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속 '상급종합병원 구조 전환' 일단 멈춰!

졸속 '상급종합병원 구조 전환' 일단 멈춰!

  • 강희경 대한의사협회장 후보(기호 2번) kanghg@snu.ac.kr
  • 승인 2024.12.21 06:00
  • 댓글 0
  • 페이스북
  • 트위터
  • 네이버밴드
  • 카카오톡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의료체계 지속하려면 일차 의료·지역 의료 강화 필수
공급자·소비자·보험자 함께 문제 파악…'합의' 이루어야

강희경 의협회장 후보(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 비상대책위원장) ⓒ의협신문
강희경 의협회장 후보(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 비상대책위원장) ⓒ의협신문

지난 2월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과도 같은 '의료 내란'이 시작된 이래, 전공의 의존이 높던 빅4 상급종합병원 적자가 2135억 원에 이르렀다(2024년 10월 17일, 조선일보). 국공립과 사립대 상급종합병원 또한 수백억 단위의 무더기 적자를 보이고 있다. 

기존 의료시스템의 붕괴 위기가 코앞에 다가왔다. 보건복지부는 7월 상급종합병원의 비상 상황에 대응하겠다며 졸속으로 '상급종합병원 구조 전환'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시범사업에 참여한 상급종합병원에는 중증역량 강화를 위해 중환자실 수가와 2∼4인실 입원료를 50% 인상했으며, 의료전달체계 개선을 위해 회송수가를 올렸다. 또한, 3년간 10조 원을 구조전환을 위해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중증·난치·외상 환자를 치료하는 3차 병원인 상급종합병원 본연의 기능을 강화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치밀한 토론과 계획에 의한 개혁이 아니라, 의료 내란이 초래한 상급종합병원의 적자와 진료량 감소에 따른 졸속 개혁은 부작용만을 낳을 것이 명징하다. 

현재 상급종합병원 현장은 구조전환 사업 탓에 일괄적 병상 축소, 중증 진료 부담 증가에서 비롯된 문제가 노출되고 있다. 중증환자 중심 구조전환이 이루어진다 해도, 이를 담당할 전문의 배출이 중단된 상태다. 인적 자원의 실질적 보강 대안이 없는 졸속 상급종합병원 구조 전환 추진은 지역의료를 버텨주던 숙련된 교수진의 무더기 이탈을 가속해 되레 지방의료 붕괴를 재촉하고 있다.

기계적인 경증 질환 진료 축소로 중증 외의 과목은 보건의료직 구조조정으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 또한, 상급종합병원 전공의들은 경증 질환 진료를 경험하지 못하게 되므로 수련의 질 저하와 의료 질 저하로 이어질 것이다. 

정부가 추진 중인 상급종합병원 구조 전환 정책은 지속가능한 환자 중심 의료 개혁과는 거리가 멀다. 의료전달체계를 개선하는 것은 단순히 상급종합병원의 경증·중등증 환자를 분산하거나, 상급종합병원을 중증·희귀 진료소로만 보는 태도는 지양해야 한다. 

재원에 관한 우려 또한 심각하다. 윤석열 정부는 2년 연속 건강보험료율을 동결했다. 건강보험의 수입은 그대로인 상태에서, 상급종합병원을 위해 10조 원을 투입하면 개원가와 병원 그리고 일차 의료에 투입해야 할 재원은 그만큼 감소할 것이다. 급증하는 의료 비용과 고갈되어 가는 국민건강보험 재정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정책은 지속 불가능하다. 

10조원은 의료 내란 와중에 상급종합병원의 진료량이 감소하면서 발생한 건강보험 지출 감소액이다. 이후 재정은 어디에서 조달할 것인가? 

졸속 '상급종합병원 구조 전환'은 중단해야 한다. 수년간의 장기적인 연구와 토론을 바탕으로 치밀하게 비용과 인력을 추산하고, 정책을 설계하지 않으면, 의료시스템을 개선하기는커녕 붕괴를 앞당길 것이다. 

지속가능한 의료체계를 위해서는 일차 의료를 담당하는 개원가의 역할 강화를 위한 투자와 정책도 선행해야 한다. 교과서적인 진료와 급여 진료만으로 의료기관을 운영할 수 없는 현재의 모순을 뜯어고쳐야 한다. 개원가는 검사와 약 처방, 시술만이 아니라 충분한 상담과 교육, 다학제 진료가 가능하도록 의료수가와 보상 체계를 장기적으로 개선해 나가야 한다. 

이를 통해 상급종합병원과 1, 2차 의료가 서로 만족하는 방식으로 구조 개선을 진행해야 한다.

기계적 경증 분류가 아닌, 의료진의 판단을 중심으로 환자의 상태에 따라 중증·급성기는 상급종합병원에서, 회복·만성기는 지역 의료기관에서 관리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정부는 상급종합병원 구조 전환을 위해 일반병상 수를 5∼15% 축소하고, 인력 구조도 전공의 의존도를 낮춰 전문의·간호사 등의 팀 진료 형태로 바꿔나가기로 했다. 상급종합병원 구조 전환을 위해 국민이 낸 건강보험 재정에서 3년간 총 10조원을 투입키로 했다. [사진=pixabay] ⓒ의협신문
정부는 상급종합병원 구조 전환을 위해 일반병상 수를 5∼15% 축소하고, 인력 구조도 전공의 의존도를 낮춰 전문의·간호사 등의 팀 진료 형태로 바꿔나가기로 했다. 상급종합병원 구조 전환을 위해 국민이 낸 건강보험 재정에서 3년간 총 10조원을 투입키로 했다. [사진=pixabay] ⓒ의협신문

의료소비자와의 소통을 통해 병의원 바르게 이용하기 캠페인 등 의료이용 인식 개선을 주도하고, 의료전달체계 개선과 1, 2차 병원과 상급종합병원의 실질적인 연구·진료 지침의 통일성 있는 네트워크 구축, 이를 가능케 하는 재원 마련과 수가 체계를 전제로 단계적으로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제대로 된 의료시스템 구축을 위해 지금 필요한 것은 졸속 의료개혁, 그중에서도 빠른 속도로 진행하고 있는 상급종합병원 구조 전환의 일단 멈춤이다. 일단 멈추고, 의료공급자-의료소비자-보험자(정부)가 모여 원점에서부터 문제를 파악하고, 우리가 원하는 의료의 모습이 무엇인지 먼저 합의를 이루어야 한다. 

장기적인 로드맵을 그리고, 가장 먼저 필요한 일차 의료·지역 의료 강화 방안과 의료시스템 개선을 통해 지속 가능한 의료제도를 위한 정책을 차근차근 만들고 실행해 나가야 한다.

다함께, 힘차게, 새롭게! 의협이 앞장서 나아간다면, 모두를 위한 의료시스템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관련기사
개의 댓글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 기사속 광고는 빅데이터 분석 결과로 본지 편집방침과는 무관합니다.