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련병원은 전공의 목줄 쥔 착취 현장? "이정도였나"

수련병원은 전공의 목줄 쥔 착취 현장? "이정도였나"

  • 홍완기 기자 wangi0602@doctorsnews.co.kr
  • 승인 2025.03.10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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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20시간 '빡빡한' 하루 일과, 수련과정 절반도 못배워
박단 위원장 "전공의법 제대로 고치고, 벌칙도 강화해야"

'근무하느라 밥을 못 먹어 태아에 미안해 울고 있는 임산부'
'코로나19 후유증에도 120시간 연속 근무를 하고 있는 환자'
'상사의 폭언과 부당 지시에도 아무 말 할 수 없는 근로자'

모두 전공의들의 사연이다. 의료사태 속 병원 현장을 떠난 전공의들의 입을 통해 열악한 수련환경에 대한 생생한 고증이 나왔다. 의대증원에만 초점을 뒀던 의료사태. 사태 당사자인 전공의들은 심각한 전공의 수련환경에도 눈을 돌려달라며 개선을 촉구하고 나섰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과 사직전공의들은 10일 대한의사협회·대한전공의협의회·국회 보건복지위원회·국회입법조사처가 공동으로 주최한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 토론회에서 전공의들이 처한 현실을 밝혔다. 실질적 개선이 될 수 있도록 제대로 된 전공의의 수련환경 개선 및 지위 향상을 위한 법률(전공의특별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제언도 내놨다.

"세브란스 산부인과 임산부 전공의들의 절절한 사연"

김준영 사직전공의(전 순천향대학교병원 전공의협의회장) ⓒ의협신문
김은식 사직전공의(전 세브란스병원 전공의협의회장) ⓒ의협신문

김은식 사직전공의(전 세브란스병원 전공의협의회장)는 임산부였던 세브란스 산부인과 전공의 동료의 사례를 먼저 전했다.

임신 사실을 알게 된 A전공의는 임신 초기부터 출산 수일 전까지 다른 전공의들과 똑같이 일했다. 야간 당직 근무를 포함해 36시간 연속 근무가 강제됐다. 의국에서는 '역사상 임신한 전공의가 당직 및 시간 외 근무를 하지 않았던 적이 없다'며 당직을 설지 말지 본인이 선택하라면서 암묵적인 강요를 했다.

B전공의 역시 임신 초기부터 당직을 섰고, 어느날 퇴근길에 복통을 느껴 응급실에서 응급 제왕절개 수술을 받았다.

김은식 사직 전공의는 "임산부 전공의의 과중한 업무 문제는 작년 언론을 통해 보도되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세브란스 소아청소년과 C전공의는 임신한 상태에서 1시간 가까이 심폐소생술을 진행, 유산에 대한 두려움을 느꼈다. 환아가 살아나고, 후속조치를 끝낸 뒤에야 태아에 대한 미안함으로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며 "세브란스 내에 다른 과들에서도 산부인과 등의 사례를 참고하여 임신한 전공의들에게 임신한 초기부터 출산 직전까지 당직을 서도록 하여 문제가 된 바 있다"고 꼬집었다.

현행 근로기준법 제70조 제2항 제74조 제5항에 따르면 임산부는 본인이 명시적으로 청구하지 않는 한 야간 근로 및 시간 외 근로가 금지돼 있다. 

"코로나19도 소용없다? 후유증 속에도 계속된 주 120시간 근무"

세브란스 가정의학과 전공의였던 김은식 사직전공의는 2022년 국민건강보험공단 일산병원 소아청소년과에 파견 근무를 하고 있었다. 7월 20일 오전부터 38도 이상의 발열과 인후통, 전신 근육통 증상을 보였다. 퇴근 후 시행한 검사에서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은 뒤 일주일간 자택에 격리조치 됐다.

문제는 그 이후였다. 여전히 코로나19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던 상황. 당시 일산병원 소청과에서는 격리기간 중 근무를 하지 않았으니 나머지 파견 일정 동안 근무를 보충하도록 강제했다. 결국 주당 110시간. 많게는 120시간의 고된 근무를 견뎌야 했다.

주120시간 전공의 빡빡한 하루 일과, 수련과정은 절반도 못배운다?

김준영 사직전공의(전 순천향대학교병원 전공의협의회장) ⓒ의협신문
김준영 사직전공의(전 순천향대학교병원 전공의협의회장) ⓒ의협신문

김준영 사직전공의(전 순천향대학교병원 전공의협의회장)는 내과 전공의 1년차 한 달 당직표를 꺼내보였다. 근무표에서 근무시간은 주100시간이었다. 휴게 시간도 없었다. 

오전부터 병동을 돌며 환자 상태를 파악하고 혈액 검사 결과를 확인한다. 환자가 많은 때는 50명 정도의 환자를 담당하는데 1명당 3분씩 쓰더라도 아침 회진 전 2시간 30분이 필요하다. 오전과 오후 회진에도 5시간이 소요된다. 환자의 경과 및 처방 입력, 입·퇴원 기록 작성에 한 명당 2분을 쓰더라도 하루 3시간이 추가로 걸린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하루 정규 시간에 걸려오는 평균 60 여통의 전화와 100여 개의 문자를 처리하면 매일 3시간 이상의 초과 근무를 하게 된다. 이렇게 일주일을 보내면 실질적으론 빼곡한 주120시간 근무가 완성된다.

김준영 사직전공의는 "실제로 120시간 이상 근무한 적이 많았다. 80시간 이하로 근무한 적은 전체 수령 기간의 반의 반도 되지 않는다"고 한탄했다.

과중한 업무에도 불구, 실질적인 전문의가 되기에 필요한 경험은 채우지 못한다고도 짚었다. 보건복지부에서 고시한 내과 수련교과 과정 중 수련받지 못한 부분이 절반 이상이라는 고발도 나왔다. 수술실에서도 교수들은 흔히 PA로 불리는 간호사와 수술을 진행, 전공의를 배제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준영 사직전공의는 " 제대로 된 매뉴얼을 갖추지 않은 진료과가 대부분이다. 전공의는 상급 차 전공의의 조언과 교과서, 인터넷 검색에 의존해 수련을 해야 한다"며 "지도 전문의라는 제도가 있지만 실질적 역할은 유명무실하다. 지도전문의가 누군지 수련기간동안 알지도 못했다. 교수님과 다름없이 진료만 보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전문의 자격증 취득을 위해선 불합리한 처우를 견딜 수 밖에 없다는 한탄도 이어졌다. 

전공의가 수련 기록을 입력해야 하지만, 수련이 부족하다는 것을 솔직하게 얘기할 경우 전문의 취득을 하지 못할 수 있다. 전문의 취득을 위한 학술지 논문 게재 역시 혼자 힘으로 작성하기는 매우 어렵다.

김준영 사직전공의는 "전공의들은 수련 과정 중 의국의 목줄에 잡혀있는 셈"이라며 "전문의 취득 후에도 외국에서 1년 추가 근무를 강요받고, 대학원 등록을 강요받는다. 담배 및 음식 배달 심부름을 하고 전공 1년 차 365일 내내 당직을 하더라도 거부하지 못한다. 지금 말씀드린 사례는 저희 의료원의 안과·이비인후과·산부인과·내과·외과·성형외과·마취통증의학과 등 과를 가리지 않고 모두 일어나는 실제 사례"라고 꼬집었다.

전공의 특별법 제대로 고치고, 안 지키면 근로기준법 수준 벌칙 부과해야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 ⓒ의협신문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 ⓒ의협신문

박단 대전협 비상대책위원장은 발제시간을 통해, △주당 최대 88시간 근무 △36시간 연속 근무 △최저 시급 수준의 임금 △임산부의 야간 근로 △전공의 교육 부재 △법적 분쟁 위험 등 부당한 근로 조건 등의 문제를 짚었다. 제대로 된 전공의법 개정 필요성과 실효성을 갖추기 위한 벌칙 조항 강화 필요성도 함께 제안했다.

전공의 특별법은 2015년 제정됐다. 대부분의 전공의가 주 100시간 이상의 과도한 근무에 시달리고 있어, 전공의는 물론 환자들의 건강까지 위협할 수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마련된 것이다.

주 내용은 수련시간 80시간, 연속 근무시간 36시간, 응급상황이 발생한 경우는 40시간으로 상한을 뒀다. 여전히 '과중하다'고 느껴지는 해당 상한선. 현장에선 이조차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대한전공의협의회가 2022년 진행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80시간 초과 비율은 52%였다. 24시간 초과근무 경험자도 70% 이상이었다. 

2020년 전공의 실태조사에서는 전공의들의 미비한 보상 현실을 보여줬다. 전공의 평균 임금은 398만원. 휴게시간을 근로시간에 포함시키지 않는다고해도 평균 주 77시간 근무를 기준으로 했을 때, 시급은 1만 1400원이 그친다. 과중한 업무 시간과 강도에도 보상은 너무 적다는 지적이다.

박단 위원장은 장기적 관점에서 봤을 때, 전공의 역시 근로기준법을 적용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수련시간은 근로기준법 주 40시간 제한을 따르고, 현실적으로 반영이 어렵기 때문에 일주일에 24시간 한도. 즉 토탈 64시간까지 수련 시간을 연장할 수 있게 개정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연속근무에 대해서도 최대 24시간으로 제한할 것을 제안했다.

'휴게시간'에 대한 근로시간 인정부분 역시 쟁점이라고 봤다.

박단 위원장은 "일주일에 주20에서 40시간을 무급으로 일하고 있다. 이로 인해 주 80시간 상한이 무색한 상황"이라며 "교원의 경우, 점심시간에 학생들에 대한 관리·감독이 필요해 점심시간을 근로시간으로 인정했다. 유치원 교사에 대해서도 같은 판례가 나왔다"며 휴게시간 근로 인정이 필요함을 짚었다.

전공의특별법의 '우선 적용' 조항 역시 전공의들에 불리한 요건이 되고 있다며 "전공의에게 유리한 경우, 그 법을 적용한다 등으로 개정할 것을 제안한다. 이는 특이한 케이스가 아니고, 공익신고자 보호법이나 전자상거래 등 소비자보호법 등 유사 사례가 많이 있다"고 지적했다.

일련의 개정안이 실효성을 갖기 위해선 근로기준법 위반 시 적용하는 벌칙 수준을 적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감독하는 수련환경평가위원회 구성 역시 운영자가 아닌 전공의 위원이 중심이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단 위원장은 "수련환경평가위원회가 있지만 병원장이나 교수 등 사용자 측 인사들로 대부분 구성돼 있어 병원이나 외국에 제재를 가하는 데 적극적이지 않다. 전공의법에는 과태료 외 별다른 벌칙 조항이 없어 지금의 난장판 수련이 계속되고 있다"며 "전공의 수련 받던 시절 의국에서 동기들과 어린 연차들이 힘들고 서러워서 매주마다 한 두명씩은 울고 있었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언젠가 병원으로 돌아간다면, 환자를 대할 때 보람과 자부심을 갖고 수련에 임할 수 있었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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