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잃고 외양간 고치기 "사법리스크도, 병협도 빠져야"

전공의 잃고 외양간 고치기 "사법리스크도, 병협도 빠져야"

  • 홍완기 기자 wangi0602@doctorsnews.co.kr
  • 승인 2025.03.04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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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윤정 교수, 사직전공의 "고용주 병협 산하 수평위, 옳지 않다"
서울대병원 응급의학과 고년차 전공의 21명 중 12명 '경찰조사'
정부, 의료사고 책임보험 기본 구조 가닥 "기관 책임·국가 지원 전환"

4일 국회에서 열린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과 의료사고 안전망 확충을 위한 정책토론회(국민의힘 서명옥 의원 주최)'에는 사직전공의와 대학 교수, 법조인, 정부 관계자 등이 두루 참석해 그간 방치돼 온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 방안을 논의했다. ⓒ의협신문
4일 국회에서 열린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과 의료사고 안전망 확충을 위한 정책토론회(국민의힘 서명옥 의원 주최)'에는 사직전공의와 대학 교수, 법조인, 정부 관계자 등이 두루 참석해 그간 방치돼 온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 방안을 논의했다. ⓒ의협신문

전공의들이 떠난 지 1년 여. 전공의들의 수련환경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는 격' 이지만 돌아올 전공의들을 기다리며 실패한 '외양간'을 또다시 재연하지 말자는 데 의견이 모였다.

4일 국회에서 열린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과 의료사고 안전망 확충을 위한 정책토론회(국민의힘 서명옥 의원 주최)'에는 사직전공의와 대학 교수, 법조인, 정부 관계자 등이 두루 참석해 그간 방치돼 온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 방안을 논의했다. 

전공의에 과도한 법적 책임을 지우고 있는 현실과 수련환경 평가를 제대로 할 위원회의 독립성 미확보 문제가 가장 큰 문제점으로 떠올랐다. 

전공의 잃고 외양간 고치기 1. 수련환경평가위원회 독립성 확보

허윤정 단국의대 교수(단국대병원 외상외과)는 발제자로 참석, 전공의 수련환경을 평가하는 법정 위원회인 '수련환경평가위원회(수평위)'의 문제점을 꼽았다.

허윤정 교수는 "수평위는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수평위가 전공의 고용주들의 협회인 대한병원협회 산하에 있다는 점이고, 전공의 대표가 위원회 15명 위원 중 단 2명에 불과하다는 점"이라면서 "위원회는 병협으로부터 독립적으로 운영돼야하고, 위원 역시 전공의 과반이 이뤄져야 한다"고 꼬집었다. 

수평위는 보건복지부 산하에 있는 기구이지만, 현재 대한병원협회에서 위탁 운영 중이다. 위원회가 '고용주' 위주로 운영되다보니, 위원회를 통한 실질적 개선이 전무하다는 지적이다.

의료사태로 인해 병원을 떠났던 사직전공의들 역시 패널로 참석, 위원회 독립성 확보 필요성에 적극 공감했다.

박재일 사직전공의는 "대전협뿐 아니라 교수단체에서도 수평위에 전공의 추천 위원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건복지부로부터도 독립돼야 한다는 의견이었다"면서 "정부는 보건복지부 지정 위원을 오히려 3명에서 5명으로 확대했다. 전공의 수련환경을 개선하고자 구성한 위원회에서조차 전공의 의견이 배제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수련환경평가위원회의 공정성·독립성 확보가 중요하다"면서 "평가를 통해 지도전문의 정부지원금 삭감을 하는 등 전공의 수련환경의 실질적인 감독이 이뤄질 필요가 있다"고도 제언했다.

김찬규 사직전공의 역시 "독립된 수련환경평가가 이뤄져야 한다. 특히 수련평가 기관은  '바텀 업' 방식의 당사자 평가 수련 환경평가 시스템이 필요하다"며 "병원 스스로 수련제도를 개선할 수 있는 유인책이 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라도 필요한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전공의 잃고 외양간 고치기 2. 전공의 사법 리스크 보호 방안 마련

박재일 사직전공의, 김찬규 사직전공의 ⓒ의협신문
박재일 사직전공의, 김찬규 사직전공의 ⓒ의협신문

의료소송에 대한 전공의 부담 완화 필요성에 대한 논의도 이어졌다. 최근 데이트폭력범과 공동배상을 결정한 사건 등 전공의들에게 의료사고는 공포로 다가오고 있다는 지적이다. 

의료사고에 부담은 곧 의료사고 발생 확률이 높은 필수과 기피 현상으로 이어지는 만큼,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박재일 사직 전공의는 서울대병원 응급의학과 고년차 전공의 21명 중 12명은 수련 과정에서 경찰조사를 받은 경험이 있다는 설문 결과를 전했다. 응급의학과 전공의들에게 '의료소송'은 흔하게 일어나는 일이란 것.

박재일 사직 전공의는 "응급의학과 전공의들은 그 사실을 알고도 지원했던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 극심한 상황에서 누가 더 지원을 하겠느냐"면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수련병원에서 법적 책임을 부담하는 것을 제도화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최근 전공의에 의료사고에 대한 책임을 더 부과하는 경향이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허윤정 교수는 "최근 1,2년 사이 전공의에 의료사고 책임을 더 부과하는 경향이 늘어난 것 같다. 매일매일 다른 종류의 판례가 발표되고 있을 정도"라면서 "의료행위를 하도록 내몰린 전공의가 책임부담의 주체가 되는 것은 부당하다. 피교육자이자 수련생인 전공의가 대학병원에서 단독 의료행위를 하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상급자의 체계적인 교육·관리·감독에 대한 책임 강화와 함께 적어도 전공의가 단독으로 책임을 지지 않도록 하는 감형 제도 등이 필요하다"고도 덧붙였다.

의료행위가 '선한 의도'에서 시작된다는 점에 방점을 둬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김남렬 고대구로병원 응급중환자외상외과 교수는 "중환자실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자조적으로 '병원과 구치소 사이에서 일하고 있다'고 한다"며 "의료행위에 대한 악결과가 발생했을 때, 환자의 해부학적인 요인 등 인과관계가 너무 많아서 직접적으로 연결하는게 사실은 굉장히 어렵다. 작은 차이, 변수들이 결국 큰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말했다.

"의사가 환자의 질병을 고치려는 선한 목적으로, 이타적인 노력을 하고 있다는 기본이 가장 중요한 점"이라면서 "이런 요소를 무시한 채 의료사고를 교통사고와 비슷하게 취급하는건 사회적으로 해결돼야 할 문제"라고 강조했다.

전공의 수련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 전환이 필요하며 국민적 설득은 정부와 의료계가 함께 노력해야 할 부분이라는 제언도 나왔다. 

유화진 변호사(유화진 법률사무소)는 환자 동의 없이 분만을 참관한 이유로 전공의가 손해배상을 청구했던 사건, 이대목동 신생아 사망사건에서 법원이 무죄를 선고하자 모든 언론이 비난을 쏟아냈던 사건 들을 언급했다.

유화진 변호사는 "해당 사건 이후 실제 소청과 지원을 하지 않게 됐고, 많은 병원에서 소아 야간 진료를 하지 않겠다는 얘기도 나왔다. 형사처벌이 의료인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던 사례"라며 "무분별한 특례가 아니라 실증된 사례를 중심으로, 국민의 생명과 맞물려 있는 사안임을 인내심 있게 설득해야 한다. 의료진의 권익과 안전의 균형점을 찾을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조언했다.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 교육의 질 담보 함께 논의돼야"

박치민 삼성서울병원 중증치료센터장 ⓒ의협신문
박치민 삼성서울병원 중증치료센터장 ⓒ의협신문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수련이나 교육의 질 담보가 함께 논의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박치민 삼성서울병원 중증치료센터장은 "수련은 특정 과목의 전문가가 되기 위한 과정이다. 근무환경 개선이 틀림없이 중요하지만 수련의 질적 유지가 동반돼야 한다"며 "단순히 시간만 줄이는 것은 오히려 수련의 질적 하락이 동반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특히 외과의 경우 술기나 수술에 대한 경험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대한외과학회의 사례를 예로 들기도 했다. 외과학회는 2019년부터 수련기간을 3년으로 단축, 수련 시간을 사실상 4분의 3으로 감소한 바 있다.

박 센터장은 "역량 중심의 수련과정을 도입하면서, 수련 시간을 감소하면서도 질은 유지하고자 노력했다. 여기서 더 전공의 수련 시간을 줄인다면, 그것을 유지할 수 있을지에 대해선 고민이될 수 밖에 없다"며 "수련평가 역시 양적 평가와 함께 질적 수련을 향상하고 있는가에 초점을 둬야 한다"고 짚었다.

정부, 의료사고 책임보험은 기관 책임·국가 지원 전환 기본 구조… 전공의 예산 4000억, 수련체계 혁신으로 이어져야

강준 보건복지부 의료개혁총괄과장 ⓒ의협신문
강준 보건복지부 의료개혁총괄과장 ⓒ의협신문

정부는 의료사고 안전망과 책임보험 도입 필요성을 연계하는 모습을 보였다. 의료사고심의위원회(가칭)를 구성, 불기고 권고를 결정하는 구조도 고민 중이라고 밝혔다.

강준 보건복지부 의료개혁총괄과장은 현재 의료개혁특별위원회에서 의료사고 안전망과 관련 의견을 조율 중임을 알렸다.

강준 과장은 "책임보험이나 공제에 가입하고 있는 비율이 전체 의료기관의 30%에 그치고 있다. 의료사고 위험 발생 시 충분한 배상을 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고, 필수과의 경우 타과에 비해 최대 10배 이상의 보험료를 부담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책임보험 가입 의무화가 규제적인 요소일수도 있지만 이를 통해 개인이 부담해야할 책임이 기관의 책임으로 전환되고, 필수분야에 대해서는 특별히 배상할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책임보험이기에 국가의 재정적인 지원이 가능한 구조로 만들어질 수 있다"면서 책임보험 가입 의무화의 필요성을 짚기도 했다.

올해 정부의 전공의 수련 지원 예산이 4000억 정도로 크게 늘었음도 언급했다.  해당 재정이 수련체계의 근본적인 혁신을 이끌 마중물이 돼야 한다는 의견을 함께 전했다.

강준 과장은 "재정 지원이 일회성으로 끝나거나 현장에서 구체적인 수련체계 혁신으로 이어지지 못한다면 또 다른 문제를 낳을 것"이라면서 "수련의 질에 대해 평가하고, 관리할 수 있는 체계로까지 연결돼야 이번에 수련체계 혁신에 투여된 재정이 구체적인 현장의 변화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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