계학적 예측을 바탕으로 의료수요는 10년 동안 매년 1.7%씩 증가할 것이고 노인과 노인이 아닌 인구 집단의 의료수요의 연간 성장률은 1.3~1.9%라는 전망을 내놨다.
공급 측면에서는 기술, 자본, 노동이라는 3대 요소에서 변화를 예측했다. 이 중 노동 부분에 대한 변화만 살펴보면 2006년 이후 의대 정원은 3058명으로 고정된 상태에서 근무기간 연장으로 현역 의사 수는 연간 평균 2670명씩 늘었다. 연구진은 2010~2020년 의사수 증가 추세가 점차 감소했기 때문에 앞으로도 감소 추세는 계속될 것이라고 가정하고 종합하면 앞으로 10년 동안 의사 성장률은 연간 1.8% 정도로 추정했다.
연구진은 3대 요소 변화를 예측하며 '보수적'으로 접근했다는 점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보수적인 추정치와 방정식을 사용해 향후 10년간 의료공급 증가율을 계산하면 연평균 3.2%가 나왔다.
결국 의료공급 증가율은 연평균 3.2%인데 수요 증가율은 1.3~1.9% 수준이기 때문에 적어도 10년 안에 의료서비스 공급이 수요를 충분히 충족시킬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의료기술 발전, 의료장비 증가, 의사 인력의 자연 증가로 인한 공급 증가는 의대증원을 확대하지 않고도 미래 의료 수요를 충족할 수 있다는 소리다.
김세직 교수는 "정부와 의료계의 건설적인 대화를 위한 기반을 제공하기 위해 의사 부족을 합리적인 방식으로 예측하려는 새로운 추계 모델을 적용했다"라며 "이번 연구에서 제시한 뼈대(famework)를 사용해 의사 수요와 공급 수치 이면의 구체적인 가정을 명확하게 설명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런 투명성을 통해 국민은 어떤 가정이 더 합리적이고 현실적인지 평가할 수 있고 궁극적으로 객관적인 데이터 기반 예측을 통해 의료 위기를 해결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