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솔직하게 하는 힘, 음악…

나를 솔직하게 하는 힘, 음악…

  • 김은아 기자 eak@kma.org
  • 승인 2008.01.21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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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용(서울 서초·이범용신경정신과의원)

"상은 받을 줄 알았다. 예선 탈락이 아니라면 대상일 거라고 생각했다. 나도 그 정도 쯤은 안다."

'꿈의 대화'의 주인공 이범용 원장은 1980년 '꿈의 무대' 대학가요제에서 대상을 차지할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하지만 그 두둑한 배짱은 다 어디로 가고 음악을 그토록 좋아하면서도 지금은 무대가 아니라 진료실을 지킨다.

알고보면 영화도 할 뻔했다. 같은 학교 출신 최인호 작가의 <바보들의 행진>이 영화화되면서 주인공 병태 역에 내정됐던 사람은 사실 의대생 시절 이 원장이었다.

"원래 할 생각도 없었지만, 주위 사람들이 말렸다. 수호 형(주수호 대한의사협회장)은 어떻게 먼저 알고 '절대 하지 말라'며 으름장까지 놨다. 거참, 수철(가수 김수철-병태 역을 맡음)이가 나한테 밥을 사야 돼."

딴따라에 대한 주변의 따가운 시선? 엄한 아버지의 반대? 그 이유가 무엇이었든지 간에 계속 음악을 했더라면 "쫄딱 망했겠지", "지금쯤 아무도 날 기억하지 못할거야", "광석이나 현식이-가수 김광석과 김현식, 아시다시피 그들은 애석하게도 일찍이 세상을 떠났다-처럼 됐을지도" 모르니, 잘 한 선택이었다고 해야 하려나.

그는 여전히 곧잘 방송사의 부름을 받는 '인기 가수'다. 무슨 복을 받았는지, SG워너비란 인기 절정의 가수가 그의 하나뿐인 히트곡을 리메이크해 대박을 쳤다. 덕분에 그는 최근까지도 '7080가요스페셜''열린음악회''연말 가요대상' 같은 이벤트에 초대받아 까마득한 후배들과 어깨를 나란히한다.  

"제4회 MBC 대학가요제 대상! 참가번호 16번, 이범용·한명훈!"에서 "SG워너비의 리메이크곡 원작자"로 무대에 오르기까지 꼬박 3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대충 두른 듯한 청바지와 웨스턴부츠에서 제법 말끔한 정장과 넥타이는 시간의 흐름을 보여주는 것이리라.

하지만 인생의 무대에선 여전히 '꿈속엔 외로움이 없단다 서러움도 없어라'를 읊조리던 그 시절의 분위기가 묻어난다. 단지 그 시절에 군부독재의 암울한 시대상이, 가부장제에서 오는 억압적인 집안 분위기가 있었다면, 지금은 쉴새없이 담배 연기를 내쉬는 모습에서 인생의 고단함이 묻어날 뿐이랄까.

"딴따라는 내 길이 아니었다. '꿈의 대화'는 슬픈 노래였는데, 사람들은 밝은 느낌이 좋다며 대상을 줬다. 그래서 '아, 나는 이 길로 나가면 안되겠구나'했다."

집안 상황도 음악에 빠지는 것을 허락치 않았다. 고위공무원이었던 아버지의 반대가 얼마나 심했냐면, 그의 "머리통에서 기타 세 대가 깨져 나갔"을 정도다. 대학가요제 참가 에피소드라면 그런 아버지가 대학가요제에 출연하겠다는 아들을 말리기는 커녕, 대회장까지 차로 데려다주셨다는 것. 나아가 대상을 받자, 방송을 녹화해 돌려보기까지 하셨다. 비록 대회에 참가하느라 유전학 시험을 못봐 의대를 1년 더 다녀야만 했더라도 그럴만한 가치는 충분했다.

"내가 이젠 더이상 노래 안 할 거란 걸 아신거지. 대상까지 했으니 음악을 더 할게 무어 있나 말이야."

'노래'에는 그를 솔직하게 하는 힘이 있었다. 학창시절 나름대로 '반항아'였지만, 드러내놓고 아버지에게 반항할 수 없었고 시대에 항거할 수 없었다. 하지만 노래에서만은 그랬다.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없던 시절, 노래에선 평소에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었지. '꿈의 대화'는 그런 노래야. 현실에서 못하는 말을 꿈에서 마음껏 해보자는. 내 꿈에선 내가 주인공일 수밖에 없지만, 네가 들어와서 함께 주인공이 되어 보자고."

노랫말에서 '의미를 따지는' 그가 사실 의약분업 집회나 의료법 궐기대회 등 정치적인 무대에서 망설임없이 기타를 꺼내들었다는 점은 조금 의아한 부분이다.

"가급적 무대에 잘 안 나가려고 한다. 자꾸 나가면 식상해져서. 흐흐. 앞으로는 모교나 의대 행사, 의사들 모임에서만 노래할 생각. 왜냐구? 난 의사를 하는 게 정말 좋거든. 날 의사로 만들어준 게 고마워서 불러주면 노래할 거다."

정신과 의사와의 인터뷰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기자에게 "돈 받고 얘기하는 거 아니면 남이 하는 말에 피곤하게 신경 안쓰다"며 너스레를 떠는 그는 진료실에선 정통 치료법을 고집하는 정신과 의사다. 정신과를 택한 건 "몸이 아니라 사람에 관심이 있어서"라는데, 정신과 의사가 정말 적성에 맞는 지 일부러 찾아오는 환자들도 제법 눈에 띈다.

하지만 그를 잊지 못하는 팬들은 병원 보다는 무대에서 그를 보고 싶어할 터. "상업적인 노래는 영 불편하다"고 할 지언정, 그렇다고 감질맛나게끔만 무대에 오를 것 까지는 없지 않나 질문을 던져본다. 중학교 1학년 때 첫 자작곡을 완성했다면, 지금까지 빛을 보지 못하고 묻혀있는 주옥같은 곡들이 수십여 곡은 될 것이 아닌가 말이다. 그때 그 시절, 만약 가수가 됐더라면 '마이클 잭슨'은 못돼도 '밥딜런'은 충분히 됐을테니까. 일단 "앞 일은 알 수가 없으니 딱히 뭐라 말할 수 없다"는 그의 대답에 희망을 걸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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