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한림 GSK 종양 분야 메디컬디렉터
남편은 나를 보고 평생 자기가 하고 싶은 일 하면서 돈을 버는 행복한 사람이라고 한다. 병원에서 일하다가 연구소로 갔다가 이번에는 회사라니.
늦은 나이에 제약업계에 발을 들여놓고 많은 것을 배웠다. 병원에 있었으면 절대로 배울 수 없는 것들과 병원 밖에서 의사를 필요로 하는 곳이 정말로 많다는 것. 제약회사는 그래도 병원과 가장 가까운 바깥이고, 언론계·정계·경영계 등 의사가 필요한 곳은 정말 많다.
의사로서 다른 직종에게 조언을 주는 것과 그것이 자기의 직업이 되는 것은 천양지차이며 절대적인 사회가치를 부여한다.
회사는 팀워크를 중시하므로 의사 중심의 병원과 많이 다르다. 이곳에서 구조를 배우고, 때로는 리더로, 때로는 리더를 돕는 보조자로서 일하면서 한 명의 엘리트보다 여러 팀원의 결속이 사회의 발전에 기여함을 저절로 알게 된다.
처음 가장 어려웠던 것 중의 하나는 PDP(performance development plan)를 작성하는 것이었다. 회사에서는 모든 사원들이 연초에 PDP를 짜면서 1년간 무슨 일을 할 것인지 계획을 세워야 한다.
PDP는 자기의 상관과 부하의 것이 모두 일맥 상통하여야 한다. 회사의 그 해 전략에 입각한 자신의 계획과 행동지침을 명문화해 상관과 합의를 이루어야 하며, 연간 2~3회의 평가 과정을 거쳐 업적에 대한 검증을 받는다. 지극히 조직적인 사회이며 이를 통해 목표를 객관적이고 구체적으로 이루어간다.
환자 보고 논문쓰는 일 대신 팀워크의 성취도나 팀원의 자질 개발 정도 등으로 평가를 받다니 놀라운 일이었다. 그러나 병원에서 단지 성실하고 남을 잘 도와주는 사회적인 선으로 평가받던 부분들을 업무 성취로 인정받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회사는 일의 내용도 중요하지만 과정을 그 이상으로 중요시한다. 처음 회사에 와서 SOP나 policy를 개발하면서 시간 낭비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것들이 근간이 되지 않고는 일이 잘 되지 않는다는 것도 배웠다.
다국적 회사에서 일하면서 다른 나라 사람들의 문화와 사고가 어떻게 다른지, 한국인의 장점은 무엇인지도 알게 됐다. 한국인은 일반적으로 지적이고 열성적이며 꾸준하지만, 논리에 서툴고 감정 조절에 취약하다는 단점이 있다. 서로 다르지만 같이 잘도 일한다.
1주일에 3~4회 미국·영국·싱가포르·일본과 같이 하는 화상회의는 항상 한국의 저녁시간에 열리고, 한 달에 2~3회씩 출장을 다니다보면 한국 사회에서 요구하는 사회적 동물이 되기는 글렀다.
하지만 병원에만 있었더라면 평생 몰랐을 일들을 배우고, 내가 가진 지식과 새로 얻은 사회적 스킬로 회사에 적응하고 기여하며 재미있게 잘 지내는 내가 스스로 대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