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 투자 없이 제도만 바꾸려 하는 '한국식 지불제도' 비판
바의연 "의료계 협의 전제, 치밀한 설계 및 단계적 실행 필요"

진료비 지불제도를 개편할 때 전체 보건의료시스템 개선의 한 요소로 종합적으로 다뤄져야한다는 의료계의 제언이 나왔다. 미리 진료비 지불제도 개편을 시행, 운영중인 미국과 영국 등 해외에서도 의료재정 확충과 전달체계 정비, 의료진 참여 유도책 등과 함께 병행됐다는 점을 짚으면서다.
바른의료연구소 11일 '정부가 추진하는 지불제도 개편안의 문제점과 해외 사례 분석을 통한 올바른 방향 제언'이라는 자료를 통해 미국과 영국, 독일, 네덜란드 등 진료비 지불제도 개편을 우선 시행한 나라에서의 사례를 비교했다.
구체적으로 미국의 성과기반지불제(P4P), 묶음지불제, 책임의료조직(ACO) 도입사례, 영국의 NHS의 QOF 성과보상제, 독일의 포괄수가제(DRG) 도입 및 만성질환 관리 개편 사례, 네덜란드의 일차의료 중심 만성질환 통합관리 및 지불제도 개편 등을 언급했다.
미국의 성과기반지불제는 의료서비스의 결과에 따라 인센티브나 패널티를 부과하는 제도다. 의사의 질적 성과와 자원 활용 효율성을 종합 점수로 평가해 보상하는 체계로 만들어졌다.
묶음지불제는 특정 질환이나 시술 단위를 묶어 일괄 비용을 지불하는 제도다. 대표적으로 입원부터 퇴원 후 일정기간까지 발생하는 모든 진료비를 하나로 묶어 90일을 기준으로 정액을 지급하는 모델이다.
책임의료조직은 병원, 의사 등 의료제공자들이 하나의 조직으로 묶여 특정 인구 집단의 토털 케어를 책임지는 모델이다. 일정 지역 노인의 의료비 총액을 목표치 이하로 유지하면서 질적 지표를 충족하면 절감된 비용을 의료진과 공유하는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식을 사용하는 지불제도다.
영국의 QOF 성과보상제는 모든 일반의(GP) 의원을 대상으로 임상의 질과 환자관리 성과를 평가해 매년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대규모 P4P 프로그램이다. 영국의 GP들은 환자등록과 기본공급자 계약에 따른 고정급을 받으면서 추가로 QOF 점수에 따라 성과급을 받게된다.
이밖에 영국은 혼합지불제도 도입을 유도하고 있다. 일정 수준의 고정예산을 병원에서 보장하면서, 그 외 진료 활동량에 따라 변동지불을 결합한 모델이다.
포괄수가제를 도입한 독일은 2003년부터 연방 보건당국은 전국 병원 입원 환자를 진단군별로 묶어 정액을 지급하는 DRG 시스템을 시행해 병원들이 료비용을 사전에 예측하고 평균적인 진료행태를 따르도록 유도하고 있다.
만성질환 관리 측면에서는 질병관리프로그램(DMP)을 도입해 1차 의료 의사가 등록 환자의 당뇨, 고혈압 등 만성질환을 지속 관리하면 보험자가 별도 수가를 지원하도록 하고 있다.
네덜란드는 강력한 일차의료와 민간보험 기반의 의료체계를 바탕으로 만성질환 통합관리에 초점을 맞춘 지불제도 개편을 시행하고 있다.
2007년부터 네덜란드는 당뇨병, 만성폐쇄성폐질환(COPD), 심장질환 등 만성질환에 대해 케어그룹(care group)이라는 일차의료 제공자 연합을 구성하고, 이들에게 질병별 묶음지불(bundled payment)을 제공하는 모델을 도입했다.
바른의료연구소는 "미국의 ACO나 P4P, 영국의 QOF, 독일의 DRG, 네덜란드의 만성질환 묶음관리 등은 일부 긍정적 성과에도 상당한 한계와 부작용이 존재했다"며 "어느 한 국가에서는 효과적이었던 제도도 다른 나라의 의료 환경에서는 맞지 않을 수 있다. 각국의 제도 도입 배경에는 그 나라만의 의료전달체계, 재원 구조, 문화적 요소가 반영되어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해외 사례들은 대체로 지불제도 개편과 함께 의료재정 확충, 전달체계 정비, 의료진 참여 유도책 등이 패키지로 시행됐다"며 "한국 정부처럼 재정 투자 없이 제도만 바꾸려 하거나, 의료이용 행태나 전달체계 개선 없이 지불제도만 바꾸면 목표를 이루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최근 대한의사협회 조사에서 의사들의 90.5%가 정부의 성과 및 가치기반지불제 개편안이 의료의 질 향상이나 비용 절감에 기여하지 못할 것이라며 부정적으로 평가한 점과 과반수 이상(58.3%)의 의사는 미국식 ACO 모델을 한국에 적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꼽은 점도 언급했다.
바른의료연구소는 "지불제도 개편은 전체 보건의료시스템 개선의 한 요소로 종합적으로 다루어져야 한다"며 "의료계와의 협력과 대화를 전제로 한국 실정에 맞게 치밀한 설계와 단계적 실행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