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법 난관 회피·행정력 동원 제도 강행...비대면 진료 때와 '판박이'
보건복지부-약사회와 오랜 교감...사후통보 절차 간소화 공감대
DUR 대신 '업무포털' 고수, 대체조제 밀어붙이되 정부 책임 없게

대체조제 활성화를 위한 시행규칙 개정 작업을 추진 중인 정부가, 정작 국회의 관련 법 개정에는 앞장서 반대하는 촌극이 벌어졌다.
원하는 방향으로의 입법 추진이 여의치 않자, 정부가 행정력을 동원해 자신들이 그려놓은 그림대로 제도 개선을 밀어붙이려 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21일 제1법안소위를 열어 대체조제 활성화를 골자로 하는 약사법 개정안을 심의했으나, 위원간 이견이 엇갈려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서영석 의원·이수진 의원·민병덕 의원이 각각 발의한 약사법 개정안은 대체조제의 명칭을 부정적 어감을 뺀 '동일성분조제'로 변경하고, 대체조제 사후통보 대상에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을, 내용상으로는 의약품안전사용시스템(DUR)의 활용을 추가하는 내용이다.
법안소위 내에서도 법 개정을 둘러싼 찬반 의견이 강하게 부딪혔다. 전문성을 가진 의·약사 출신 의원들이 앞다퉈 발언에 나섰는데 시각차가 매우 컸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약사 출신 의원들은 최근 의약품 품절사태가 반복되고 있는 만큼 대체조제를 활성화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책들이 마련되어야 한다며 법 개정에 찬성했으나, 의사 출신 의원들은 국민건강권이 위협받을 수 있다며 강한 반대 의견을 전했다.
직접 당사자인 의·약계도 같은 이유로 수년째 반목하고 있어, 결론을 내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이날 법안소위에 배석했던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도 법률 개정안에 강한 반대 입장을 피력한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대체조제 활성화 자체가 아닌 '심평원 DUR'을 활용하는 방법에 대해서다.
앞서 보건복지부와 심평원은 업무부담과 정부 측 면책 규정 미비 등의 이유로 법률 개정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냈는데, 대체조제 활성화는 추진하되 정부 부담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사후통보 방식의 방법을 변경해야 한다는 데 그 중심을 뒀다.
이는 같은 날 정부가 내놓은 동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통해 확인된다.
복지부는 시행규칙 개정안을 통해, 대체조제 사후 통보 도구로 기존 전화·팩스에 더해 심평원이 운영중인 요양기관 업무포털 시스템을 추가했다.
약사가 대제조제 후 직접 의사에게 그 사실을 알리도록 한 현행 방식의 불편함을 해소해 대체조제를 활성화 하되, 심평원의 관여가 필요한 DUR이 아닌 요양기간 업무포털 시스템을 통해 의·약사가 쌍방향 소통하는 방식으로 방법을 바꿔 이를 구현하도록 한 것이다.
개정안대로라면, 앞으로는 약사가 대체조제 후 그 내용을 의사에게 전화나 팩스 등으로 직접 알리는 대신 심평원 업무포털에 올리는 식으로, 대체조제 사후통보 절차가 단순해진다. 의사는 포털을 통해 처방 변경 사실을 추후 확인할 수 있다.
실제 보건복지부는 대체조제 활성화, 보다 구체적으로는 사후통보 절차 간소화 방안을 놓고 대한약사회와 오랜 기간 교감해온 바 있다.
최광훈 약사회장은 정부 시행규칙 개정안이 발표된 21일 기자들과 만나 "대체조제 통보 간소화에 대해 복지부와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어떤 방법이면 쉽고 실효적으로 제도를 만들 수 있을까 고민했는데 요양기관 포털사이트를 통한 대체조제 간소화라면 가능하겠다 싶었다. 정부와 오랜 신뢰가 큰 바탕이 됐다"고 말했다.

정부가 입법 난관을 회피하기 위해 행정력을 동원, 원하는 제도를 밀어붙인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비대면진료(원격진료) 도입 때도 정부는 국회 논의가 더디다는 이유 등으로 사회적 합의에 근거한 법률 개정 대신, 자체 행정명령과 시범사업을 통해 이를 관철시켰다.
당초 국회는 원격진료를 허용하되 그로 인한 부작용 가능성을 고려해 대상환자·지역·참여 기관 등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입법 논의를 진행해왔는데, 원격진료에 목 말랐던 정부는 코로나19 상황을 틈 타 '한시적 비대면진료'라는 이름으로 이를 전면 허용했다.
코로나19 상황이 종료된 이후에도 정부는 법률 근거없이 시범사업 형태로 제도를 연장하며 버텼고, 지난해에는 의사집단행동을 이유로 종별 제한과 초진환자 예외조항 등을 다시 풀었다.
이후 비만치료제 처방 급증 등 부작용이 속출한 것은 주지의 사실. 정부는 뒤늦게 비대면 비만치료제 처방을 제한하는 등 땜질 운영을 계속해오고 있다.
국회 관계자는 "입법은 각계의 의견을 들어 가장 나은 방법을 찾는 사회적 합의의 과정이며, 이를 무시하는 것은 행정 독재"라면서 "비대면진료부터 의대정원 증원까지 정부의 조급함이 의료정책을 망치고 있다. 당사자들의 동의와 이해를 구하지 못한 정책은 협조를 얻을 수도, 성공할 수도 없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